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2022에서 삼성전자가 인수·합병(M&A)에 대해 언급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업계 곳곳에서는 오래간만에 나온 대형 소식에 추측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주요 산업으로 부각되며 삼성전자가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량용 반도체 관련 기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기업의 가치가 오른 탓에 상당히 거액의 인수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총매출액은 279조원 규모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 차입금을 제외한 회사의 순현금 보유량은 101조4000억원가량으로 집계됐다.
증권업계는 삼성전자가 경영 순항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022년 삼성전자 D램 수요는 전년 대비 20~22%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삼성전자 D램 공급 16%를 상회할 전망이다”며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세트 부문 신제품 효과와 우려 대비 양호한 반도체 가격 영향으로 역대 1분기 실적 기준으로는 2018년(15.6조원) 이후 최대 실적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호실적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개막한 CES2022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업 중장기적, 단기적인 것을 다 보고 검토하고 있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언급된 M&A가 올해 성사된다면, 2016년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당시 9조4000억원 규모에 인수한 이후 6년 만이 된다.
한 부회장은 "부품과 세트(완제품) 모두에서 (M&A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고 상당히 많이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체적인 진행 단계에 대해서는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라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시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복수의 M&A 추진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 부회장이 행사 진행 중 언급한 산업 분야는 △차량용 반도체 △모바일 △로봇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인데,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차량용 반도체 부문이다.
최근 자동차에 첨단 기술이 접목되는 경우가 많아지며 이에 들어가는 부품인 차량용 반도체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이처럼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 유력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TSMC 등도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부품 특성상 안전성과 신뢰성이 담보돼야 해서, 처음부터 사업을 착수한다면 시험과 허가를 거쳐 실제 상용화까지 수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사업 참여에 앞서 기존에 상용화가 이뤄진 회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기업은 네덜란드의 반도체 기업 NXP고, 이외에 인피니언과 르네사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ST마이크로 등도 후보군에 올라있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기업 NXP는 2019년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최근까지 성장세를 이어가며 테슬라 등의 차량에 탑재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국의 퀄컴이 당시 440억달러 규모의 인수를 추진했으나, 반독점 규정에 저촉돼 무산된 바 있다.
NXP는 앞선 2019년에도 삼성전자와 M&A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러한 소문을 부정했다.
일본의 르네사스와 미국의 TI는 당시 NXP와 더불어 인수 대상으로 소문이 났던 기업들인데, 이들은 시장에서 각각 8.7%와 8.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언급되는 독일의 인피니온과 ST마이크로는 각각 13.4%와 7.6%를 점유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M&A 소식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호실적과 M&A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들어 자율운행 자동차가 굉장히 중요한 산업 분야로 여겨지지며 삼성전자도 참여 의지가 있었지만, 그동안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베이스가 없던 상태였다”이라며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와 프로세서 등 기타 비메모리 제품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추세기 때문에, NXP 등의 기업 인수가 성사된다면 매우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최근 차량용 반도체가 품귀 현상을 겪는 등의 이유로 해당 기업들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올라가 있다는 것은 계속해서 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수설이 돌았던 2019년 당시 NXP의 한 주당 주가는 약 100달러 선이었는데, 올해 들어 2배가 넘는 210~220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시가총액은 약 70조원이다. 이외에 다른 후보 기업인 인피니언이나 ST마이크로 등도 같은 기간 최소 2배에서 최대 4배 이상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NXP의 최대주주는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Fidelity Investments Inc.)로, 전체 주식의 6.74%(약 4.8조원)을 소유하고 있다. 또 다른 후보 기업인 인피니언의 최대주주는 전체 지분의 6.84%(약 4.9조원)을 점유하고 있는 블랙록이고, 르네사스는 일본산업혁신기구(INCJ)가 20.26%(약 5.7조원)가량을 소유하고 있다.
통상 M&A 시에 매도하는 측에서 시장가보다 더 높은 금액을 요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후보 기업군의 대주주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5~6조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M&A 시에 유럽은 30% 이상, 일본은 1/3 이상의 주식을 취득할 경우 잔여주주 전부에게 공개매수청약을 해야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있다. 만일 삼성전자가 법령 기준을 넘기는 비중을 인수한다면, 인수액은 수십조원대까지도 오를 수도 있다.
송명섭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NXP 같은 규모의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몇 곳 되지 않는다”며 “다만 예상 인수 가격에 과거에 비해 너무 올랐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인수했을 때 사용되는 비용과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잘 비교해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