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이서연 기자] 현대차 노사가 ‘무분규’로 임금동결에 대한 잠정합의를 끌어냈다. 현대차 노조는 13차 임금교섭에서 IMF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에 이어 세 번째 임금‘동결’에 합의했다고 21일 밝혔다. 코로나 19로 인한 전세계적 경제 침체 속 자동차 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실적 및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감안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합의안은 지난 4월부터 내년 3월까지 적용된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시장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대규모 감염병으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위기상황을 인식,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에 “다수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챙길 것은 다 챙겼다”는 비판적 시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것은 이번 현대차 노사 합의는 시장경제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 불황에도 상여금 ‘현상유지’는 ‘도덕적 해이’?
우선 ‘도덕적 해이’ 논란이다. 시장경제에서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 당연히 임직원들은 그 부담을 나눠갖는 게 순리이다. 호실적 때 특별 상여금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나 현대차 경우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급냉으로 인해 올 상반기 실적이 깊은 수렁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600% 정기 상여금 및 설날과 추석의 특별 상여금 지급 체제를 유지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상반기 35만8567대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는 21만7510대에 그쳤다. -39.3%의 역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번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임금동결, 성과금 150%, 코로나 위기극복 격려금 120만원, 현대차 사주 10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등이다. 예전처럼 추석 상여금 150%를 지급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기본급 인상만 포기한 것이다. “현대차 노조가 중소 협력사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권리만 지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권오국 현대차 노조실장은 “성과금은 짝수 달마다 한 번씩 지급됐으며 설, 추석 같은 명절에는 150%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내년 임금동결 가능성에 대해서는 “IMF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 그리고 올해 같은 경우는 매우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에 내년에도 임금동결을 유지할 가능성은 낮다”며 “이번 임금동결은 내년 3월 31일까지다”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기본급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 직원의 평균 월급은 최근 수년 동안 꾸준히 올랐다.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근거로 평균 월급을 추정하는 자료를 제공하는 크레딧잡에 따르면, 현대차 평균 월급은 연평균 12만원 정도 인상되어왔다.
이상수 현대차 노조 지부장은 “현대차 노조가 나서서 노동자 전체 임금의 인상과 삶의 질 개선이 가능했는데, 귀족 노동자로 올가미 씌우는 것은 억울하다”며 “현대차 노조는 국민의 안티가 아니다”고 호소했다.
■ 임원만 20% 삭감은 ‘역차별’?
두 번째 문제점은 임원에 대한 역차별이다. 현대차 임원진은 코로나19위기가 몰아닥친 지난 4월 연봉의 20%를 반납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임원 연봉 20% 삭감은 유지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임원의 연봉 20% 삭감은 지난 4월 연봉 기준으로 단행된 것”이라면서 “올해 연말기준으로 20%삭감된 연봉은 유지되며, 내년의 경우 원상회복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 해소가 가시화되지 않으면 임원의 연봉 20% 반납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내년 기본급 인상을 기본적 카드로 준비해둔 분위기이다.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지도층의 도덕적 책무)’의 관점에서 직급이 높은 임원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의 자기희생 없는 ‘현상유지’ 정책 속에서 임원의 희생만 지속되는 것은 일종의 ‘역차별’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성과금은 적자가 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영업실적이 감소하더라도 지급한다”며 “성과금은 노사 협상에 따르며 근속 연차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