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이채원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북시흥농협을 비롯한 수협, 새마을금고 등의 상호금융에서 대출을 받아 투기한 사건이 전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같이 농어민을 위해 마련된 대출을 우회적으로 이용하는 투기꾼들로 인해 지난해 상호금융권의 비주택 부동산담보대출은 30조원이 넘게 증가했다. 따라서 금융당국의 상호금융 비주담대 규제가 불가피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상호금융의 본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농어민을 위한 상호금융…대출도, 조합원 행세도 쉬워
상호금융은 농협·수협·축협의 단위조합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예금과 대출 등을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애초에 농어민을 위해 만들어진 금융시스템이기 때문에 일반 시중은행의 금융상품과는 차이가 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혹은 비주택담보대출의 심사가 까다로워진데 반해, 상호금융의 비주담대 심사는 비교적 수월하다.
상호금융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농어민들을 위해 농기계, 비료 구입을 위한 농사대금을 빌려주고 자녀학비와 같은 자금도 쉽게 대출해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수협의 ‘해양수산인 우대대출은 ’2%대의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있으며, 농협의 ‘농부 적금’은 최고 5%대의 금리로 가입할 수 있는 등 농민과 어민에게 금리 혜택을 제공한다.
토지대출의 경우 농민이 50억 토지를 사기 위해 대출받으려고 한다면 최대 40억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상호금융의 LTV(주택담보인정비율)는 40~70%까지 적용되는데 회수가치에 따라 10%가 더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관계자는 상호금융의 대출에 대해 “받기 쉬운 대출”이라고 칭하곤 한다.
또 대출 심사가 쉬운 만큼 조합원을 흉내 내기도 쉽다. LH직원 중 일부는 경기 시흥시 북시흥 농협의 조합원으로 등록돼 있었다고 알려진다. 지역농협의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농업인 임을 증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조합원 가입요건 중에는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자’, ‘농업·농촌기본법 규정에 의한 영농조합법인 및 농업회사법’ 등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확인을 거치지 않고도 조합원 심사 통과가 가능해 가입요건은 구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지난해 상호금융 비주담대 30조↑…농어민 지원하는 상호금융 본래 취지는 지켜야
농어민이 아닌 이들이 상호금융을 통해 대출을 받는 일이 증가한 것은 수치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호금융의 비주택 부동산담보대출 잔액은 257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0조7000억원이 늘었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상호금융의 대출현황을 분석하고 조일 예정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토지담보대출 실태를 조속히 점검하겠다고 밝혔으며 금융위 또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강화, 비주담대 LTV(담보인정비율)를 축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나선 이상 상호금융의 비주담대는 규제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대출이 필요한 농어민까지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금융당국은 투기세력을 만들어낸 현 시스템을 개선하되, 농어민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상호금융의 본래 취지는 지켜야 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워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