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실태조사, 조사 효율성 향상시키고 정책성과 진단에 활용해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법적 근거 마련 이전에 조사 업무 상당 기간 진행돼온 상황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월 5일 시행된 ‘방위산업 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방위산업발전법)에는 방위사업청장이 방위산업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정보제공시스템을 구축·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제 방위산업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와 그 결과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방위산업발전법 제6조에 따르면, 방위산업 실태조사는 방산업체의 수주, 생산, 매출, 수출입 등의 통계조사와 함께 국내외 방위산업 시장동향 및 경쟁력, 방위산업의 인적자원, 설비투자·기술수준 및 연구개발, 부품국산화개발 대상 품목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는 지난 1983년부터 방산업체를 대상으로 현황 및 경영 성과 등을 조사하여 ‘방산업체 경영분석’을 발표해 왔다. 이와는 별개로 방위사업청은 지난 2016년부터 방산업체는 물론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방위산업 실태조사를 매년 시행해 오고 있다. 따라서 법적 근거는 최근 마련됐지만 방위산업에 대한 조사 업무는 이미 상당 기간 진행돼온 상황이다.
문제는 현행 방위산업 실태조사가 대부분 업체 자체적으로 작성한 내용에 의존하고 영세한 업체는 조사마저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조사 결과 또한 방위산업 정책 수립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해 실태조사의 효율성과 조사 결과의 활용성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 현행 실태조사, 조사 효율성 미흡하고 정책성과와 연계되지 않아
현행 실태조사는 업체에 조사서를 보내 해당 항목별로 모두 기재하도록 요구한 후 제출 받는 방식이다. 즉 업체가 조사서를 받으면 모든 항목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작성하여 적기에 제출할 것이란 전제로 진행된다. 하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조사서 작성이 매우 번거롭고 부가적인 일이며, 특히 영세한 업체들은 조사서 작성이 부담은 크지만 실익은 거의 없다.
더구나 작성 항목이 다양해 여러 부서 관계자가 분담해야 하는데다 평상시 관련 데이터를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 경우 정확히 기재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이로 인해 조사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적시에 충실한 조사서를 제출 받기 곤란하고 현실적으로 업체에 강제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조사기관은 조사서 제출을 독려하면서 한편으론 데이터의 신뢰성 검증에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현실이다.
게다가 방위산업 정책성과는 실태조사와 별개로 방진회가 경영분석 조사를 통해 집계하는 방산업체의 매출액, 수출액, 가동률 등 일부 경영성과 지표 위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실태조사와 정책성과가 연계되지 않으니 매년 방위력개선비와 방위산업 지원 예산이 증가해도 지난 2017년 실적처럼 방산매출액과 수출액이 감소하면 예산 투자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즉 힘들게 실태조사를 수행하고 신뢰성을 검증해 방산 통계를 만들어도 정작 방위산업 정책을 수립하거나 정책성과를 평가하는데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가통계 작성의 주무부처인 통계청은 각 부처가 정책에 필요한 통계를 작성해 활용하는 ‘통계 기반의 정책평가제도’를 시행하도록 주문하지만 국방 분야는 적용대상이 아니라 해당되지 않는다.
■ 정부기관과 업체 통계자료 통합하고 정책성과 진단에 활용돼야
그럼에도 방위사업청은 통계업무 수준을 높이고 정책업무와 긴밀히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4일 한국방위산업학회가 개최한 ‘방위사업청장 초청 방산간담회’에서 강은호 청장은 올해 방위사업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도 방위산업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방산정책을 펼치거나 정책성과 진단을 하겠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태조사의 보완은 통계청이 권장하는 방식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통계청은 업체를 대상으로 통계자료를 조사하기 이전에 관련 정부부처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행정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통계를 작성하도록 권장한다. 통계조사의 어려움을 일부 해소하고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장 받기 위해서다.
이와 같이 방위산업 실태조사도 우선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국방과학연구소 등 정부기관이 방산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계속 입수하는 각종 데이터를 일정한 양식에 따라 꾸준히 취합해 정리하고, 조사서 기반 조사는 반드시 업체가 생산해야 하는 특정자료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앞서 정리된 내용과 통합하는 방식으로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실태조사 결과를 정책성과 진단에 활용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방위사업청의 ‘2021년 방산 중소·벤처기업 지원사업 가이드북’에 따르면, 지난해 937.8억원에서 올해 1767.4억원으로 지원예산이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실태조사를 통해 예산 투자에 대한 성과를 진단하고 정책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업무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에 대한 역량 구비가 필요하다. 실태조사는 단순히 통계자료를 조사·정리하는 행정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 국가 통계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통계 활용하는 역량 구비돼야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위산업 실태조사를 국가 통계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주요산업 수준으로 조사항목을 점차 확대하고 통계청과 업무 협업체계를 구축하되, 미 정부계약통계시스템(FPDS)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업체에 대한 실태조사 설명회 개최, 통계 전문인력 양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위산업 실태조사와 방산정책의 연계성을 다년간 연구해온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업체 지원에서 산업 육성으로 방산정책의 틀을 전환하려면 정부 차원의 통계 생산과 정책성과 진단에 통계를 활용하는 역량이 구비돼야 한다”면서 “방위사업청이 별도의 실태조사 전담 지침을 제정하고 매년 실태조사 추진계획을 수립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방위산업발전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방산정책의 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국내 방위산업은 정부의 예산 투자와 다양한 지원제도 시행으로 발전 기반이 조성되고 경쟁력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다. 차제에 방위산업 실태조사가 제대로 자리 잡아 정책성과를 진단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