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영면’하고 이재용 ‘새 역사’ 쓴다
오세은 기자
입력 : 2020.10.28 16:08
ㅣ 수정 : 2020.10.28 16:22
이병철 창업주를 뛰어넘은 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도 '승어부(勝於父)' 한다
[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삼성을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삼성회장이 영면에 들어갔다. 4차산업혁명 속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법리스크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도전에 대한 적극적인 응전을 통해 새로운 경제역사를 써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28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진행된 영결식에 이어 용산구 한남동 자택과 집무실, 화성사업장 등에 들른 뒤 수원 선산에 안장됐다.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지하 강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유족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고인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사장, 고인의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평소 이재용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 등 한화그룹 3세 삼형제도 나란히 영결식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삼성 서초사옥에는 고인을 기리는 조기가 걸렸다.
영결식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영결식은 이수빈 삼성 상근고문(전 삼성생명 회장)의 약력보고와 고인의 50년 지기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KPK 회장의 추억, 추모영상 상영, 참석자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수빈 고문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고인의 삶을 회고했다.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을 읽다가는 목이 메인 듯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
50년 지기 김필규 전 KPK 회장, "승어부한 이건희 회장, 그것이 효도의 첫 걸음"
김필규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 회장의 비범함과 호기심, 도쿄 유학시절 모습 등을 전했다.김 전 회장은 특히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인 '승어부(勝於父)'를 꺼내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를 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이야 말로 효도의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부친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건희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듯이 이건희 회장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취재진에 모습을 드러낸 이재용 부회장은 굳은 표정이었다. 이부진 사장은 중간중간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결식 참석을 위해 차에서 내릴 때는 휘청이는 이부진 사장의 한쪽 팔을 홍라희 여사가 잠시 부축하기도 했다.
발인에는 이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삼성전자 권오현 상임고문, 삼성전자 김기남 부회장, 정현호 사업지원TF 사장, 이인용 CR담당 사장, 최재경 고문 등이 함께 했다.
오전 8시50분께 장례식장을 나선 운구 행렬은 생전 이 회장의 발자취가 담긴 공간을 돌며 이별을 고했다.우선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살았던 한남동 자택, 이태원동 승지원(承志園) 등을 정차하지 않고 차례로 돌았다. 승지원은 선대 이병철 회장의 집을 개조해 삼성그룹의 영빈관으로 쓰던 곳으로, 생전 이건희 회장이 집무실로 많이 이용했다.
2014년 5월 한남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후 6년5개월 만의 '귀가'였다.
이후 운구 행렬은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일군 기흥·화성 반도체 사업장(통칭 화성사업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운구차는 15분가량 천천히 사업장 내부 도로를 돌며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수백명의 임직원들의 작별 인사를 받았다.
화성 사업장 H1 정문에는 "회장님의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한 차량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이 회장이 생전 화성 사업장을 찾았을 때 모습이 담긴 영상이 흘러나왔다. 운구 차량이 이동하는 동안 일부 직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화성사업장을 뒤로 한 이건희 회장은 마지막 종착지인 수원 가족 선산에서 78년의 생을 마감하고 영면했다. 장지는 부인 홍라희 여사의 뜻에 따라 고인의 부친인 이병철 선대회장과 모친 박두을 여사가 묻힌 용인 선영이 아닌 수원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선산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부모와 조부가 잠든 곳이다.
■ 다음 달 9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 시작, 내년엔 경영권 불법승계 재판 기다려
28일 장례절차를 마친 이재용 부회장은 당분간 두 건의 재판 대응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이라는 새로운 재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포스트 이건희’시대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최악의 사법 리스크를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음달 9일로 예정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의 공판기일에는 이 부회장이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특히 서울고법 형사1부는 파기환송심의 재판을 연내에 종료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이 재판에 전력투구해 ‘집행유예’판결을 이끌어내야 한다.
파기환송심이 마무리되면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한 재판도 본격화한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사법리스크에 대응하면서 선친의 업적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약의 역사를 쓰기 위해 글로벌 경영활동을 병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