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대우조선 합병 '물거품'..한국 조선 경쟁력 타격 불가피
[뉴스투데이=김태준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유럽연합(EU)의 제동으로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이에 따라 지난 3년간 이어진 기업 인수합병(M&A) 노력은 백지화됐다. 또한 두 회사 합병으로 글로벌 시장 제패를 꿈꿨던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이와 함께 대우조선해양은 주채권은행 산업은행에 남아 새 주인을 다시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13일 EU 공정위원회로부터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불허한다는 심사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한국조선해양은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 주채권은행 산업은행과 현물출자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 본 계약은 유럽을 포함한 6개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심사 완료를 인수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조선과 항공 등 다국적 기업은 M&A를 진행할 때 주요국 경쟁 당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조선 고객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유럽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빠질 수 없는 지역이다.
2019년 12월 두 기업 결합 심사를 시작한 EU 집행위원회(이하 EU집행위)는 기업결합 심사 개시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심사를 세 번이나 미뤘고 M&A 최대 관건인 EU 심사가 지연돼 한국조선해양은 인수기한을 네 번이나 연기해야 했다.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던 EU 집행위는 지난해 11월 돌연 올해 1월 20일을 데드라인으로 심사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심사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승인될 가능성이 크다는 장밋빛 전망이 제기됐지만 13일 끝내 '불승인'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2019년 12월 심사를 개시한 이래 2년 2개월만이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현재 '빅3' 체제를 '빅2'로 바꿔 한국 조선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노력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EU집행위가 합병 불허를 결정한 배경에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형성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면 EU는 두 기업이 합병으로 고부가치선박 LNG 운반선 시장에서 독점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유럽은 LNG선 선사들이 몰려있는 지역이다. 이에 따라 세계 1·2위 조선업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해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두 기업이 합병하면 LNG선 시장점유율이 60%로 높아진다는 것도 EU측 주장이다.
최근 LNG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세계 3위 LNG 수입국 EU는 선박 가격 인상으로 LNG 운임도 영향을 받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EU가 한국 조선업계를 견제하기 위해 불승인 결정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조선업이 '슈퍼사이클(초호황)'을 맞이해 이번 M&A 불발이 두 회사 경영에 큰 악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수 주체였던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 유상증자에 참여해 투입하려고 했던 1조5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그러나 이번 합병 무산이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빅3 체제에서는 국내 업체 간 출혈경쟁과 중복 투자, 저가 수주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빅2로 재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전 세계 조선시장이 자국 업체 간 합종연횡으로 규모를 키우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 두 회사 합병 무산은 장기적으로 한국 조선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번 M&A를 위해 조선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는 등 전사적 노력을 펼쳐 EU의 이번 결정이 향후 기업 성장전략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EU를 상대로 법적조치를 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도 새 주인을 시급하게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특히 EU가 독점을 이유로 기업결합을 불허한 점을 감안하면 다른 '빅3' 업체 삼성중공업과의 합병도 불가능해져 조선 외 다른 산업군으로 매각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주채권은행 산업은행은 사업전략이나 과거 M&A를 토대로 포스코, 한화, 효성 등을 잠재 인수 후보군으로 꼽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 규모가 워낙 커 매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방산 부문을 분리 후 매각하거나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안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동걸 산은 회장은 다음주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와 민영화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