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조완제 편집국장] 전 세계의 스마트폰시장을 놓고 애플과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금융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기업 가치를 대변하는 시가총액이 애플은 차치하더라도 대만 파운드리(foundry) 기업인 TSMC(Taiwan Semicon Manufacturing Company)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지구(地球)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의 시가총액은 2조1300억달러(약 2500조원)이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약 370조원으로 애플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한 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애플과 경쟁하던 기업치고는 초라한 수준이다. 이는 삼성전자 주가가 2년 전부터 정체된 이유도 있지만 애플 주가가 계속 오르면서 시총이 치솟은 탓도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시총을 모두 합한 1914조원보다 더 높은 것을 볼 때 애플이 ‘넘사벽’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총이 11조대만달러(약 450조원)인 TSMC는 얘기가 다르다. 애플이나 테슬라처럼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주목 받는 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이나 중국의 기업도 아니다. TSMC는 우리나라·홍콩·싱가포르 등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龍)으로 불리던 대만의 반도체기업이다. 그것도 설계는 하지 않고 위탁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업체이기에 설계까지 하는 삼성전자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지난해 점유율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스마트폰·TV 부문에서 세계 1위이고, 파운드리시장에서는 세계 2위이다. 이에 비해 파운드리업체인 TSMC는 점유율 50%로 이 시장에서만 1위를 점하고 있다. TSMC는 기업가치 면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삼성전자보다도 불리한 여건인데도 이를 극복하고, 삼성전자를 아래에 놓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삼성전자는 2018년까지 20%대를 유지했지만 지난해부터는 10%대로 내려왔다. 이에 비해 최근 2년간 30%를 기록하던 TSMC는 지난 1분기 41.5%, 2분기 42.2% 등 올들어 40%대까지 솟구쳤다.
이같은 TSMC의 성장세는 파운드리 수요가 폭발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이 부상하면서 여기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 것. 그러면서 애플, 테슬라, 인텔 등 세계적인 기술기업들이 파운드리에서 한우물을 파던 TSMC의 주 고객이 됐다.
특히 TSMC는 설계만 하고 생산은 하지 않는 팹리스(fabless) 기업 물량을 수주하는 것이어서 이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돼, 생산기술만 신경 쓰면 됐다. 설계기술이나 마케팅은 아예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이런 TSMC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삼성전자는 비상(飛上)하는 TSMC를 보고, 지난해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놓으며 파운드리 시장 장악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었다면,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를 괴롭히고 있는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최고경영자(CEO)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적절한 시기에 신성장산업 육성 전략을 펼쳤다면, 지금의 굴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법원을 들락날락하는 CEO에게서 애플이나 TSMC 수준의 실적이나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는 목소리가 시장에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