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직업] 셀트리온제약 꺾은 대장주 씨젠의 천종윤 대표, 이대교수 출신 ‘성공신화’?
한유진 기자 입력 : 2020.08.14 07:01 ㅣ 수정 : 2020.11.21 10:51
가난과 질병을 이겨낸 검정고시 출신 ‘늦깍이 대학생’ / 강한 성취동기와 집념으로 씨젠을 만들어
[뉴스투데이=한유진 기자] 코로나19 속 씨젠의 성장은 매섭다. 씨젠은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씨젠은 ‘분자진단’ 개발 전문 기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 속 신속하고 정확한 코로나19 감염 진단키트를 개발해 ‘K-방역’의 주역으로 꼽힌다. 현재 씨젠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코로나 19 진단키트의 75% 이상을 제공하고 있다.
2000년에 씨젠을 창업한 천종윤(63)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출신이다. 따라서 꽃길을 걸어온 부유한 엘리트 출신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그리고 질병을 겪었지만, 그 고난을 자력으로 극복한 인물이다. 만학도로 대학에 들어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국유학 생활을 견뎠다. 강한 성취동기와 집념의 소유자인 셈이다.
■ 코스닥 ‘223위’→ ‘2위’ 씨젠의 폭풍 성장 / MSCI 한국 지수 등극
지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씨젠은 셀트리온 제약을 꺾고 코스닥 시가총액 2위 자리를 꿰찼다. 한 달 전까지만해도 1,2위 모두 셀트리온헬스케어(16조2762억원), 셀트리온제약(4조3076억원)이 지키고 있던 ‘셀트리온 성벽’에 균열을 낸 것이다. 창업 20년 만에 거둔 성과이다.
13일 기준 씨젠의 시가총액은 7조1803억이다. 1월 초만 하더라도 시가총액 8119억원으로 223위 였다.
씨젠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2748억원, 영업이익 1690억원, 당기 순이익 1316억원을 달성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증권가에서 추정한 2분기 예상치를 크게 상회한 결과로, 이는 전년 연간 실적대비 3배에 달하는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이다.
또 씨젠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녈(MSCI) 한국 지수에 13일 추가됐다.
씨젠이 MSCI 한국 지수에 편입된 이유는 MSCI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시가총액과 유동 시가총액(실제 유통 주식을 기준으로 한 시가총액) 기준을 만족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MSCI 지수에 신규 편입되기 위해서는 평가 기간 중(7월20일~31일 사이) 임의의 하루에 시총 3조8000억원 이상, 유동 시총 2조7000억원을 넘어야 한다고 추정했다.
씨젠의 평가 당시 시가총액은 7조6052억원, 유동 시총은 4조6000억원을 넘어 예상대로 안정적으로 MSCI 편입에 성공했다. 씨젠은 하반기에도 역대급 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일반적으로 3분기는 비수기로 통하지만 오는 4분기는 독감 등의 호흡기 질환이 많아지는 시기가 겹쳐 안정적으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MSCI 한국 지수 편입으로 씨젠은 이제 한국 대표 기업 그룹으로 묶여 외국인들의 자금이 지금보다 더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 천종윤 대표의 ‘빠른 판단력’과 ‘뚝심’, 코로나19를 기회로 만들어
씨젠의 괄목할만한 성공은 천종윤 대표의 빠른 판단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말 중국에서 원인불명 바이러스성 폐렴 환자가 집단 발병했다는 뉴스가 국내에 최초 보도됐다. 코로나19가 판명되기 전임에도 천종윤 대표는 이 뉴스를 접하고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천대표는 즉시 연구소장에게 진행 중이던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최우선 순위로 진단시약 개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불과 2주 만에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키트 ‘올플렉스(Allplex 2019-nCoV Assay)’를 개발했다. 보통 인허가에는 통상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씨젠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2주 만에 긴급 사용승인을 얻어냈다.
이런 발빠른 대응 덕분에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코로나19 진단키트의 75~80%가 씨젠 제품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미국·캐나다 등 북미, 브라질·멕시코 등 총 67개국에서 씨젠의 진단키트를 사가고 있다. 실제 6월 말 기준 총 3000만 테스트 이상의 진단키트를 수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행운이 아니었다. 지난 20년간 ‘분자진단’ 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천종윤 대표의 뚝심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초기 3년간 매출이 제로였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거듭한 게 씨앗이 됐다.
■ 연구보다 기업을 통한 ‘더 큰 일’에 관심/삼촌인 천격준 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3억원 투자가 종잣돈
천 대표가 이렇게 분자진단 분야에 한 우물을 파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기업 경영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한 세상을 사는 데 연구보다는 사업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1957년생인 천 대표는 어린시절에 가난을 겪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갑작스레 발병한 결핵 때문에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5년간 요양을 해야 했다. 결국 독학으로 21살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년 뒤인 23살에 건국대 농대에 진학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문제 등으로 남들은 대학을 졸업할 나이에 입학하는 ‘만학도’가 된 것이다.
졸업 후 미국 테네시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이후 하버드대, UC버클리대 등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학부시절에 공부했던 농학과 분자생물학은 전혀 다른 분야라 힘들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잠시 연구원으로 일하다 1995년 귀국해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유전자 관련 연구를 했다. 가뭄저항성 유전자, 조골세포 특이 유전자, 태반 특이 및 태반조절 호르몬 유전자 등이 그것이다. 해외 학술지에 논문 21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연구활동을 통해 창업을 위한 아이디어와 지식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부터는 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씨젠을 세웠다. 삼촌이 투자한 3억원이 종잣돈이었다. 삼촌은 ‘애니콜 신화’의 주역인 천격준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사장이다.
사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천 대표는 결단을 내린다. 2002년에 교수직을 사퇴하고 씨젠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년 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위기를 겪었다.
2005년 유전자 증폭 기술인 DPO(Dual Priming Oligonucleotide)의 독자개발, 2006년 동시 다중 유전자 증폭(Multiple PCR) 플랫폼을 구축 등의 성과를 거두며 분자진단 시장에 입성함으로써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씨젠은 2009년에 영업이익 46억원을 기록하고, 다음 해인 2010년에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본격적인 성장을 위한 출발에 서게 된다.
천 대표는 검정고시 출신 ‘늦깍이 대학생’에서 수조원대 기업을 일궈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