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CBDC 발행하면 삼성페이·카카오페이와 경쟁할까
[뉴스투데이=박혜원 기자] 전 세계 주목을 받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가 한국에서도 하반기 파일럿 테스트를 앞둔 가운데, 시중은행들의 고민이 깊다.
CBDC 발행에 따른 현금 이용 축소는 곧 은행의 수익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은행으로 흘러 들어가는 예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카카오페이나 삼성페이와 같은 간편결제 시스템은 CBDC와 시장 점유율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 현금보다 알리페이, 위챗페이 쓰는 중국에선 CBDC 성공 가능성 높아/한국은행은 CBDC 필요성 낮게 평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뜻하는 CBDC는 코로나19가 야기한 새로운 ‘뉴노멀’로 꼽힌다. 최근 현금 이용이 줄어드는 흐름에 더해 가상화폐 시장이 커지면서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디지털 화폐의 제조·유통·관리를 중앙은행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다.
CBDC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 추세이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공식적으로 CBDC를 사용하겠다는 목표로 현재 대규모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중국인들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현금보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때문에 중국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할 경우 시장에서 정착하기 쉬운 요건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연방준비제도가 CBDC 발행 전제 조건을 담은 연구결과를 발간했다. 이외에도 한은에 따르면 현재 66개국 중앙은행 중 86%가 CBDC 발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은 현재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단계다. 한국은 이미 현금 없이도 간편결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필요성이 당장은 크지 않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다만 ‘현금 없는 사회’가 가까워짐에 따라 발권 당국인 한은이 비대면 결제 환경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다. 오석은 한은 금융결제국 결제정책팀 과장은 지난해 9월 진행한 강좌에서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은행이나 카드시스템, 민간지급결제시스템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시스템 오작동이나 마비 시 경제에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은은 은행 계좌와 연동돼 인터넷 연결이 필수적인 간편결제와 달리,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CBDC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은은 지난해 2월 CBDC 전담 조직을 꾸리고, 지난해 6월에는 법률자문단을 출범시켰다. 현재 외부 컨설팅을 통해 CBDC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올해 하반기 중 가상환경에서의 CBDC 가동 테스트도 예정돼 있다.
지난달 8일에는 외부 연구 용역 보고서 ‘CBDC 관련 법적 이슈 및 법령 제·개정 방향’을 발간해 CBDC 제도화를 위한 한국은행법 특별법 제정 및 민·형법 개정 필요성을 밝혔다.
■ 한국은행은 은행및 핀테크 기업과의 협업 방식 검토/시중은행은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로 변화 대비
이렇듯 CBDC가 화폐 체계의 혁신을 이끌 것이라 주목을 받은 가운데, 시중은행은 고민이 깊다. CBDC는 현금 이용 감소 추세를 가속화하고, 이는 곧 시중은행 수익성 약화로 직결될 수 있어서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거래의 신속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CBDC의 효과는 자명하다”면서도 “민간은행 예금이 줄어들면서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커지고, 대출 여력이 감소하는 등 수익성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한은은 중앙은행이 계좌 관리 등을 담당하고 시중은행과 핀테크 업체가 중개자로서 대국민 서비스를 담당하는 ‘혼합 운영’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부터 운영까지 책임지는 직접운영 방식은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응해 시중은행은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개발로 대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한은행이 LG CNS와 공동으로 개인이 소유한 원화를 디지털 화폐로 환전하는 등의 기능을 갖춘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하나은행, 우리은행도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한은과 소비자 사이를 중개하는 플랫폼이 시중은행에 ‘돈’이 될까.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런 것을 크게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화에서 “디지털 화폐 현실화까지는 현재로선 시간이 걸리겠지만 피할 수 없는 흐름일 것”이라며 “‘은행의 플랫폼화’ 전략이 생존 요건이 될 것이라 보고 개발 중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