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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06)

전적지 답사에서 만난 전쟁영웅들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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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05.24 19:23 ㅣ 수정 : 2021.05.26 16:20

22km 거리의 대구를 위협하는 다부동 전투에서 열세한 병력으로 유례없이 치열한 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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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남침전쟁시에 1사단장으로 다부동지구전투에서 북한군을 성공적으로 저지시킨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작전토의하는 모습과 다부동지구전투 상황도  [사진=전사편찬연구소]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백선엽 장군은 상황판 지도에서의 설명을 잠시 멈추고 학생장교들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다부동 전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50년 8월3일부터 9월22일까지 벌어졌던 대구 북방 다부동 전투는 유례없이 치열했다. 김일성의 북한군은 처음부터 다부동을 노렸다. 불과 22km 떨어진 대구를 바로 찌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화력이 우세한 미군을 피해 김일성은 국군 1사단 정면에 무려 북한군 3개 사단 2만여명의 병력을 몰아넣었다. 당시 백선엽 장군의 지휘 아래 있었던1사단 병력은 모두 7000여명으로 병력은 3대 1, 화력은 10대 1로 북한군에게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북한군 전쟁지도부는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다. 

 

북한군의 수암산, 유학산 선점에 당황, 또 진목동까지 침투하여 사단 주저항선 돌파 위기

 

8월12일 하달된 군단 작전명령에 명시된 'Y'선이란 1사단의 좌 1선 15연대가 고수하고 있던 왜관 북쪽 6.5km지점부터 각연대를 5~10km 가량 후퇴시켜 좌로부터 369고지-수약산-족계산-신주막을 잇는 작전 지역을 말한다. 이 선은 백선엽 장군이 지형 정찰 후 결정한 최후 방어선이었다.

 

이 방어선은 전투정면이 20km에 달하여 매우 넓은 방어 정면이었으나 적을 감시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고 또한 1사단과 인접해 있는 6사단, 미군 1기병사단과 연결되어 방어에 유리했다.

 

13일 백선엽은 좌익에 15연대, 중앙에 12연대, 우익에 11연대를 각각 배치했다. 이때 1사단은 개전 이래 처음으로 편제상의 병력은 70%가 보충되어 90~100%정도를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T-34전차 격파가 가능한 3.5인치 로켓포까지 지급되어 사기가 더 올라갔다.

 

이러던 와중에 뜻하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는데 12연대가 재정비를 하고 있을 동안 북한군 13사단이 12연대의 꼬리를 물고 침투하여 수암산과 유학산을 먼저 점령한 것이다. 이는 2군단장 유재흥 장군이 쓸데없이 철수경로를 통제했고 백선엽까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두 고지에 배치할 병력이 부족해져 버린 탓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12연대는 13일 공격을 실시해 수암산을 탈취했으나 유학산을 점령하는데 실패했다. 유학산은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고지로 중요한 요충지라 1사단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곳을 탈취해야 했다.

 

14일 새벽 인민군 3사단 1개 연대가 328고지를 공격하는 시각에도 12연대는 유학산을 계속 공격했다. 15연대는 328고지를 빼앗겼다가 고전 끝에 탈환에 성공하는 것을 반복하는 혈투를 벌였지만, 결국 12연대는 유학산 점령에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대구에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기능이 집중되어 있었던 대구만이라도 점령하라는 김일성의 독전으로 광복절에 다부동으로 총공세를 감행하여 사단 좌익 15연대는 328고지를 빼앗긴 채 고전했고 진목정에서는 진전없이 피만 흘리는 격전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때 좌익 11연대를 공격한 인민군 13사단이 야간을 이용하여 진목동까지 침투하여 사단 주저항선이 돌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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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남침전쟁시에 1사단장으로 다부동지구전투에서 북한군을 성공적으로 저지시킨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작전지시를하는 모습  [사진=전사편찬연구소]

 

■  백선엽, 권총을 들고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쏘아라!

 

이와 같이 11연대 일부 부대가 북한군에게 밀려 자칫 미27연대 측면이 뚫릴 위험에 처했다. 다급해진 미 연대장이 백 사단장에게 “한국군은 도대체 싸울 생각이 있느냐?”고 힐난했다.

 

미군의 볼멘소리를 듣자마자 백선엽 장군은 유학산 아래에서 백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부 도망병이 발생하던 328고지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일장 연설을 했다. 

 

“지금까지 잘 싸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저 아래에 미군들이 있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쏘아라. 나를 믿고 앞으로 나가서 싸우자!”

 

그리고 백선엽은 허리춤에 찼던 권총을 빼들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11연대 1대대 장병들의 중간을 가르면서 달려 나갔다. 다급한 상황에서 솔선수범하여 몸소 보여주었던 ‘사단장 돌격’이었다. 

 

사단장의 독전과 솔선수범에 감동한 병사들이 되살아난 ‘임전무퇴’의 화랑도 정신에 불타며 용전분투(勇戰奮鬪)하여 뺏고 뺏기기를 열다섯 차례 반복한 끝에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며 방어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는 백선엽 장군이 진목동 방면으로 나가 혼란속에 후퇴하고 있는 11연대 1대대를 수습하여 328,  673고지로 역습하는 한편, 좌측에 있던 12연대 1대대를 인민군 전차가 돌파한 진목정으로 급파하여 적의 돌파구를 봉쇄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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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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