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2 주인공' 한국 기업에 드리운 ‘규제’ 그림자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2’이 얼마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CES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우려가 컸지만 행사는 보란듯이 성공을 일궈냈다.
특히 올해 CES에는 한국 기업들이 유난히 돋보였다. 한국은 500여 개 업체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전체 전시 제품 가운데 623개가 CES 혁신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수상 대상 가운데 25%인 139개가 한국업체가 선보인 제품이다. 이것 역시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인 셈이다.
이번 CES는 ‘융합’과 ‘혁신’이 눈에 띈 무대였다. 한국 기업은 업종의 틀을 깬 파격을 선보여 눈길을 모았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그룹은 다용도 소형 모빌리티(이동수단) 플랫폼 ‘모베드(MoBED)’를 선보여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 이미지를 탈피했다. 세계 1위 조선회사 현대중공업은 자율운항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한 ‘퓨처 빌더’(Future Builder)로 변신했다. 이미 여러 사업군을 두루 갖춘 삼성전자도 세계적인 기업과의 협업 가능성을 열어둬 주목을 받았다.
외국 기업도 맥을 같이 했다. 미국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등 물류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를 위해 GM은 전기자동차 배송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월마트, 페덱스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와 협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가전 기업 소니는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소니모빌리티’를 설립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글로벌 기업의 이와 같은 모습은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만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던 시대는 끝났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시대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사업 간 업종 경계가 허물어지고 업종 융합을 통한 새로운 사업기회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종 대변혁은 앞으로 어떤 혁신과 변화가 일어날 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세계무대가 급변하고 있지만 눈을 국내로 돌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국내 시장은 각종 규제로 글로벌 대융합 추세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경영계는 정부의 산업정책 기조에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부정적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대표적인 이유가 각종 규제조치다. 지난해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벤처기업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실시한 ‘기업규제 관련 기업인 인식도 조사’에서 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산업규제 강도에 관한 질의에 응답 기업의 77.3%가 ‘강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어렵게 연구개발에 성공한 기술이 규제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면 결국 혁신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은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로 판로 개척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CES 2022에 참석한 국내 스타트업 기업 콥틱은 앱을 통해 사용자 얼굴 형태를 분석하고 사이즈를 파악한 뒤 맞춤형 안경을 추천·판매하는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은 안경을 비대면으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콥틱은 획기적인 기술을 보유하고도 국내 시장에는 내놓을 수 없어 사업 무대를 미국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현대차 모베드도 바퀴가 독립적으로 움직여 상태가 고르지 않은 도로에서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유모차, 노인들을 위해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상용화가 불투명하다. 국내 도로교통법상 자율주행 로봇은 자동차로 보기 때문에 인도와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CES 2022는 한국 기업이 지닌 융합·혁신 기술이 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 폭탄'과 '정책의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이들 혁신기업이 운신의 폭을 넓히지 못한다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첨단기술이 무기가 된 시대를 맞아 혁신기업이 살 길을 찾아 국내를 외면하고 해외로 발길을 돌린다면 이는 국가 기술경쟁력에도 손해다. 정부 당국은 기업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혁신 기술을 계속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 무엇인 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