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뉴스] 이재명의 기본소득에 대한 임종석의 허수아비 논법, 건설적 정책논쟁 막아
임종석의 비판은 이재명의 주장을 변질시킨 두 가지 ‘허수아비’에 집중돼/글로벌이슈에 대한 사회적 토론 방해하며 ‘우중정치’ 초래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전국민 기본소득제를 겨냥한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비판이 전형적인 ‘허수아비 논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허수아비 논법은 상대방의 주장A를 약점이 많은 주장B(허수아비)로 둔갑시켜놓고 주장B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건전한 정책토론은 불가능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가상의 주장B를 놓고 갑론을박하게 만드는 ‘우중정치’를 초래하게 된다.
임 전 실장의 비판도 마찬가지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제 각론에 대해 가상의 주장 B를 내세워서 이틀간 공격을 퍼부었다. 4차산업혁명과 코로나19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겹쳐 부의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보편적 복지의 핵심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는 글로벌정치의 화두에 해당된다.
설령 실현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한국적 상황에서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시대적 요구이다. 하지만 임 전 실장과 같은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를 미세하게 변질시켜나갈 경우 최선의 대안을 찾기 어려워진다는 상식적인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임 전 실장이 만들어낸 허수아비는 두 가지이다.
①임종석의 허수아비 1은 ‘기본소득 하는 데 317조원 든다’=기본소득 시작 위한 예산은 56조인데 317조로 부풀려놓고 맹공격 / 증세방안은 거론조차 안해 착시현상 극대화
우선 기본소득제 시작을 위한 예산을 부풀려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이 지사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 기본소득의 효과, 지급액, 재원조달방안, 시행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이 지사에 따르면, 한국형 기본소득은 단기적으로 국민 1인당 연간 5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중기계획은 1인당 100만원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이 지사는 “국민 1인당 연간 100만원(분기별 25만원) 기본소득은 결단만 하면 수년 내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인당 50만원(25만원씩 연 2회 지급)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려면, 연간 26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100만원을 주려면 52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56조원의 예산 중 26조원은 일반 예산 절감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6조원은 연간 50조∼60조원 수준인 조세감면을 절반 정도로 감축하자는 게 이 지사 측 청사진이다.
이 지사는 장기적으로는 연간 기본소득 금액을 600만원으로 늘려나가자면서 구체적인 증세방안도 제시했다. 향후 10년 동안 기본소득환경세,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기본소득데이터세,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에 부과하는 기본소득로봇세, 불로소득에 물리는 기본소득토지세 등을 도입하는 증세방안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추진하자는 설명이다.
그러나 임 전 실장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지사는 1인당 연간 100만원을 당장 시작하자고 하는데 약 52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반면에 국민 1인당 돌아가는 금액은 월 8만3300원”이라면서 “이 지사가 중장기 목표로 제시하는 월 50만원을 지급하려면 약 317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월 50만원도 생계비에 터무니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증세가 필요하다”면서 “스위스에서 부결된 이유를 쉽게 짐작하게 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이 지사가 시험적으로 실시하자는 기본소득제가 1인당 연간 1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이고, 소요 예산은 56조원임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려면 317조라는 막대한 추가예산이 필요하다는 논리적 비약을 했다.
이를 통해 이 지사의 기본소득제가 시작되려면 당장 현재 정부예산에 버금가는 300조원 이상의 추가예산이 필요하다는 식의 ‘착시현상’을 빚어냄으로써 건설적인 논쟁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
또 이 지사는 연간 100만원 지급을 위한 예산조달방안 뿐만 아니라 연간 600만원 지급을 위한 증세방안도 구체적으로 거론했으나, 임 전실장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증세’가 필요하다는 추상적인 표현을 통해 ‘증세 불가능성’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냈다.
이 지사가 거론한 증세방안인 기본소득환경세, 기본소득데이터세, 기본소득로봇세 등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하는 게 건설적인 정책논쟁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임 전실장은 이 같은 쟁점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증세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수아비를 만들어내서 이 지사를 공격하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이다.
②임종석의 허수아비 2는 ‘교황은 기본소득 말한 적 없다’=교황은 저서에서 이재명보다 과격한 기본소득 주장했는데 부활절 메시지만 집중 거론
자신의 기본소득론에 대한 여권내 비판이 거세지자 이 지사는 9일 “교황께서도 기본소득을 지지하며 '기술관료 패러다임이 이번 위기나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거대한 문제들에 대응하는 데 있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을 정부들이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자신처럼 기본소득 실시를 찬성하고 있고, 현재의 정부관료시스템이 글로벌 산업구조의 패러다임전환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교황의 인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임 전 실장은 10일 페이스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기본임금'이다”고 즉각 반박했다.가톨릭 신자인 자신의 세례명이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라고 언급하면서 “교황이 지난 해 4월 12일 부활절 메시지에서 언급한 것은 이탈리아어로는 salario universale, 영어 번역으로는 universal basic wage 이고 우리말로 옮기면 '보편적 임금', 또는 '보편적 기본임금'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해 연말 발간한 저서에서 ‘기본임금’이 아니라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는 제보가 나타났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서 ”(임종석 전 실장이) 교황의 작년 부활절 메시지중 'salario universale'를 직역하면서 우리나라의 '생활임금제도'에 가깝다고 했는데 저는 생각이 다르다“면서 ”교황은 '다양한 돌봄 제공자'처럼 일반적인 일자리에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도 기본적인 수입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부활절 메시지에서도 기본소득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용 의원은 나아가 “교황은 이후 'LET US DREAM(꿈을 꾸자)'라는 저서에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를 지지한다고 명확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해 연말에 출간한 'LET US DREAM‘에서 “비소득자의 일의 사회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포스트 코비드 세계에서 중요한 부분이므로 '마이너스 소득세'라고도 불리는 보편적 기본소득(UBI)과 같은 개념을 탐구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UBI는 노동 시장의 관계를 재편하여 사람들에게 빈곤에 빠지는 고용 조건을 거부하는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구상하는 기본소득은 이 지사보다 훨씬 급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사는 최저 생계를 보장해주기 위한 기본소득제를 제시하는 데 비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봉을 제공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일자리를 거부하는 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고 기본소득은 바로 그런 존엄성 보장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임 전 실장은 연말에 출간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저서가 아닌 부활절 메시지만 논의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이 지사가 프란치스코의 주장을 왜곡했다는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그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데 화력을 집중한 것이다.
이런 류의 비판은 기본소득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논의에 대한 한국인의 무지를 조장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최소한 교황과 이 지사의 기본소득 구상을 비교하면서 논쟁을 펼쳐나가는 게 국민에 대한 기본적 예의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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