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이번 달 1일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한 신규 회원 일부에 대한 임명을 거부하면서 일본 교육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정부에 대한 정책제언을 맡고 있는 일본학술회의는 ‘학자의 국회’라고 불릴 정도로 그 권위와 독립성을 인정받아 왔으나 사상 처음으로 임명거부라는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야당과 교수들의 잇따른 비난과 해명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일본 헌법 23조는 ‘학문의 자유는 그것을 보장받는다’고 명시함으로써 개인이나 국가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대학 등의 공공학술기관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한 105명의 후보 중 6명에 대한 임명을 거부한 것은 결국 스가 정권이 일본 정부방침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애초에 인사로 배제시켜 의견개진조차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직전 총리였던 아베 신조의 인사방식과 일치한다.
실제로 임명이 거부된 6명의 중 한 명인 도쿄대학의 카토 요코(加藤 陽子) 교수는 일본근대사를 연구하며 아베 정권이 추진하던 공모죄 법안을 공공연하게 반대해 온 이력이 이번 인사문제의 빌미가 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공모죄 법안은 실제 테러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이를 상의하거나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성립된다고 해석하며 국가는 사전에 테러를 방지한다는 빌미로 국민들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아왔다.
때문에 법안이 최초 발의되었던 2005년과 재발의 된 2009년에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아베 정권은 2017년 국회에서 절대여당을 등에 업고 공모죄 법안을 막무가내로 통과시켰다.
이번 임명거부에 대해 카토 교수는 ‘학술회의 내에서 추천은 일찍이 준비되어 내각부가 8월 말에 총리관저에 추천명부를 올렸을 것이다.
그것을 새로운 학술회의가 구성되기 직전에 기습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관점뿐만 아니라 학술회의가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을 총리 관저가 얼마나 업신여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며 노골적인 비판과 불쾌함을 쏟아냈다.
야당 역시 가만있진 않았다. 2일에 있은 국회에서 내각부를 소환해 누가 무슨 권한으로 6명의 이름을 삭제한 것인지 추궁하였으나 내각부는 ‘인사에 관한 것은 대답할 수 없다’며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내각부는 결재문서에 대해서도 ‘105명의 리스트를 첨부하여 99명을 임명한 문서가 남아있다’고 밝히면서도 야당 측의 공개요구에는 ‘결재가 끝났다고 해서 바로 내놓을 수는 없다’며 대응하지 않았다.
스가정권의 관료들 역시 같은 날 열린 개별 기자회견에서 ‘소관 외에 관한 질문에는 대답드릴 것이 없다’며 사전에 기자들의 공격을 차단해버렸다.
이로써 스가 정권은 정부방침에 따르지 않는 인재를 처음부터 좌천시켜버리는 아베 정권의 국정 운영방식을 계승한 것은 물론 빗발치는 비난과 질문들에도 답변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대응방식까지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아베 신조의 아바타설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렸다.
과연 일본에서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자민당을 교육계가 비판과 항의만으로 거스를 수 있을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