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최근 시중은행들의 은행채 발행이 크게 늘고 있다.
시중은행의 2020년 은행채 발행은 22조8100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53조2350억원으로 폭증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4일 시중은행들이 예대마진 개선으로 자기자본 비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굳이 은행채 발행을 늘려야 하는 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앞으로 고금리 기조로 은행채 가치가 하락해 차환을 통한 경영 방식이 자칫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여하튼 은행들의 은행채 발행이 폭증한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은행채 발행을 늘릴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은행채는 일반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일종의 대출과 같아서 금리가 낮을 때 많이 받아서 투자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유리하다.
시중은행의 경우 저금리 기조에 규제가 느슨할 경우 은행채를 많이 발행해 유동성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둬야 금리상승기 때 수신금리 인상에 따른 지출을 대비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이루어내며 당기순익이 급증했다. 증시 불안으로 투자금들이 은행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요구불예금도 늘었다.
또 지난해 말 기준금리가 1.00%로 증가하면서 예·적금도 증가했다. 즉 내부에서 융통되는 자금으로도 충분히 시중은행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이 은행채 발행을 통한 경영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각종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다.
예대율을 비롯해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 자기자본비율 등에 대한 기준점을 금융당국이 높이자 기존 예·적금 자산만으로 여신사업을 운영하기에는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무리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가계대출 증가 폭이 컸고 돈을 빌리지 못하는 차주가 대거 발생하는 등 시중은행의 여신사업이 크게 요동쳤다.
시중은행 입장에선 은행채 발행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해 여신사업에 대응할 필요성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업의 본질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라면서 “은행을 경영하는 것도 돈을 빌려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시중은행들은 은행채를 6개월물과 1년물로 발행한다. 은행채를 시중은행이 보유 자산으로 상환하는 게 아니라 은행채를 다시 발행해 갚는 차환 방식을 택한다.
보유 자산으로도 충분히 은행채를 상환할 수 있지만 시중은행들이 차환 방식을 택하는 것도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기순이익이 많이 발생해도 자본금에 포함되기 때문에 사용했다가는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각종 지표를 맞추는데 혼선이 발생한다”며 “은행채를 발행해 돌려 막는 방식을 활용해야 만이 탄력적인 경영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올해의 경우 기준금리 인상이 최소 두 차례 이루어질 것으로 예고됐다. 시중은행들이 고정금리부채권을 발행할 경우 가치 하락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를 감안해 최근 시중은행들이 변동금리부채권(FRN)도 늘리고 있는 추세다.
2020년 변동금리부채권은 전체 은행채 중에 3.5%에 해당하는 7900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통화당국이 두 차례로 나눠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추가 상승 가능성을 내비쳐 변동금리부채권이 전체 은행채 중 43.9%로 급증했다. 이는 23조3900억원 규모로 2020년에 비해 2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한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올해 금리가 오르기 때문에 채권 가격이 떨어져 고정금리부채권 발행이 불리하다”면서 “변동금리부채권 발행으로 선회해야 하는데 이는 각 은행마다 경영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은행채 발행 규모와 성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