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23)] K5 방독면 초도 양산 관련 ‘방산업체 추가 지정’ 과정 논란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0.08.27 14:19 ㅣ 수정 : 2020.08.27 16:06

추가 지정 경위 정확히 조사하고, 개발업체 지위 보장되도록 지정 시점 기준 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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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한컴라이프케어가 생산하는 K5 방독면 안면부(왼쪽)와 구성품(오른쪽). 구성품은 휴대주머니, 방수주머니, 보호두건, 수통마개, 흐림방지키트 등이다. [한컴라이프케어 홈페이지 캡처]
 

방산업체 추가 지정, 통상 수차례 양산 계약 진행 이후 검토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2017년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는 신형 K5 방독면 개발업체인 ‘산청’을 인수하고 지난해 상호를 ‘한컴라이프케어’로 변경했다. 그런데 최근 한컴은 산청의 전 소유자를 상대로 54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거래사기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했다.

 

이와 같은 분쟁이 생긴 결정적 계기는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지난해 2월 대기업(CJ) 계열사인 ‘SG생활안전’에게 산청이 개발한 K5 방독면을 생산할 수 있도록 추가로 방산업체 지위를 부여함에 기인한다. 즉 방산업체 추가 지정이 그동안 K5 방독면의 독자적 공급 지위를 보장받던 산청과 관련된 분쟁을 야기한 것이다.

 

방사청장은 안정적인 조달원 확보 및 엄격한 품질 보증이 필요한 물자를 방산물자로 지정하며, 방산물자 생산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장관이 지정한 방산업체만 가능하다. 일례로 A업체가 개발에 성공해 국방규격이 제정되면 A업체의 요청에 따라 방사청장은 개발품을 방산물자로 지정하고, 산업부 장관은 개발품 생산업체로 A업체를 지정하게 된다. 

 

위와 같이 방산물자 및 방산업체가 지정되는 경우 해당 무기체계의 실전 배치를 위한 양산 사업은 A업체와 수의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개발에 성공한 업체는 방산물자 및 방산업체 지정 제도에 따라 해당 무기체계의 전담 공급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업체들이 개발 실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개발비용을 추가로 부담하며 개발에 참여하는 유일한 이유다.

 

한편, 방사청과 산업부는 방산업체 추가 지정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방산물자별로 지정된 방산업체는 1개이나, 군사전략 및 후속 군수지원 등의 필요에 따라 업체를 추가로 지정할 수 있다. 다만, 추가 지정은 개발에 성공한 업체의 지위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국방규격 제정 이후 수차례의 양산 계약이 진행된 다음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사청, K5 방독면 초도 양산 완료 전에 방산업체 추가 지정 강행

 

하지만 지난해 방사청 주도로 이루어진 K5 방독면에 대한 방산업체 추가 지정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방사청은 산청에 대한 방산업체 지정(2015년 7월)도 이뤄지기 전인 2015년 5월부터 SG생활안전에게 K5 방독면 국방규격을 공개했고, K5 방독면 초도 양산이 끝나기도 전인 2016년에 방산업체 추가 지정 절차를 강행했다. 양산 사업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란 이유였다.

 

그러나, 개발업체의 초도 양산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물량 확보에 문제가 없음에도 업체를 추가 지정한 선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양산에 적합한 생산시설을 구비하는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데다 개발품의 양산 과정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다양한 문제의 보완 등을 감안한다면 이 시기에 업체를 추가로 지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발 위험을 감수하고 막대한 투자를 해온 개발업체의 지위가 부정되고 그 결실을 강탈당하는 근본적 문제가 제기된다. 산청의 경우 기술 개발에만 60억원이 넘는 비용을 투자했고, 이어 양산 물량을 공급하기 위한 생산시설과 검사설비를 구축하는 등 66개월의 체계개발 및 양산 준비기간 동안 총 3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이 지급한 연구개발비는 32억원에 불과하다.

 

산청 관계자는 “당시 방산업체 추가 지정에 대해 결사 반대했지만 방사청이 이를 무시하고 추가 지정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그는 산업부도 방산업체 추가 지정이 K5 방독면에 적용된 산청의 기존 특허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추가 지정된 업체, 후속 양산 입찰 불참해 개발업체와 수의 계약

 

하지만 방사청은 오히려 산청이 K5 방독면 연구개발 이전에 획득한 특허를 K5 방독면 설계에 몰래 넣어 방사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 국군화생방사령부 관계자들을 속였다는 취지로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특허실시권 관련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산청에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이어 2018년 말부터 산청(한컴라이프케어로 상호 변경)이 기존 보유특허에 대한 제3자 실시권을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을 경우 방사청은 K5 방독면 구매를 취소하거나 추가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당시 신형 방독면 예산이 삭감돼 납품이 불분명한 상황이었던 터라 한컴라이프케어는 지난해 1월 기존 특허에 대한 제3자 실시권을 방사청에 무상으로 허여(許與)했다.

 

특허 침해 문제가 해결되자 방사청은 SG생활안전에 대한 방산업체 추가 지정을 추진했고, 곧바로 추가 지정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K5 방독면 후속 양산은 한컴라이프케어와 SG생활안전 간의 지명 경쟁 입찰로 진행됐다. 그러나 SG생활안전의 불참으로 3차례에 걸친 입찰이 모두 유찰됐고, 방사청의 입찰참가 독려에도 SG생활안전은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에 방사청은 한컴라이프케어와 유찰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3년에 걸쳐 방산업체 추가 지정을 요청했던 SG생활안전은 막상 방산업체 지정으로 입찰에 참가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했지만 K5 방독면 생산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SG생활안전이 애초에 방산업체 추가 지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방산업체가 ‘정당한 사유 없이 정부에 대한 방산물자 공급계약을 거부 또는 기피하거나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방산업체 지정 취소 사유가 된다는 점에서 방사청의 계속된 독려에도 입찰에 참가하지 않은 SG생활안전에 대해서는 방산업체 지정 취소 또는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의 행정 제재를 검토할 수 있지만 방사청은 어떠한 행정 제재도 부과하지 않았다.

 

정확한 경위 조사해 방산업체 지정 취소 등 합당한 제재 이뤄져야

 

한편, 방사청이 고발한 사건에 관해 3년에 걸쳐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올해 1월 산청(현 한컴라이프케어) 관련자들에 대하여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의 무혐의 요지는 산청이 기존 특허의 적용을 숨기지 않았고 방사청 관계자들이 관련 특허의 적용을 알고 있었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방사청의 형사 고발이 허위였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된 셈이다.

 

한 방산업계 임원은 “K5 방독면 초도 양산 과정에서 추진된 방산업체 추가 지정은 개발에 성공한 업체의 공급자 지위를 보장하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다 대기업이 무상으로 연구개발 성과를 가져가게 했다는 점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례”라면서 “정확한 경위 조사와 함께 SG생활안전에 대한 방산업체 지정 취소 등의 합당한 제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5 방독면 방산업체 추가 지정을 지켜본 한 방산 전문 변호사는 “무기체계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해서는 개발업체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방산업체 추가 지정 시점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정확한 경위 조사와 함께 관련 제도를 적극 개선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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