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38)] 방사청의 K5방독면 국방규격 제정 과정의 ‘4대 의혹’ 규명 주장 제기돼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1.02.09 17:00 ㅣ 수정 : 2021.02.11 06:52

방사청의 탈법적 CJ 계열사 몰아주기 의혹 규명해야/문재인 정부의 ‘정의’와 ‘공정’ 내팽개친 책임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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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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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라이프케어가 생산하는 K5 방독면 안면부(왼쪽)와 구성품(오른쪽). 구성품은 휴대주머니, 방수주머니, 보호두건, 수통마개, 흐림방지키트 등이다. [한컴라이프케어 홈페이지 캡처]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달 28일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재판장 김시철)는 방위사업청장이 한컴라이프케어(구 산청)에 부과한 6개월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로써 지난 3년 6개월 간 검찰수사 및 행정소송을 통해 산청이 K5방독면 연구개발에 보유특허를 적용하고 이 사실을 숨겼다는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이 밀접히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4대 의혹’이 불거져 철저한 검찰 수사와 이에 따른 사법부의 단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의혹은 서식에 특허 기재란이 없어 누락한 것을 숨길 의도가 있었다며 범죄자로 몰아간 부분이고, 둘째 의혹은 산청이 숨길 의도가 없음을 입증할 각종 자료를 제출했음에도 방사청이 이를 재판부에 은폐한 부분이다. 셋째 의혹은 산청 보유특허의 무상실시권을 허여하게 압박한 방사청이 이를 제공받자 곧바로 SG생활안전을 방산업체로 추가 지정한 부분이다. 넷째 의혹은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도 신인도 평가항목에 감점을 부과할 수 있는 ‘불공정행위 이력’ 평가를 신설해 SG생활안전이 지명경쟁 입찰에서 매우 유리하게 만든 부분이다. 

 

방사청 서식에 특허기재란 없어…적반하장식 ‘범죄자’ 몰이

 

방사청은 산청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보유특허를 K5방독면 연구개발에 적용한 후 국방규격(안)을 제출하면서 해당 사실을 숨기는 위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2017년 10월경 산청 대표이사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 요청하는 한편, 2017년 11월 계약심의회를 열어 산청에 대해 6개월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부과했다. 

 

동시에 국방규격 업무 담당자인 K사무관에게도 산청 보유특허가 적용된 사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국방규격을 제정했다는 이유로 2018년 1월 정직 1개월의 징계처분이 부과됐다. 이에 대해 K사무관은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고, 산청도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 취소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하지만 K사무관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방사청은 K사무관에 대한 징계처분이 적법·유효함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자료를 산청으로부터 제공받았음에도 이를 재판에 제출하지 않는 등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2019년 6월 27일 1심 법원은 K사무관이 산청 보유특허가 적용된 사실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산청이 제기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 취소소송 1심 재판부는 2019년 12월 5일 K사무관 징계처분 취소 판결에 근거하여 산청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은 적법하다는 취지의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때까지 방사청이 산청 대표이사 등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한 건은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에서 수사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K5방독면에 산청의 보유특허가 적용될 것이란 취지의 내용이 업체 제안서 등에 기재돼 있던 사실과 방사청 업무담당자들이 산청의 특허가 적용된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던 구체적 사실을 확인하고 2020년 1월 5일 산청 관계자들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서울고법 재판부가 방사청의 사실 왜곡 및 증거 은폐 확인 

 

이에 행정소송 2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업무담당자에 대한 징계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방사청을 끝까지 추궁하여 관련 자료를 제공받았고, 이 자료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이 이미 밝혀낸 사실을 모두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이 지난 수년간 얼마나 심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증거자료를 은폐해 왔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드러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산청은 국방규격안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과정에서 서식에 특허 기재란이 존재하지 않아 기존 보유특허의 기재를 누락했다. 하지만 연구개발 과정에서 일관되게 기존 보유특허를 적용하여 K5방독면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밝혔고, 방사청도 K5방독면의 핵심기술 등에 산청 특허가 적용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 상태에서 국방규격을 제정했다.

  

그런데, K5방독면 연구개발 성공 직후 초도양산을 통한 납품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방사청은 갑자기 대기업 계열사인 SG생활안전을 K5방독면을 생산할 수 있는 방산업체로 추가 지정하는 절차를 강행했다. 지상무기체계 연구개발 성공 직후에 곧바로 제3의 업체를 방산업체로 추가 지정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산청은 강력히 반대했고, 이 때문에 SG생활안전에 대한 방산업체 추가 지정이 어려워진 방사청은 산청이 K5방독면 공급자 지위를 독점하고자 보유특허를 개발에 몰래 적용하고는 국방규격안 작성 시 의도적으로 누락하여 숨기는 바람에 산청 특허가 적용된 K5방독면 규격이 제정됐다고 사실관계를 왜곡해 수사 요청하고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까지 부과했다. 

 

특허 무상실시권 허여 강요는 국가권력에 의한 ‘특허강탈’에 해당

 

나아가 방사청은 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2019년 1월경 한컴라이프케어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을 통해 이 회사가 보유한 특허의 무상실시권을 제공받았다. 무상실시권이 제공되자마자 방사청은 곧바로 SG생활안전을 방산업체로 추가 지정했다. 

 

또한 방사청은 2019년 11월 28일 물품적격심사기준 개정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어도 신인도 평가항목에 감점을 부과하는 ‘불공정행위 이력’ 평가를 신설했다. 이로 인해 한컴라이프케어와 경쟁 관계인 SG생활안전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놓여 지난해 신형방독면 양산을 위한 지명경쟁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됐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모두 확인한 서울고등법원 담당재판부는 판결문에 “원고(한컴라이프케어)가 이 사건 사업을 통하여 방위력 개선에 기여한 정도가 상당한 반면, 이 사건 처분 및 그에 따른 후속 조치 등으로 인하여 K5방독면의 생산·납품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CJ 계열사인 SG생활안전 몰아주기 의혹 반드시 규명돼야

 

법원조차 방사청의 행정 처리와 관련하여 판결문에 심각한 우려 의사까지 표명한 것이다. 대다수 방산업체 임원 및 방산 전문가들은 “K5방독면 초도양산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방산업체 추가 지정은 무기체계 연구개발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추가 지정 경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사청 출신의 한 방산 전문 변호사는 “업체에 대한 강박을 통해 업체 보유특허를 강탈하는 것은 정부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는 지급돼야 한다”는 견해와 함께 “집행정지 결정이 있음에도 감점을 부과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영업의 자유를 법률의 근거 없이 제한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서울고등법원의 취소판결 선고 이후 주목할 사항은 방위사업청의 상고 여부다. 이번 판결로 방사청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더 이상 사실관계를 다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고를 제기한다면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 게다가 올해 6월 경 K5방독면의 대규모 발주가 예정돼 있어 SG생활안전의 수주에 결정적 도움을 주기 위한 행위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방사청이 상고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은 2월 18일까지다. 하지만 방사청은 의미 없는 상고 제기보다는 지금이라도 현재 제기된 ‘4대 의혹’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울러 재발방지 차원에서 무기체계 연구개발 성공 시 방산업체 추가 지정 시점에 대한 요건과 기준을 제도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방사청 스스로 그러한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검찰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와 ‘공정’이 살아 숨 쉬게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집권 말기에 빛을 발한다. 만일 검찰 수사로도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는 없으며, 몇몇 공무원들의 자의적인 이해 추구에 의해 방위산업은 멍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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