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신용융자 금리 인하’ 주문에 ‘빛투’ 더 가속화되나
은행 신용대출 금리보다 2~4배 높아…증권사 “은행과 금리 단순비교는 말이 안돼”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가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신용거래융자 금리 인하를 주문하면서 증권사들이 좌불안석이다. 신용거래융자란 증권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투자업계는 신용거래융자 금리가 높은 이유를 조달비용 및 리스크 관리 등이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장금리 자체가 높지 않고 리스크가 크지 않기에 이자율이 과도하게 높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신용거래융자 금리를 과도하게 낮출 경우 빚투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채무변제 순서를 변경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 금융당국, 신용융자 금리 인하 개입 예고 / 기준금리 2번 인하…신용융자 금리 내린 증권사는 ‘28곳 중 5곳 뿐’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신용거래융자(신용융자) 잔고는 16조2728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지난해 말(9조2133억원)보다 7조원 가량 급증한 수치다. 3개월 전과 비교했을 때도 절반 가까이(5조3413억원) 늘어났다.
이에 금융당국이 신용거래융자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섰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5개 증권사(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키움증권·대신증권) 사장단이 참여한 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75bp(1bp=0.01%포인트(p)) 인하하는 동안 신용융자 금리를 전혀 변동시키지 않은 증권사들이 있다고 한다”며, “이를 두고 개인투자자들이 불투명성과 비합리성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 간담회 이후 금융위원회 측은 “9월 중 금융 당국과 업계가 테스크포스(TF·Task Force)를 구성해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히면서, 신용융자 금리 인하에 대한 당국 개입을 예고했다.
앞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차례 인하했음에도 신용융자 금리를 인하한 증권사는 28곳 중 5곳에 불과했다.
대형사 중에는 신한금융투자가 지난 4월 선제적으로 기존 4.4%에서 3.9%로 인하했다. 이외 중소형사 4곳 중에서는 하이투자증권(기간 1∼10일 기준 연 5.8%→5.5%), 유진투자증권(기간 1∼15일 기준 연 9.0%→7.5%)이 이자율을 낮췄다. SK증권과 BNK투자증권 역시 기간 1∼7일 기준 이자율을 연 4∼5%대로 인하했다.
하지만 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자 증권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오는 28일부터 영업점 외 계좌(은행연계·방문계좌 등)신용융자 금리를 기존 9.0%에서 8.5%로 낮출 예정이다. 대신증권은 다음달 10일부터 영업점 외 계좌(다이렉트 계좌)에 대해 신용융자 금리를 기존 10.5%에서 8.5%으로 인하할 방침이다.
■ 28개 증권사 신용융자 금리 1~7일물 3.9~7.5%, 2~3개월물 5.2~9.4% / 증권사 “조달비용 및 리스크 반영한 것” vs “감안해도 과도해”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28개 증권사의 1~7일 신용융자 이자율은 적게는 3.9%에서 많게는 7.5%에 달한다. 2~3개월 이자율은 5.2~9.4% 수준이다.
이중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신한금융투자·메리츠증권 등 지난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을 기록한 7개 대형사의 1~7일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은 3.9~6.9%다. 2~3개월 이자율은 6.9~8.9%를 기록했다.
이처럼 신용융자 이자율이 높은 이유는 증권사의 조달금리가 높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대출자금을 조달할 때 드는 금융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기본 조달금리에 △유동성 프리미엄 △신용 프리미엄 △자본비용 △업무원가 등 제반비용 △목표이익률 등을 감안한 가산금리가 붙는다.
조달금리를 공시하고 있는 27개 증권사의 경우 현재 1~7일 기준 3.9~7.5%, 2~3개월 기준 4.8~9.5% 수준이다. 가산 금리는 각각 최대 5.5%, 7.6%까지 더해진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증권사가 지나친 마진을 챙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시장금리 자체가 낮을대로 낮아졌는데 은행 신용대출 금리보다 2~4배 이상 높은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증권사는 은행과의 단순 금리 비교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증권사는 여·수신이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조달비용이 더 든다”며, 관련 리스크를 비용으로 환산한 금액 등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가산금리가 더 붙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산정 과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대외비”라며 말을 아꼈다.
반면 업계 관계자 B씨는 “시장금리가 낮아 조달비용 자체가 높지 않다”며, “급락장이 아니면 담보물인 주식을 강제 매도하는 반대매매가 일어날 확률도 높지 않기 때문에 신용융자 금리 수준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증권사는 가산금리가 어떻게 책정되는지 공개할 의무가 없다. ‘금융투자회사의 대출금리 산정 모범규준’은 증권사가 합리적으로 신용융자 이자율을 산정하라고만 나와 있다.
■ 미래에셋대우·SK증권·KTB투자·현대차증권 등 신용융자 금리 2.20~3.99%로↓ / 빚투 더 늘어날지도…채무변제 순서 변경 등 대안 모색 필요
업계는 당국 방침에 따라 신용융자 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오히려 빚투를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A씨는 “이미 몇몇 대형사들은 신용공여 한도가 목 끝까지 찼다”며, “이런 상황에서 다른 증권사들이 신용융자 금리인하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고객들이 몰리면서 빚투가 더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K증권은 이달 1일부터 31일까지 신용융자 이자를 0%로 책정해 이 기간 동안 신용약정을 신규 등록하면 등록 시점부터 30일간 발생하는 신용융자 비용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KTB투자증권은 지난 10일부터 비대면계좌를 신규 개설한 고객을 대상으로 3년간 연 3.99%의 이자로 신용융자와 예탁증권 담보대출을 해준다.
현대차증권도 이달 30일까지 연 3.5%로 신용융자와 예탁증권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행사를 하고 있다.
대형사 중에서는 아직 신용공여 한도 여력이 있는 미래에셋대우가 신용융자와 예탁증권 담보대출을 연 2.2%의 저금리로 받을 수 있는 행사를 10월 말까지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의 실질적인 빚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선 단순 금리 인하보다 채무변제 순서를 바꾸는 등의 대안이 더 낫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B씨는 “현재 신용융자 채무변제는 연체이자, 이자, 채무원금 순으로 이뤄지는데, 상대적으로 금액이 낮은 연체이자와 이자 먼저 변제하고 원금을 갚도록 한다면 부담이 덜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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