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나도 빛 바래지 않는 최태원 회장의 'M&A 성공신화'
천덕꾸러기 하이닉스, SK 품에 안겨 ‘국내 2위·세계 3위’ 우뚝
SK하이닉스, 10년간 세금만 11조원 내 경제 살린 '효자 기업'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하이닉스반도체(이하 하이닉스)가 현대그룹을 떠나 SK그룹 품에 안겨 'SK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 지 어느덧 10여년이 흘렀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등장한 하이닉스를 국내 주요 그룹사들이 모두 외면할 때 SK그룹 만이 하이닉스 손을 잡았다. 재계 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하이닉스는 SK 날개를 달고 높은 비상에 시동을 걸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43조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국내 반도체 시장 2위,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SK그룹으로 편입된 이후 SK하이닉스는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낸 세금만 11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재계의 미운 오리 새끼'에서 'SK그룹의 백조'로 거듭나기까지 최태원 회장(62)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최태원 회장은 어떻게 SK하이닉스의 '기적'을 이끌어 냈을까.
■ '다사다난' 으로 점철된 하이닉스史
LG반도체는 1997년 외환위기로 어쩔 수 없이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 종합가전기업 현대전자에 넘겼다. 이후 현대전자 경영사정이 악화일로를 걸었고 2001년 반도체 사업부만 남긴 채 대다수 사업부를 매각 처리해야 하는 아픔을 맛봤다. 이후 회사명이 하이닉스로 바뀌면서 재도약을 꿈꿨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출발부터 난항을 겪었다. 하이닉스는 2001년 여러 은행들로 이뤄진 채권단에 의한 공동관리가 결정됐다. 또 그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2만2000명에 이르던 하이닉스 임직원 수는 1년 만에 1만4000여 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하이닉스는 2003년경 새롭게 등장한 메모리 생산기계조차 구매하지 못하고 수주도 따내지 못해 자금난에 시달렸다. 이때 기존에 팔거나 혹은 버리려고 했던 반도체 생산 기계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생산 수율(원재료 투입에 대한 제품생산 비율)을 향상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이에 힘입어 하이닉스는 2년여 후 한차례 위기를 극복해 워크아웃을 벗어나며 회생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하이닉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해 영업손실만 2조원에 육박하는 등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이듬해 4분기 당시 역대 최대 매출액 2조7990억원을 기록하며 회복세로 돌아섰다.
하이닉스 경영사정이 안정을 되찾았다고 판단한 채권단은 2009년부터 국내외 회사들에게 매각을 시도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인수 의사를 밝혔던 효성그룹은 불과 두 달 만에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옛 주인 LG그룹이 인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도 했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 밖에 삼성·LG·포스코·한화·GS 등 국내 주요 그룹사 모두 하이닉스 손을 잡지 않았다. 이처럼 인수 후보자가 계속 나타나지 않아 '하이닉스의 매각 원점'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러던 중 2011년 하이닉스에게 SK라는 황금 동아줄이 내려왔다. 하이닉스 인수전에 SK그룹과 STX가 뛰어들었지만, STX가 인수 의사를 철회해 SK그룹이 3조4267억원에 하이닉스를 단독 입찰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2년 하이닉스는 주주총회를 통해 'SK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 최태원 회장은 왜 하이닉스에 푹 빠졌을까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는 최 회장에게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당시 SK그룹은 에너지·화학 사업 ‘SK이노베이션과’ 통신 사업 ‘SKT’(SK텔레콤)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수익구조 또한 이들에게 집중됐다. 그룹의 지속성을 위한 새로운 미래 먹거리에 대해 최 회장의 고민과 갈망은 매우 컸다. 이때 최 회장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하이닉스다.
사실 SK그룹에게는 반도체에 대한 뼈아픈 과거가 있다. 1978년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은 일찍이 반도체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파악하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다. 하지만 2차 석유파동이라는 악재로 불과 3년 만에 사업을 철수하며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래서일까 최태원 회장은 1년이 넘는 시간을 반도체 공부에 몰두했다. 그렇게 기본 지식을 쌓은 후에야 이사회 측에 하이닉스 인수 의사를 알렸다.
하지만 당시 SK그룹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이닉스 매각금이 3조원에 달했고 인수 후에도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아무리 대기업일지라도 하이닉스 인수는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오너로서 일방적으로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임원들에게 왜 하이닉스 인수가 필요한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인수하고자 하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때 당시 SKT 사업개발부문장이던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최 회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두 사람의 합심으로 SK그룹은 SKT를 필두로 하이닉스 인수전의 최종 주인공이 됐다.
SKT를 앞세운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에 대한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반도체 산업은 승자독식 체제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속도감 있는 연구개발(R&D)과 큰 규모의 양산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렵다는 게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연 이동통신 사업 중심의 SKT가 반도체 산업을 하이닉스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이끌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컸다. 여론은 오히려 두 기업의 인수합병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하이닉스 인수에 대한 최 회장 믿음은 확고했다.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하고 반도체 산업 진출을 모색했다가 석유파동으로 꿈을 접었던 SK그룹이 30여년이 흐른 오늘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 하이닉스를 새 가족으로 맞았다. SK그룹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발걸음이다.” - SK하이닉스 출범식 최태원 회장의 축사 일부
■ '국내 2위·세계 3위' SK하이닉스 성장 어디까지
최 회장은 “SK와 하이닉스 모두 질적 성장을 이루고 국가경제 발전과 세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 설비 투자는 2012년 3조9000억원으로 시작해 2018년 17조38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반도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비도 2012년 9000억원에서 2019년 3조2000억원으로 3배 넘게 늘어났다.
최태원 회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인수 첫해 22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SK하이닉스는 이듬해부터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2013년 영업이익 3조3000억원을 기록한 하이닉스는 반도체 시장 역대급 호황기로 알려진 2018년 20조8000억원까지 영업이익이 5년 만에 무려 6배 이상 급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SK하이닉스의 국가 세수 지원도 두드러졌다. 매년 누적손실 규모가 누적손익보다 많은 탓에 법인세 납부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편입 전 법인세 납부 이력이라곤 1995년 1009억원이 전부였던 SK하이닉스는 2014년 SK그룹 편입 후 처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법인세 8000억원을 납부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경영 호재로 △2017년 2조5000억원 △2018년 5조6000억원 △2019년 5000억원 △2020년 8400억원을 냈다.
이처럼 SK하이닉스는 불과 10년 만에 과거 재계 천덕꾸러기 신세를 벗어나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SK그룹의 자랑스러운 효자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42조9978억원, 영업이익 12조4103억원 기록하며 역대 최고 매출 성적표를 거머쥔 SK하이닉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도 SK그룹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뿐만 아니라 10년 간 법인세와 지방소득세 등 세금만 누적 11조원을 납부해 국가 세수의 핵심축으로 거듭났다.
모두가 'NO'를 외칠 때, 나 홀로 'YES'를 외치며 성공신화를 써내린 최태원 회장. 그가 SK하이닉스와 그리는 눈부신 성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내 2위·세계 3위에 만족하지 않고 향후 10년 내 세계 최정상 기술기업으로 거듭나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중축이 되기까지 SK하이닉스와 최태원 회장의 전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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