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구글 희대의 합작 ‘세금먹튀’…디지털세 도입으로 막 내리나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최근 미국 정보통신(IT) 공룡 애플이 2009년 이후 12년 만에 실적을 공개했다. 애플 국내법인 애플코리아가 지난해 한국에서 거둬들인 매출만 7조원1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업체가 낸 법인세는 매출의 1%에도 못 미치는 628억9000만원이다.
적게는 10% 많게는 25%까지 납세하는 국내 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법인세 배경에는 애플 등 다국적기업이 조세도피처(Tax Haven)를 통해 세금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꼼수가 숨겨져 있다. 이는 비단 애플만이 아닌 구글, 페이스북 등 다국적 기업 상당수가 오래전부터 써온 수법이다.
해묵은 과제인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근절하기 위해 이른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매출을 올린 국가에도 세금을 내도록 하는 ‘디지털세 납부’를 추진했다. 이에 세계 136개국이 최종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23년부터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이 한국에 납부해야 할 세금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역으로 해외무대에서 맹활약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세금 부담도 커지게 된다.
디지털세 납부는 한국으로선 득이 될까 아니면 실이 될까.
■ '더블 아이리시'로 쥐꼬리 세금 내며 해외 도관회사에 돈 쌓아놓은 애플·구글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IT 기업 19곳의 국내 법인이 낸 법인세를 전부 합쳐도 1539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국내 기업 네이버가 홀로 납부한 4303억원의 35.8%에 그친다.
세계적인 IT 공룡들이 다 합쳐도 국내 기업 1곳만큼도 되지 않는 법인세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른바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Dutch sandwich)'라는 절세 방식으로 해외에 현금을 쌓아두는 지배구조에 있다. 흔히 줄여서 '더블 아이리시'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1980년대 애플이 만들고 구글이 보완해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블 아이리시는 아일랜드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2개 법인이다. 더치 샌드위치는 더치, 즉 네덜란드 법인 1개를 더블 아이리시 사이에 끼어 넣어 만드는 것을 뜻한다. 쉽게 설명하면 아일랜드 기업 2개를 빵이라고 생각하면 네덜란드 법인은 그 사이에 들어가는 치즈나 햄으로 마치 샌드위치 모양이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글로벌 경영을 하는 A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아일랜드에 해외법인 B사를 설립한다. 자회사 법인의 거처로 아일랜드를 택하는 까닭은 법인세율이 12.5%로 OECD 회원국 법인세 평균치 23%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고 A사에 모든 지식재산권에 대한 권한을 후불제로 판매한다.
또 B사를 관리할 회사는 버뮤다 등에 둔다. 버뮤다 또한 법인세율이 0%로 관리 회사가 있는 곳에 조세 관할권을 넘기는 아일랜드 세법을 고려하면 조세회피국으로서는 최적이다.
그리고 B사는 해외 영업을 명목으로 아일랜드에 또 다른 자회사인 C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B사와 C사간 거래 시 조세회피 역할을 할 도관회사(道管會社, The conduit company) D사를 네덜란드에 설립한다.
네덜란드에 도관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법인 설립이나 관리, 관련 세제 측면에서 가장 쉽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C사는 B사로부터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에 지식재산권을 사용한 권한을 후불로 구매한다. 그리고 해외 각국에 법인을 설립해 영업이익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이때 해외 지사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영업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그 이유는 후불로 지불하기로 한 지식재산권 사용료가 매출에서 절대 비중을 차지하도록 설계된 탓이다. 이에 따라 지사 수익은 실질적으로 C사로 몰리게 된다.
C사가 있는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이 낮아 1차 절세가 가능하다. 이것을 C사가 바로 모 기업인 A사에 송금하면 원천징수세를 납부해야 하지만 로열티 명목으로 D사에게 송금을 한 후 A사에게 건네면 세금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조세 협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알려졌다.
이는 상당수의 다국적 기업이 즐겨 사용해온 절세 꼼수로 알려졌다.
애플과 구글 등이 한국에서 막대한 매출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납부하는 법인세는 매출의 1%에도 채 못 미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법인세 적용 시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은 수익이 아닌 이익을 기준으로 한다. 이에 따라 해외 기업 지사들이 지식재산권 등을 지불하고 나면 결과적으로 남는 이익은 많지 않아 그만큼 한국에 납부하게 되는 법인세도 줄어드는 것이다.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를 통해 상대적으로 법인세율이 높은 한국을 대신해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등으로 이익을 넘기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이득인 셈이다.
■ 디지털세, 한국 기업들은 괜찮을까
다른 국가에서 취득한 매출에 대한 세금을 절세할 수 있는 국가에서 납부하는 방식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OECD는 이른바 ‘구글세’ 또는 ‘애플세’라고 알려진 ‘OECD 디지털세’ 납부 방안을 추진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OECD 주요 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F)는 136개국 동의를 얻은 디지털세 관련 최종 합의안을 공개했다. 이는 오는 2023년부터 적용 예정이다.
합의안은 ‘필라(pillar)1’과 ‘필라2’로 구성된다. 필라1은 연결매출액 200억 유로(약 27조원) 이상, 영업이익률 10% 이상인 다국적 기업은 시장 소재국에 세금을 납부하도록 해 기업 매출에 대한 과세권을 각국이 나눠 갖도록 하는 취지다. 필라2는 조세회피처에 기업 주소지를 두고 납세를 피하는 것을 예방하는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율 15%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한국에서 거둬들인 이익만큼 적절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구글, 애플 등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정당한 과세 길이 열였다.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돈을 묶어두며 호의호식하는 시절은 끝난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최저한세의 도입을 통해 국가 간 무분별한 조세경쟁을 예방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으로서는 당연 반가운 소식이지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해 있는 국내 대기업들도 디지털세 납부 대상에 포함돼 세금 일부를 해외에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27.5%다. 이는 OECD 36개 회원국 중 9순위로 상위권에 속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국내 법인세율을 조정하지 않은 채 디지털세가 부과된다면 자칫 기업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디지털세 부과가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본다. 필라1 적용 시 기업 입장에서 세금 납부 대상 국가는 늘어나지만 과세권을 각국이 나눠갖는 개념이기 때문에 납부해야 할 세금 총액은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이전과 비교해 부담은 증가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새로운 형태의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증가할 수 있는 납세협력비용을 고려해 중복 과세가 발생하지 않도록 별도 소득공제·세액공제 등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디지털세 납부 바람이 불어닥친 전 세계 기업 생태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