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태원의 사회적 소통 리더십 (2)]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미친 꿀벅지’의 선택, 승리전략보다 ‘국민적 파급력’

박희중 입력 : 2021.09.02 07:39 ㅣ 수정 : 2021.09.02 08:59

대기업 총수가 주는 ‘심리적 거리감’ 줄이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공유하려는 소통전략 / 대중적 확장 가능성이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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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권력은 정치권력보다 대중과의 차단벽이 더 높고 두텁기 마련이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지속돼온 ‘관행적 사고’에 의한 차이이다. 관행적 사고에 따르면, 대의민주주의체제 속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은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기 때문에 벽을 쌓을수록 불리하다. 벽을 낮추고 수시로 쌍방향 소통을 해야 권력의 획득과 유지가 가능해진다. 반면에 대기업 총수의 적극적 소통은 경영리스크로 돌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총수가 직접 대중과 쌍방향 소통을 한다고 해서 경영실적이 좋아진다는 법도 없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이런 관행적 사고를 파괴하고 사회적 소통의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 뉴스투데이가 그 의미와 현주소 그리고 과제를 분석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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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29일 방영된 SBS TV '아이디어리그'에 출연해 "나 때는 김추자가 좋았다"는 식의 '꼰대 발언'을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진=SBS TV '아이디어리그' 동영상 캡처]

 

 

[뉴스투데이=박희중 기자]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지난달 29일 대중성이 강한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대상 1억원을 포함해 총상금 2억 2900만원을 걸고 주최하는 ‘국가발전 프로젝트 공모전’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SBS TV ‘아이디어리그’에 심사위원 역할을 하는 ‘아이디어 캐처’로 나왔다. 

 

대한상의 회장 자격이다. '경연 프로그램' 열풍을 만들어낸 TV조선 미스트롯의 간판 심사위원 장윤정과 같은 역할을 맡은 셈이다. 트롯 가수가 아니라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비즈니스 아이디어 제안자를 선발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아이디어 캐처는 모두 6명.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김택진 NC소프트 최고창의력책임자(CCO),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이승건 토스 대표,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 등이다.

 

최 회장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방송에서 2가지 방식으로 ‘사회적 소통’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 김추자를 기억하고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평균적’ 대중문화 감수성, 사회적 소통에 유리한 조건

 

첫째, ‘인간적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과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대기업 총수라는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줄이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이런 종류의 의도는 어색하게 표현되기 쉽다. 하지만 베테랑 사회자인 전현무 아나운서가 입심을 발휘해 분위기는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사회자가 아이디어 캐처들에게 호칭을 묻자 김택진 CCO는 ‘택진님’이라고 불린다고 답했다. 이에 최 회장은 “그럼 우리 님자로 호칭을 통일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30대인 박희은 파트너가 “안녕하세요 태원님”이라고 말을 걸자 “예 희원님”이라고 응답했다.  

 

최 회장은 본인에 대한 주변의 호칭에 대해 상당히 튀는 답변을 했다. "나는 '미친 꿀벅지'로 불린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더라고요”라면서 웃음 지었다. 주변에서 이한주 대표등이 "나도 미친 꿀벅지"라고 경쟁적으로 나서자, “한 번 걷어 볼까요”라고 응수했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가 ‘은근 귀여움’이 내 별명이라면서 눈을 찡긋해보이자, 최 회장은 “다시 해봐요”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이 대표는 1982년생, 최 회장은 1960년생이다.

 

1라운드 아이디어 발표가 끝나고 2라운드 진출자를 가리는 동안 진행된 ‘막간 토크’에서는 대중문화 취향을 드러냈다. 전현무 아나운서가 아이디어 캐처들에게 “‘나 때는 말이야’ 토크를 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세칭 '꼰대 감수성'을 갖고 있는지를 꼬집어서 질문한 것이다. 

 

최 회장은 “매일 하고 있다”면서 “나 때는 김추자 노래가 좋았다는 식의 ‘나 때 토크’를 하곤 한다”고 고백했다. ‘님은 먼 곳에’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김추자는 1970년대 흑백 브라운관 TV시대를 장식했던 인기가수 였다. 당시 초등학생들에게도 친숙했다. 초등학생 최태원은 평범한 감수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걸그룹은 있느냐”는 질문에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소녀시대’를 꼽았다. 전 아나운서가 “소녀시대의 어떤 노래를 좋아하느냐”고 캐묻자, 막히지 않고 “‘지지지’같은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해 소녀시대 찐팬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소녀시대는 국민걸그룹으로 불릴 정도로 세대를 넘어서는 인지도를 갖고 있다. 때문에 최 회장은 60대 초의 연배에 걸맞는 평균적인 대중문화 취향을 가진 셈이다.

