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선(480)] 코로나 불황에 일본 직장인들이 떠올린 2년 전 대형보험사의 기상천외한 인원감축 악몽

정승원 기자 입력 : 2021.08.10 09:47 ㅣ 수정 : 2021.08.10 09:47

명문대 졸업 엘리트 직원들 경비회사 등에 강제전보시키며 급여와 자존심 동시에 상처주는 방법으로 4000명 인원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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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불황이 길어지면서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 2년전 손해보험 재팬의 기막힌 인원감축 방법이 악몽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출처=일러스트야]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기업들은 실적이 악화되고 단기간에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으레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 수를 줄이면서 인건비 절감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주된 원인으로 많은 일본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와중에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2년 전 모두의 치를 떨게 했던 한 보험사의 인원감축 방법이 다시금 회자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자진퇴사를 강요하는 사례가 나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9년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규직을 포함한 직원 수천 명을 단숨에 감축한 기업은 바로 일본의 유명보험사 손해보험 재팬(損保ジャパン)이다.

 

당시 손해보험 재팬은 희망퇴직도 모집하지 않고 전체 종업원의 15%에 해당하는 4000명을 2020년 말까지 감축하여 100억 엔 규모의 수익개선 효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발표했는데 미국처럼 자유로운 해고가 불가능한 일본에서 무슨 수로 4000명을 단기간에 감축할 것인지 모두가 궁금해 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일본의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 직원들을 상상도 못해본 근무지에 배치하면서 급여와 자존심을 모두 깎아내린 것이다. 이를 위해 손해보험 재팬은 모기업의 계열사 중 하나인 경비회사와 개호회사를 활용했다.

 

그 결과,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선망 받는 직장으로 손꼽히는 보험회사에 근무하던 직원 4000명은 하루아침에 건물 경비원이나 노인요양 시설에서 치매노인들을 돌보는 회사로 전환 배치되었다. 심지어 급여도 변경된 업무에 맞추어 절반 이하로 삭감되었지만 계열사 간 전환배치는 일본에서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막무가내식 전환 배치에 당사자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언론취재가 시작되며 문제가 커지는 분위기였지만 사측은 새로운 업무가 맘에 안 들면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직원이 자진해서 퇴사한다면 추가비용 없이 인원을 정리할 수 있고 퇴사하지 않고 버티더라도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경비와 개호업무에 인원을 보충하면서 손해보험 재팬의 종업원 수는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아무리 일방적인 전환 배치로 업무가 갑작스레 바뀌었다고는 하나 경비나 개호가 보험에 비할 수 없는 안 좋은 직업이라고는 차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심리적인 압박도 당사자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며 자진퇴사로 내몰았다.

 

전문가들은 손해보험 재팬의 종업원 감축방식이 세간의 직업차별을 이용한 대담하면서도 교묘한 테크닉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2021년 4월 기준으로 손해보험 재팬의 종업원 수는 2만 3447명을 기록하여 목표로 한 4000명 감원에도 성공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때문에 코로나로 여느 때보다 인원감축에 열을 올리는 기업들이 많은 상황에서 비슷한 방식이 나올 가능성이 다분해짐에 따라 일본 직장인들의 간담이 다시 서늘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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