중대재해법에 건안특별법…건설업계 숨통 죄는 ‘옥상옥 규제’
[뉴스투데이=김종효 기자] "요즘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에 이어 더 강력한 규제법안으로 알려진 건설안전특별법(이하 건안법) 제정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기침체로 어려운 가운데 이처럼 정부 규제가 쏟아지면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요"(건설업계 관계자 A씨)
최근 정치권은 2월 임시국회에서 건안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월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와 관련한 긴급당정회의에서 건안법 제정에 속도를 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의당 역시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화정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건안법 처리를 촉구하는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역시 건안법 처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광주 화정 붕괴사고 당시 건안법 처리 촉구는 물론 중대재해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건안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 입김 하에 건안법이 처리될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정치권과 노동계가 이처럼 건안법 처리를 재촉하는 데에는 건안법이 건설현장 안전을 지키는 장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광주 사고를 비롯해 건설현장 참사가 연달아 발생한 뒤 당장이라도 건안법을 제정하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도 임시국회에서 건안법 처리가 속도를 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물론 최근 분위기를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건안법은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강도높은 처벌을 해 건설업계에 경각심을 주고 안전에 더 신경을 쓰도록 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기능을 담고 있다.
그러나 건설업계가 관련 법규에 불안과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이들 업계의 이기적인 행태라고만 지적할 수는 없다. 중대재해법에 이어 건안법까지 처리되면 이중처벌 논란을 일으키고 사고 방지의 역할보다 규제의 강도만 더해지는 이른바 ‘옥상옥’ 규제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 중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는 얘기가 나올 때부터 건설사들은 법 기준에 맞추기 위해 조직개편에 나서는 등 대대적인 ‘수술’까지 했다”며 “그런데 건안법까지 통과되면 건설사들은 수주나 사업확장은 커녕 정부 눈치만 보다가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건안법까지 제정되면 사실상 건설사를 정부 손아귀에 쥐고 흔들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건설사 관계자들끼리 만나면 이런 불만이 터져나오지만 여론 눈치까지 봐야하는 상황이라 대놓고 말하기도 힘들다. 어떤 건설사라도 현재 과도한 규제에 대해 공론화한다면 정부와 여론에 찍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공사현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그룹 회장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현장 시공을 감시감독하는 감리 담당자를 처벌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룹사 임원들이 하청을 주는 모든 공사현장을 일일히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공사 현장에서 빈번하게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공기(공사기간) 단축 압박, 공사 부실을 불러오는 최저가 입찰제 등 현실적인 문제점에 먼저 메스를 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계 역시 이런 문제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민주노총이 중대재해법 강화를 주장하면서 발주처 공기 단축 강요 때 처벌할 것과 재해 발생 때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과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 수 없다.
현장의 안전은 무엇보다 최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부실공사나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사고가 아닌, 실수로 발생한 사고로 건설회사 총수에 처벌의 칼을 들이댄다면 건설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룹 총수 처벌이 아닌, 현장 안전을 가로막는 잘못된 관행, 실질적인 사고 책임 담당자를 처벌하는 것이 중대재해법, 건안법의 목적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