 

또 “남몰래 눈물 흘린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남이 봐도 운 적은 있지만 남 몰래 울지는 않는다. 제 성격이 남 몰래 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아서 극복해보자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예요”라고 단언했다. “남몰래 우는 게 취미생활입니다. 일년에 한 번은 깜깜한 방에서 엉엉 웁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줘요”라고 토로한 김택진 CCO의 답변과는 대조적이었다.

 

최 회장은 자신이 칭찬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기분 좋은 댓글은 어떤 것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들과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제가 더 잘생겼다고 하는 댓글에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면서 활짝 웃었다. 

 

과거의 기억으로 김추자를 언급하고, 요즘 걸그룹으로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최 회장의 대중문화 감수성은 보통 한국인의 눈높이에 존재한다. 이는 사회적 소통에 유리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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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달 29일 방영된 SBS TV '아이디어리그'에서 공동 1위에 오른 프로젝트인 '닥터나이트(꼭 병원에 가야해)' 발표를 듣고 있다. 인간적 면모를 드러낼 때와는 달리 다소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진=SBS TV '아이디어리그' 동영상 캡처]

 

■ 최태원은 아이디어의 ‘공공성’에 가치부여, 김택진이 ‘시장경쟁력’을 강조한 것과 달라

 

최 회장의 두 번째 소통 포인트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전파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안된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논점에서 일관되게 드러났다. 

 

아이디어리그 1회에 방송된 아이디어는 사전 서류심사를 통과한 24개 프로젝트였다. 이중 2라운드에 7개가 진출했고 2개 프로젝트가 공동 1위를 차지해 본선 진출권을 얻었다. 

 

최 회장은 이 경연과정에서 평가의 기준으로 ‘한국경제 기여도’, ‘국민적 파급력’ 등을 강조했다. 김택진 대표가 ‘승리 전략’의 유무를 핵심 잣대로 삼아 평가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김 대표는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이라는 현실주의에 방점을 둔 데 비해, 최 회장은 ‘국가발전 프로젝트’라는 취지 자체에 집중하는 원칙적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1라운드 경연에 들어가기 전에 사회자가 심시기준을 묻자 김 대표는 “winning strategy(승리 전략)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만한 아이디어인지를 주목하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최 회장은 “국민에 미치는 파급력, 국민 전체에게 온기를 전달 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겠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앞서 대한상의의 국가발전 프로젝트 취지와 관련해서도 “코로나가 끝나도 위축된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평소보다 많은 boosting(부양) 효과가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많은 국민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김 대표가 아이디어의 ‘시장경쟁력’에 무게를 뒀다면, 최 회장은 ‘공공성’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실제 심사결과에서도 이 같은 차이가 나타났다. 공동 1위에 오른 아이디어인 ‘사소한 통화(부모님 잘 지내시죠)’는 종합상사맨인 이봉주 씨가 제안한 치매진단 프로젝트이다. 부모님과 규칙적으로 영상통화를 통해 일상적 질문을 하면, 부모님의 대답내용을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치매여부를 조기진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앱이다. 이봉주 씨는 “무거운 주제일수록 해결책은 일상 속의 작은 곳에서 발견된다”면서 “치매를 조기진단하면 진행단계를 낮출 수 있다”면서 가까운 의료기관과의 연계 치료 시스템도 제안했다.

 

최 회장과 김 대표는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김 대표는 “여러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여러 가지 기술발전이 아이디어 실현환경이 될 것 같다”면서 “인지장애 아이를 둔 사우가 관련 앱을 개발했는데 노인 치매에 대해 생각한 게 너무좋다”고 논평했다.

 

최 회장은 “치매는 초기 진단이 중요하다”고 공감을 표명하면서 “치료과정도 방안이 있나요”라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다.

 

사회자가 공개한 평가결과는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이 ‘최고점’을, 김 대표가 ‘최저점’을 부여했다. 최 회장은 “영점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승리 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사소한 통화’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다.

 

기업이 시장만능주의에서 탈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지속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최 회장의 잘 알려진 지론이다. ‘아이디어리그’를 통해서 전파하고자 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평가기준도 같은 맥락이다. 최 회장이 이 같은 가치를 기업인이 아닌 일반 국민과 더 폭넓게 공유할 수 있을 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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