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희비 쌍곡선...생산업체 '울고' 장비기업 '웃고'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도체 시장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관련 업계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반도체 수요가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공급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반도체 생산을 위한 장비 수급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양대 반도체 생산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식 석상에서 반도체 설비 반입에 따른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는 만큼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울상인 반도체 생산 기업들과는 달리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웃음꽃이 피었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 호황에 발맞춰 대대적인 투자 전략으로 큰 성장을 거둔 반도체 장비 시장은 올해 역시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 반도체 장비 국내 공급, 길게는 1년 걸릴 듯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앞다퉈 시설투자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술 초격차(경쟁업체들이 추격하지 못하는 기술 격차) 유지와 ‘2030 시스템반도체 분야 세계 1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도체 신(新)공장 착·준공 등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 계획 금액만 17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분야 시설 투자에만 48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경기 평택캠퍼스의 세 번째 반도체 생산라인 ‘P3’의 인프라 투자와 중국 시안 공장 설비 확대에 43조6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기반 15나노 D램, V6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첨단 공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는 평택 EUV 5나노 첨단 공정 증설 등에 초점을 맞췄다.
평택캠퍼스 면적은 여의도 면적에 맞먹는 289만㎡(약 87만평)다. 이는 반도체 공장 6개를 지을 수 있는 규모다. 현재 첫 번째와 두 번째 생산라인 ‘P1’과 ‘P2’는 2017년과 2020년에 이미 가동을 시작했으며 P3 공장은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네 번째 생산라인 ‘P4’와 미국 파운드리 2공장 착공 등이 예정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이 밖에 올해 상반기에 미국 텍사스주(州) 테일러시(市)에 2024년 하반기 생산을 목표로 20조원 규모 파운드리 공장 착공에 나선다.
이에 질세라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Intel)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약 10조3000억원에 인수하기 위한 1단계 계약을 마무리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낸드플래시 인수는 SK하이닉스 성장을 한 걸음 더 이끌었다.
이와 함께 2018년부터 추진된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는 올해안에 착공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에는 10년간 120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처럼 야심찬 투자 계획을 마련했지만 실제 시설 확충에는 험로가 예상된다. 글로벌 반도체 공룡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몸집 부풀리기에 나서 시설투자가 급증한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으로 전 세계적인 부품 수급난이 더해져 반도체 장비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투자는 늘어나고 있고 코로나19 등 악영향으로 이전에보다 반도체 물량 수급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얼마전 있었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에서 반도체 장비 리드타임(주문 후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한 어려움을 언급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 부사장은 “부품 공급망 이슈로 설비 반입 시점이 예정보다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사장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비 리드타임이 길어지고 있다”며 “계획된 장비 입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차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장비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종류에 따른 리드타임은 짧게는 3~6개월, EUV 노광장비는 1년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해 반도체 호황기가 예상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에 따른 차질로 관련 업계 시름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 반도체 장비 시장 성장세 올해도 이어져
한편 반도체 장비 시장 전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밝다.
반도체 장비 시장은 지난해 초호황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VLSI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626억 달러(약 75조원)에서 2020년 736억 달러(약 88조원)로 증가했다. 2021년에는 2020년과 비교해 38.4%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해 시장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20조원)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는 시장 규모가 더 늘어나 또 다시 신기록을 갈아치울 태세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웨이퍼 가공, 팹(Fab:반도체 공장)설비, 마스크·레티클(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장비를 포함하는 전공정 장비의 올해 매출액이 990억 달러(약 119조원)로 지난해와 비교해 12.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D램 장비 매출액은 1% 성장한 153억달러(약 18조원), 낸드 장비 매출액은 8% 증가한 206억 달러(약 25조원)로 보고 있다.
VLSI리서치도 올해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가 급성장한 지난해보다 22% 오른 1243억 달러(약 149조원)로 예상했다. 반도체 장비에 대한 서비스(용역)까지 더해지면 총규모는 1500억 달러(약 18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VLSI리서치는 “지난해 공급망 대란 영향으로 충족되지 못했던 반도체 장비 수요가 올해로 이어졌다”며 “강력한 시장의 수요, 각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까지 더해 올해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2%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