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26)] 충무로 한복판에서 구타당한 장교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10.18 17:17 ㅣ 수정 : 2021.10.18 17:17

거자필반(去者必返),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법화경의 진리가 실현된 해후(邂逅)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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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명언처럼 충무로 한복판에서 우연히 보고 싶었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시를 위해 과외수업 등으로 바쁘고 힘든 일정이었지만 필자는 수업시간에 필자의 그림을 체크한 故 조성국 미술선생님의 강권으로 미술반에 차출되어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특히 고교동기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학교의 재정지원도 없이 자비를 털어 전시회를 하면서 선후배들 간의 우애가 돈독해지기도 했다.

 

당시의 미술부원들은 대부분 서울대 및 홍익대를 비롯한 미술대학으로 진학했고 현재까지도 중앙대 김선두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동창들이 저명한 화가 또는 디자인 업종 관련자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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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 선후배 친구들이 졸업후 故 조성국 미술선생님과 모임을 하고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과 우측 당시 미술반장을 역임했던 동기 이상엽 화백(인천 수채화협회장)의 전시회를 관람한 모습 (사진=김희철) 

 

■  대부분 부대의 작전분야 보직자들은 정상 출퇴근이 어려워 

 

대부분 부대의 작전분야 보직자들은 정상 출퇴근이 어렵다. 주변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항상 대기하고 전방이나 후방에서 불미스런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상황실에 위치하여 긴급 초동조치를 한다.

 

당시 수방사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불법 도발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발생하는 우발사태를 항상 관찰하고 부대운용을 검토하여 지휘관에게 건의하여 결심을 받은 후 예하부대의 시행을 확인하며 통제까지 해야한다.

 

특히 수방사의 소요진압 임무를 담당했던 필자는 경찰과도 긴밀하게 협조하며 적시적인 상황조치를 할 수 있도록 24시간 대기 상태로 생활했다.

 

부대 전입한지 수개월째 지날 즈음, 작전과 선임 장교가 그동안 고생했다며 후배장교의 육군대학 입교 축하 및 전출 회식을 겸해서 격려 자리를 주선했다. 

 

퇴근 시간이 다되어 하루 일과를 정리한 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당직 근무자들에게 비상 연락체계를 재차 확인한 다음에 모처럼의 회포를 풀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작전과의 근무 여건상 오후 9시가 넘어서 사무실을 나왔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지만 정치는 시끄러웠고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위는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되었다.

 

그래도 충무로와 명동은 여유를 즐기는 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경제 발전으로 인해 윤택해지는 국민들의 삶은 눈에 띄게 선진화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충무로의 구석의 비교적 조용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하며 조촐한 술자리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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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까지 수방사가 자리잡고 있던 충무로 필동의 현재 모습과 고등학교 미술부 동창들과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김희철) 

 

■  복부와 등짝을 패대기치던 정체불명의 취객은 필자를 꽈악 껴안았다

 

수방사의 추가과업이라 볼 수 있는 다음날 새벽에 집단축구가 기다리고 있고 또 작전과 임무특성상 야간에도 대기를 해야한다는 책무감 때문에 모처럼의 회식이었지만 대취할 수는 없었다. 

 

11시가 넘어가자 특정인이 먼저가 아니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쉽지만 다음 업무를 위해 귀가를 빨리하기 위해서이다. 

 

전방 및 육군대학에 근무할 때 보다는 턱없이 적은 양의 술잔을 기울였지만 오랜만에 음주를 한 탓에 얼큰하게 취기도 올랐다. 

 

식당을 나서 충무로 거리로 들어서자 사람들로 붐비었던 인도가 한산해지기 시작하며 일부 취객들의 비틀거리는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필동 부대로 들어가기 위해 신호등 앞에 도달할 즈음 갑자기 앞에서 다가오던 취객 중에 일부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급하게 퇴근하다보니 사복으로 갈아입지 못하고 군복 차림이었다. 

 

그리고는 취객 두세명이 필자에게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급습을 당한 필자를 보던 선배들과 후배는 황당한 상황 속에 잠시 멈칮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필자의 복부와 등짝을 패대기치던 정체불명의 취객은 “야..!  희철이 이새끼야..  연락도 않하고... ”하며 필자를 꽈악 껴안았다.

 

그 취객들은 10여년전 고교 졸업과 동시에 헤어진 뒤 연락이 끊어졌던 고등학교 미술부 동창들이었다.

 

거자필반(去者必返) 즉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법화경의 진리가 실현되는 해후(邂逅) 순간이었지만 당시 당황했던 수방사 작전과 선배와 후배 장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충무로 한복판에서 구타당한 장교였던 필자는 그 황당한 사건 후, 서울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들과 돈독한 만남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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