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91)] 전국 최저 기온을 기록하던 최전방 동토의 왕국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로(하)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02.24 14:18 ㅣ 수정 : 2021.02.24 14:18

육군대학 입교자들의 군번순으로 아파트를 배정함에 따라 들통난 사관학교 졸업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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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1988년 입주했던 창원시 진해구 옛 육군대학부지의 노후된 군인아파트 모습 [사진=동영상캡쳐]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전방 험지이자 전국 최저 기온을 기록하던 동토의 왕국에서 장장 7시간 넘는 이동을 하여 당시 따뜻한 남쪽나라 진해에 있던 육군대학에 도착했다.(현재는 육군대학이 대전시에 위치)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육사 동기 및 선배들이 환영을 해주었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아파트 관리실에 들려 필자의 숙소 열쇠를 받아 배정된 아파트를 확인했다.

 

위의 사진 속에 아파트는 선배들과 군번이 빠른 동기들이 입주하는 비교적 양호한 18평형 아파트였다. 필자에게 배정된 곳은 사진속의 비교적 양호한 아파트 뒤쪽에 위치했고 1960년대에 연탄 보일러식으로 건축한 매우 낡은 9평짜리 구형 아파트 였다. 그것도 제일 높은 4층이었다.

 

육군대학에서는 매년 4~6백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켜 학생장교들의 숙소 관리도 중요한 업무였다. 당시 육군대학의 아파트와 관사는 구형과 신형으로 구분되어 있고 크기도 상이하여 입주자 선정시 공평하게 군번순으로 좋은 아파트부터 배정했다.

 

사관학교 졸업시 부여된 군번은 최종 졸업성적 순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군번이 빠른 사람들이 사관학교 공부도 잘했다는 것이고 학생장교들이 배정받은 아파트의 위치로 최종 졸업성적도 식별이 가능했다.

 

흙먼지 없는 아스팔트 도로와 네온싸인 불빛으로 대낮 같은 도심의 첫날 밤이 좋아

 

‘밤을 낮같이, 산악을 평지같이’라는 구호에 익숙해 있던 필자 부부는 전방 격오지의 동토에서의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도로가 아닌 아스팔트 도로와 야간에는 네온싸인 불빛으로 대낮 같은 따뜻한 도심의 첫날이 너무도 좋았다. 

 

하지만 군번순으로 아파트를 배정함에 따라 들통난 사관학교 졸업성적에 필자는 가족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배정받은 숙소가 제일 오래됐고 좁은 아파트인데 그것도 제일 높은 층이었다. 반면에 졸업성적이 월등하여 넓고 좋은 아파트의 로얄층에 입주한 사관학교 동기생의 가족과는 너무도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4년전인 1983년 대위급을 대상으로 하는 고등군사반(OAC) 교육을 위해 전라남도 광주의 상무대로 첫 이사를 했을 때, 교육생 부부들을 위해 준비된 ‘백일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그때에도 9평밖에 안되는 연탄 아궁이 아파트였지만 쥐가 왔다갔다했던 산간벽지의 낡은 관사 보다는 너무도 좋았고 아내는 “시집 잘 왔네”하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교되는 사관학교 졸업성적 때문에 비좁고 낡으면서도 제일 높은 층의 육군대학 아파트를 배당받게 되자 아내는 연예 및 신혼시절에 느꼈던 필자에 대한 화려한 기대감이 허상이 되는 것 같은 생각에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쉬운 감정을 숨기며 때마침 태어난 큰아들을 업은 채 불편한 몸으로 묵묵히 짐정리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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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옛 육군대학 부지에 2027년까지 조성될 첨단소재 연구단지인 진해 연구자유지역 계획 [사진=창원시]

 

육대 정규과정에 입교한 기쁨보다 소양시험 성적에 실망, 끝없는 '경쟁사회'에 회의감 들어

 

필자가 1년동안 교육받은 육군대학 정규45기는 약 160명의 학생장교들로 구성됐고 그중에 사관학교 동기생은 88명이었다. 

 

정규과정에 입교한 자들이라도 다시 성적과 투쟁을 해야 했다. 최종 수료시 교육인원 중 1/3수준의 상층 성적을 얻지 못하면 차기 진급 심사에서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실정에 따라 160명중에 적어도 53명 안에 포함되는 성적을 얻어야 향후 진로에 유리해진다.

 

이것을 알고 있는 장인이 현 진급에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주마가편(走馬加鞭)식의 독려도 했었다. 하지만 사관학교 성적이 필자보다 우수한 동기들이 80여명이나 되었다. 또한 우수한 선배 및 동료인 학생장교들이 즐비하고 사관학교 졸업 성적만 고려할 때 상층 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한편 당해년도 봄에 입교한 앞의 기수에는 주로 1년 선배들이 많았고 마침 사관학교의 같은 중대 출신별로 후배들을 위한 후견인이 정해져 있었다. 필자 담당 후견인은 생도시절에 같은 중대에서 함께 생활했던1년 선배인 이문보 소령(육사36기)이었다. 그는 앞서 공부하면서 꼭 필요했던 참고 자료와 공부 요령 등을 전수해 주었다. 

 

마치 4년전에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 선배들이 시험 준비했던 자료(일명 '고추가루')들을 확보하는 전쟁을 치루었던 상황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육군대학 총장에게 입교 신고를 할 때 동기생들 뿐만 아니라 타출신 장교들의 눈빛도 보통이 아니었다. 정규과정에 선발된 우수한 장교들 답게 모두들 필자보다 똑똑하고 탁월해 보였다. 학급 조편성이 끝난 뒤에 그동안 준비했던 소양시험을 치루었다. 시험준비 자료인 고추가루를 전해준 선배들의 조언은 소양시험 성적이 과정 끝까지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주일 즈음 지난 뒤에 소양시험 성적표를 받았는데 실망이었다. 전체 평균보다는 높았지만 1/3선에는 미달되는 것 같았다. 육군대학 정규과정에 입교한 기쁨보다 소양시험 성적에 실망한 필자는 끝없는 '경쟁사회'에 대한 비애와 회의감까지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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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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