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성’ 높아진 대학가 토론수업에서 입증된 ‘보톡스 부작용’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간관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은 자제돼야하고,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상당수 기업의 직장인들은 출근 아닌 재택근무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친구를 사귀지 못한 초등학교 1학년생, 캠퍼스의 낭만을 경험하지 못한 대학 신입생, 선배와 교류가 적은 직장 초년생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 대중화 시대의 일시적 소멸, 마스크를 안 쓴 사람과 군중집회에 대한 적대감 같은 사회현상도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언택트 산업‘이 흥하는 속도에 맞추어 사람과의 직접적 소통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인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투데이는 이를 ’언택트 인간‘이라고 칭하고 그 현상과 문제점을 심층보도합니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박혜원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는 ‘표정’이 사라진 시대를 낳고 있다.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마스크는 타인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도록 한다. 마스크를 쓴 인간을 만나기만 해도 다행이다.
올해 3월 새로운 공동체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느라 바빴을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신입생들은 친구, 선배, 선생을 만난 횟수를 손에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 수업이 화상수업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새내기들에게 이 같은 변화는 '치명적'이다.
표정은 핵심적인 비언어적 소통의 수단이다. 5~10년 내 사회에 진출할 이른바 ‘코로나 세대’는 타인의 표정을 읽어내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셈이다. 교육 현장에서 이들의 특성은 이미 소통능력의 저하로 나타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 ‘공격성’ 두드러진 대학가 비대면 토론 / 상대방 눈치 살피지 않고 일방적 주장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10개월째이지만 대부분 학교는 여전히 비대면 수업을 유지하거나 대면 수업을 간헐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현재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전교생의 3분의 2로 등교 인원 제한을 두고 있으며, 대학교는 비대면 수업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대학교는 학생들 간 토론이 포함된 세미나 수업 비중이 높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해 올해로 2학년인 A씨(21)는 “토론을 할 때,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토론하다 보니 상대방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굳이 더 공격적으로 말하거나, 그냥 말을 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오해가 발생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마주 앉아서 토론했던 지난 해에만 해도 나의 반응을 살피면서 논리를 펴던 상대방이 안하무인격으로 자기 주장을 편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면서 "솔직히 나 자신도 화상에 뜬 동료의 감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방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한다"고 설명했다.
토론 수업의 목적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과의 직·간접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배우는 것에도 있다. 즉 자신의 발언에 따라 표정이나 몸짓 등으로 나타나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면서 합의를 도출해나가는 훈련이다. 그러나 온라인 토론에서는 이 과정이 전혀 이뤄지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 심미경 인제대 교수, “또래관계 결핍이 소통능력에 영향…가족과 많은 시간 보내야”
심미경 인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21일 뉴스투데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코로나19 시대의 ‘또래관계’의 결핍이 유아동의 소통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가족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또래 간 수평적 관계에서는 기다림이나 순서 지키기, 때로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며 “사실 가정에서는 아이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부모가 알아서 해주는 경우가 많아, 코로나19 시대에는 자기표현 경험이 결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오프라인에서 또래 친구를 사귈 기회가 현저하게 감소함으로써 유아동의 자기표현 능력 감소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심 교수는 “유아동의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족 내에서의 소통과 활동을 많이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교류를 통한 소통경험이 줄어듦에 따라 가정 내 소통이라도 확대해야 보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보톡스의 부작용, ‘표정 따라하기’ 못하면 공감능력 저하 / 마스크 쓴 인간과의 화상대화
소통에 있어 표정의 중요성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보톡스 주사를 맞으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이탈리아 SISSA(고등연구국제대학)이 국제 학술지 ‘톡시콘(Toxicon)’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보톡스 시술을 받은 피실험자는 받기 전과 비교해 판단력이 흐려지고 반응 시간이 늦어지는 등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은 소통 과정에서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또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면서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연구진은 보톡스 시술 후에는 안면 근육 마비 등의 부작용으로 미세한 표정을 짓기 어려워 공감능력도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원격시대의 '언택트 인간'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으로 소통을 할 때는 상대방의 표정을 파악하는 과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화상 수업이라고 해도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이상 상대방에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필요성을 느끼긴 어렵다.
더욱이 화상속의 인간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이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한다면 음성이나 태도를 통해서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화상 속에서는 그러한 간접적 소통마저도 불가능해진다.
낯선 상대와의 소통은 사회인을 양성하는 학교의 중요한 존재 이유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종식이 되더라도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한다면 10~20대 대다수는 이를 전혀 배우지 못한 채 사회로 진출할 우려가 있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보톡스 부작용’이 전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