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있는데 국산화? 정부 주문에 업계는 ‘어리둥절’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정부가 최근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발족하고 중장기적인 공급망 강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미 생산 중인 다른 제품이 있는데다 전혀 이익이 될 것 같지 않아서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지난 4일 현대자동차·삼성전자·DB하이텍 등 자동차와 반도체 기업과 함께 미래차와 반도체 시장 선점 및 국내 공급망 안정화 협약을 발표했다.
산업부 강경성 산업정책실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중장기적인 국내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차량용 반도체 기술개발, 성능·인증 지원을 강화하고 인프라 구축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도체와 자동차 업계는 이번 협의체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이번 정부의 조치가 업계에 전혀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글로벌 수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반도체는 마이크로 콘트롤 유닛(MCU)이다. MCU는 자동차 내에서 엔진 구동·전력 시스템·브레이크 시스템 제어 등을 담당하는 핵심 반도체다. 산업부는 "아직 구체적인 생산품목이나 연구개발 계획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다"지만 업계에서는 MCU의 생산이 유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반 내연기관 완성차 1대에는 300개 내외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수급난이 일어난 MCU 반도체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미 국내에는 MCU 외에 차량용 반도체가 존재한다.
삼성전자는 LSI사업부에서 자체 차량용 프로세서 ‘엑시노스 오토’를 생산하고 있다. 테슬라와 자율주행차 반도체 자체개발 가능성도 열어 둔 상태다.
지난 1월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가 삼성전자와 자율주행차 5나노 반도체를 함께 개발하기 위해 손을 잡을 계획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테슬라와 반도체 협업과 관련) 일론 머스크 CEO가 삼성전자 반도체를 언급한 것으로 안다. 이는 장기적인 부분에서 서로 협력해 나가겠다는 취지 정도”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미래차를 위한 반도체 생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2월 SiC웨이퍼를 제조하는 미국 듀폰을 4억5000만달러(약 5400억원)에 인수해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 반도체를 생산 중이며 SiC 전력반도체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는 국내 유일 기업인 예스파워테크닉스에 투자해 지분 33.6%를 인수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국내 전력반도체 분야 생태계를 육성하는 동시에 전기차, 수소차 등에 꼭 필요한 전력변환을 제어하는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은 이미 생산 및 개발에 착수한 차량용 반도체가 있는 상태에서 정부 협의체로 또 다른 차량용 반도체를 내놔야 하는 상황이 됐다.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생산 대비 회사에 이익이 안된다”며 “지금 증설한다고 해도 빨라야 4분기 부터 생산이 가능해서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현재 대부분의 국내 파운드리 기업들은 풀캐파 (100% 설비이용)상태라 추가적인 반도체 생산도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차량용 반도체는 인증절차가 까다롭다"며 "정부가 이번 협의체를 통해 인증절차 간소화 및 속도를 낸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시장에 진출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시장 진출 역시 이미 글로벌 강자들이 있어 진입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