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문성후 ESG중심연구소 소장] 한국 글로벌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태세전환(態勢轉換)’이 가장 빠른 기업들이다. 트렌드도 빨리 따라 잡고, 벤치 마킹도 탁월하며, 기술 혁신은 선도적이다. ESG의 미풍이 감지되자마자 한국 대기업들은 ESG를 빠르게 수용하였다. 오죽하면 몇 년 후 한국의 대기업들간에 ESG 평가를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다들 우등생이 될테니 그 차이를 굳이 구분해봤자 변별력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큰 격차를 보일 ESG 경영은 남아 있다. 바로 공급망(협력사)이다. 아무리 대기업이 ESG를 잘한다고 해도 공급 사슬(supply chain)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협력사들이 얼마나 ESG를 잘 준수하고 있는가는 다른 얘기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처럼 한국 대기업들은 협력사의 ESG를 지금부터 챙겨야 한다.
ESG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 평가 분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본시장에서의 ESG 평가이다. MSCI, S&P 등 전문 평가기관 혹은 신용평가 기관 등에서 주주와 채권자를 위해 실시하는 ESG 평가이다. 다른 한 부분은 공급 사슬을 구성하는 협력사들에 대한 평가이다. 특히, 협력사들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자본조달을 넘어 고객들로부터 최종 판정을 받는 냉엄한 성적표이다. 최근 일본의 유니클로 셔츠가 중국 신장 내 소수 민족인 위구르인의 노동력 착취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미국 관세 국경 보호국(CBP)은 유니클로 해당 셔츠 수입을 금지하였다.
국제권리변호사협회(IRA:International Rights Advocates)는 아프리카 콩고 내 코발트 채취 과정에서 아동 노동력 착취를 했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기업 Apple, Google, Tesla, Dell, Microsoft에 법적 문제 등을 제기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인 필자의 경험상 기업 소송에서 원고는 늘 덩치가 큰 피고를 찾는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아동 노동력을 착취한 글렌코어(Glencore)보다 코발트의 최종 사용자인 Apple등을 피고로 하는 것이 더 강한 임팩트를 가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언제든 자사에 ESG 위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사실 초대형기업들이 수많은 협력사 중에 누가 ESG를 위반하고, 누가 잘 준수하고 있는지 일일이 구별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은 이제 대기업인 고객사가 ESG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공급망 내 협력사들도 ESG를 잘 준수하게끔 고객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점차 공급망의 위험은 바로 회사 본인, 즉 고객사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말 것이다.
좋은 공급사란 누구일까?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라는 공급망 지속가능성 촉진을 위한 이니셔티브가 있다. 이 기관은 5개 부문 43개 지침으로 구성된 행동 규준을 협력사가 적극 준수하도록 요구하며 공급망 평가를 한다. 5개 부문은 노동, 윤리, 건강 및 안전, 환경, 경영 시스템이다. 공급사의 ESG 준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러한 지침 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급사의 기업 목적이 고객사의 기업 목적과 ESG 측면에서 일치하는 것이다. 고객사가 가진 경영 가치와 철학을 함께 공유하고 자발적으로 가치와 철학에 부합하는 경영을 추진하는 공급사가 좋은 공급사이다.
자동차 산업만큼 ESG 열풍에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대면하고 있는 산업은 없다. 친 환경차에 대한 수요 급증은 분명히 기회이지만, 급격한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 금지 조치는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들에는 큰 위협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동차 부품 공급사와 고객사인 자동차 제조사 간의 ESG 경영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특히, 자동차가 환경 파괴의 주원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에 친환경 부품은 고객사와 협력사에게는 필수적인 과제이다.
이런 면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부품 공급사인 현대모비스는 공급사의 ESG 자격에서는 분명히 모범이다. 현대모비스가 2020년 전 세계에서 획득한 지식재산권 중 절반가량은 친환경 특허이다. 친환경 모빌리티를 위해 R&D에 집중한 덕분에 1000여 건의 글로벌 IP를 취득하였다. 2040년까지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에도 국내 자동차 부품사 최초로 야심 차게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연세대 등이 실시한 ESG 평가에서 현대모비스는 E(환경) 부문에서 강점을 보여 ESG 종합평가 A등급을 받았다. 현대모비스는 친환경 자동차 부품에 대한 독자 기술 확보는 물론, 이미 2009년부터 ESG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지속 가능 보고서를 발간해온 ESG 모범기업이다.
현대모비스는 자사뿐이 아니라 자사의 2차, 3차 협력사에도 엄격하게 ESG를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OECD 관리기준에 따른 프로세스를 구축하여 분쟁 지역 광물 미사용을 협력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신규 등록 협력사가 현대모비스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의 ‘공급망 ESG 지속가능성 리스크’ 기준을 통과하고, 경우에 따라 실사도 받아야 한다.
ESG 경영이 건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급 사슬(supply chain) 마디마디가 단단해야 한다. 특히, ESG 공급망 경영은 ‘미들 업 다운(middle-up-down)’이다. 1차 부품 공급사가 중심을 잡고 고객사와 2차, 3차 협력사에 ESG 경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그룹 공급망의 중추로서 그 역할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는 이유이다.
◀문성후 소장의 프로필▶ ESG중심연구소 소장, 경영학박사, 미국변호사(뉴욕주),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부를 부르는 평판(한국경제신문 간)' 등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