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37)] 방위산업 ‘육성’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요인 적극 해결 필요
비리 처벌 법제화하는 방위사업법 개정안 보완하고 방산업체 지정 취소도 남용되지 않아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해 초 제정된 방위산업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방위산업발전법)이 이번 달에 정식으로 발효된다. 무기체계 획득과 군수품 조달 관점에서 마련된 기존의 방위사업법 대신 이제 방위산업의 발전기반을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별도의 전담법령 체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방위산업발전법 시행과 방위산업 지원 예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정작 방산업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여전히 방산업계는 관련 사업마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과 각종 소송 및 지체상금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수출 부진과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경영 여건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 소송으로 계속 쟁점 해결하고 비리산업이란 인식 깊이 자리 잡아
이와 관련,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2015년부터 지체상금, 부당이득금, 부정당업자 제재, 손해배상 등 방사청과 관련된 각종 민사·행정소송에서 총 307건의 확정 판결이 이루어졌고, 2020년 8월 말 기준으로 114건의 소송이 방사청과 방산업체 간에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방산업체뿐만 아니라 일반업체나 협력업체, 연구기관 소속 임직원까지 청렴서약서를 제출하고 방위사업 비리행위를 법제화해 엄히 처벌하는 방위사업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업체 대표·임원은 물론 직원 비리행위 시에도 5년간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하고 국방부와 방사청 퇴직공직자의 취업 이력을 15년간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방위사업법 개정안과 관련해 법무법인 율촌의 정원 변호사는 “비리행위를 먼저 명기하는 법률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다 현행 처벌과 제재도 이미 과다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행위 책임에 비례하는 최소한의 내용으로 통제돼야 한다”면서 “업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계속 개정되는 ‘계약특수조건’이 가장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정부가 업체를 상대로 방위사업 계약 이행과정에서 발생된 쟁점사항을 소송으로 해결하는 조치가 계속되고 있는데다, 방위산업을 잠재적인 비리산업으로 인식하여 방위산업 종사자에 대해 법적인 통제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대재해 처벌법까지 최근 국회를 통과해 업체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 10년간 지체상금 1조 1,458억 부과, 부정당업자 제재 조치 876건
방사청은 방위력개선사업의 수행, 군수품 조달과 함께 방위산업 육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고자 2006년 창설됐다. 이 중 방사청이 가장 주안을 두어야 하는 업무는 사업을 통해 소요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를 원하는 시기에 전력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수행하면서 계약에 의한 관리에 과도히 매몰돼 오히려 사업이 방위산업 육성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방사청은 국가계약법에 따른 ‘갑(정부)’과 ‘을(업체)’ 이라는 계약관계를 우선시하면서 사업 추진 간 쟁점이 발생하면 업체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 각종 페널티를 부과해 왔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 간 박성준 의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조 1,458억원의 지체상금이 부과됐고 876건의 부정당업자 제재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방사청은 한편에선 방위산업발전법을 제정하고 방위산업 지원을 확대하는 노력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쟁점이 발생하면 업체에게 불리한 ‘계약특수조건’을 내세운 계약을 근거로 페널티를 부과해 방위산업 육성을 저해한다. 이 경우 방사청이 업체를 사업의 동반자로 인식해 합리적인 해결에 나서면 유착을 의심받거나 감사를 받기 십상이다.
■ 사업 진행 간 발생한 쟁점으로 인한 소송 및 행정처분 최소화해야
이에 대해,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방위산업발전법에 마련된 국가정책사업 지정제도를 신규 무기체계 연구개발 사업에 확대 적용하고 면책 혜택도 추가하는 방향으로 개정해 사업 진행 간 의도치 않게 발생한 쟁점으로 인한 소송·분쟁 또는 과도한 지체상금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최소화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안정적인 무기체계 조달을 위해 운영하는 방산업체 지정 제도 또한 원래 취지와 무관한 여타 사유(융자금·보조금의 용도외 사용, 취업제한자 고용, 국유재산 등의 용도 외 사용 등)로도 업체 지정을 취소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업체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로 인식하여 업체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인식 때문에 이 제도를 활용한 방위산업 육성은 점점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정 변호사는 “방산업체 지정 취소는 생산 차질과 직결돼 있어 남용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 센터장도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는 그동안 내수조달 관점에서 운영돼 왔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육성·기술축적 관점에서 대대적인 재편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가 방위산업발전법 제정 목적처럼 방위산업 발전기반을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시키려면 사업 추진 간 방위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부적절한 법적·제도적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해 해결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은호 방사청장이 취임 일성으로 방산업체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시급히 조치할 사항을 확인하라고 주문했으니 후속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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