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상륙공격헬기 사업, ROC 타당성 진단 후 정부가 정책적 결심해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편집자>
■ 일각에서 여전히 부정적 시각 갖고 해외도입 필요 주장 펼쳐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해병대 상륙공격헬기 사업이 두 번의 선행연구를 거치면서 해외 도입에서 국내 개발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에 무장을 갖춘 국산 무장헬기가 상륙공격헬기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해병대 예비역과 헬기 전문가, 그리고 몇몇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해외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이슈화된 주요 쟁점들은 헬기 성능 부족, 조종석 형상 차이, 획득 및 운영유지 비용 상이, 선행연구 결과 변경, 현 정부 실세의 외압 여부 등이다.
이런 이슈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 사항으로 귀결된다. 먼저, 합참이 설정한 작전요구성능(ROC)이 육·해·공군 합동작전으로 진행되는 상륙작전에서 해병대 임무 수행을 충족할 정도로 타당한가이다. 다음은 세계 최고 성능의 외산 공격헬기를 비싸게 도입할 것인지 아니면 성능은 다소 떨어져도 이점이 많은 국산 무장헬기를 개발할지에 대한 정책적 결심 문제다.
■ KAI, “2차 ROC 수준 높아져”…ROC 충족하며 외압 징후 미확인
먼저 상륙공격헬기로서 ROC의 타당성 여부이다. 일각에서는 국산 헬기가 성능이 부족하여 임무 수행이 어렵고, 좌우 병렬식 조종석이어서 취약하며, 가격도 외산에 비해 저렴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두 번의 선행연구 과정에서 결과가 달라진 것에도 의구심이 있다. 즉 전 KAI 사장이 ROC 완화 등 모종의 관여를 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하지만 상륙공격헬기의 ROC는 지난 2016년 안보경영연구원이 수행한 1차 선행연구 당시보다 지난해 국방기술품질원이 수행한 2차 선행연구에서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KAI 관계자는 “직전 사장 부임 이후 결정된 2차 ROC의 요구 수준이 오히려 높아졌다”면서 “소형공격헬기(LAH) 시제품이 개발됐고, 이 과정에서 무장통합기술을 확보하는 등 기술 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산 무장헬기는 마린온에 LAH의 무장통합기술을 접목한 형상으로서 군에서 요구하는 기동성, 화력, 생존성 등 제반 요구성능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각에서 제기된 부정적 시각은 상륙공격헬기의 ROC도 모르면서 세계 최고 성능의 공격헬기와 단순 비교해 국산 헬기 성능이 문제된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만일 부정적 시각이 의미가 있으려면 상륙공격헬기의 ROC 설정 과정에 누군가 개입하여 KAI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하는 등 2차 ROC의 타당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그런 징후는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 병렬식 조종석 취약하지 않아…가격 저렴하고 성능 제한 없어
조종석이 전후가 아닌 좌우 병렬식이어서 취약하다는 주장은 무장사의 시야확보 제한과 동체 크기 증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하지만 항공전문가들은 “표적획득시스템(TADS/PADS) 탑재로 시야가 훨씬 넓어지며, 동체 크기보다 날개 회전반경이 더 중요하다”면서 “기만·경고 기능과 방호력을 갖추면 공격헬기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구권이 주로 사용하고, 미 특전사도 무장헬기로 작전을 펼치는 사례를 들었다.
국내개발을 해도 해외도입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미 국방안보협력국이 체코 판매를 승인한 해병대 상륙공격헬기인 ‘바이퍼(AH-1Z)’의 가격은 500억원(국산 무장헬기의 1.6배)을 상회해 결코 저렴하지 않다. 게다가 헬기의 평균 수명을 30년으로 고려할 때 운영유지 비용은 국산이 훨씬 유리하다고 KAI 측은 설명했다.
국산 무장헬기의 성능 특히 기동성 부족 이슈와 관련해서는 “병력 수송이 주 임무인 마린온에 완전군장 병력이 전원 탑승하면 무장헬기보다 중량이 더 나가게 된다”면서 “이 경우 무장헬기가 수직상승속도와 제자리비행고도 등 기동성 면에서 우세하며, 단지 최대순항속도는 무장 장착에 따른 항력 증가로 느리지만 임무 수행에는 제한이 없다”고 KAI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미 해병대의 AH-1Z(시속 257㎞)도 기동헬기인 UH-1Y(시속 272㎞)보다 최대순항속도는 느리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대전에서 생존성은 헬기의 비행 성능보다 위협을 사전 탐지해 대응하는 항전시스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 국내개발 이점 많고, 산업 파급효과와 일자리 창출도 기대돼
다음은 세계 최고성능의 외산 헬기와 다소 성능은 떨어져도 국익 창출이 가능한 국산 헬기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정책적 결심 문제다. 방위사업관리규정에는 선행연구 단계에서 국내 개발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게 돼 있고, 사업추진 기본전략 수립 시 운영유지 비용까지 분석하여 획득 방안을 결정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태우 정부 시절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앞두고 F-18과 F-16이 경쟁했던 사례가 있다. 당시 공군은 신기종인 F-18을 원했지만 이종구 국방부장관은 F-16으로 결정했다. F-18의 성능이 더 뛰어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F-16은 성능 대비 가격이 저렴해 더 많은 대수를 도입할 수 있는데다 국내 항공산업 육성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도 당시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운용유지 비용까지 고려하면 가격이 매우 저렴한데다, 정비 지원이 원활해 작전가동률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미래전 양상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등 이점이 많다. 게다가 약 5조원의 항공산업 파급 효과와 9천여명의 일자리 창출까지 기대된다고 한다.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인 것이다.
■ 근거 없는 의혹 제기보다 국익 차원에서 성공 지원하는 자세 필요
그러나 KAI의 기술력이 부족하여 임무 수행이 가능한 무장헬기를 만들 능력이 없다면 당연히 해외도입으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개발의 성공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견해도 대두된다. 그래야 개발에 성공하면 해외수출의 길도 열리며 국내 방위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니면 말고’식의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며 상륙공격헬기의 국내개발에 부정적 시각만 제기해서는 방위산업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국내개발이 ROC도 충족하고 국익 차원에서 의미 있는 접근이란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KAI가 성공할 수 있도록 밀어주면서 당분간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