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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48)

대한민국을 구한 대한해협해전과 전초전인 옥계해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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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0.08.14 08:15 ㅣ 수정 : 2021.01.08 10:10

동해안 상륙을 기도하는 북한군을 타격한 해군 YMS509(가평)정의 ‘옥계해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ㆍ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동해안으로는 북한군 5사단과 38선 경비 1여단이 기습남침 공격을 했다. 이에 대응하는 한국군 부대는 강릉에 있던 제8사단으로, 예하에 2개 연대를 두고 있었다.

 

당일 04시30분에 강릉, 옥계, 임원 등에 상륙한 북한군 부대가 후방을 교란하고 동시에 38선을 통해 북한군 5사단이 남침을 개시하자, 국군 8사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대관령을 넘어 충북 제천 방향으로 철수했다.

 

▲ 해군사관학교에 있는 ‘백두산함’ 마스트(등록문화재 제463호)와 옥계해전에서 북한군 수송선을 격퇴시키며 해안선에 있던 상륙정 1척을 격파하고 발동선 1척도 나포하는 전공을 세운 우리 해군의 YMS509(가평)정 모습 [사진자료=해군사관학교]

 

6ㆍ25남침전쟁 시 우리 해군이 첫 전공을 세운 옥계해전

 

6ㆍ25남침전쟁 발발 당일 04시30분경에 북한 수송선단이 남하하여 강릉, 옥계, 임원 등에 북한군이 상륙하자 해군본부는 YMS509(가평)정에게 긴급 출동하여 격침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1948년 미 해군 YMS220정을 공여 받아 ’가평정’으로 명명한 우리의 YMS509정은 07시20분경 안개속에서 배 한척을 발견했다. 국제 해양법상 발광 신호로 수하를 시도했으나 북한 경비정이 포격을 가해와 교전이 시작됐다.

 

50여분 간 계속된 교전으로 YMS509정은 함수가 피격 당했으나 즉시 보수 완료했다. 반면에 고전하던 북한 수송선박은 15시경 북으로 도주했다. 해군은 17시30분경에는 해안선에 있던 상륙정 1척을 격파시키며 발동선 1척도 나포했다. 이때 북한군 33명을 사살하는 등 상륙을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 해군에게 첫 승리를 안겨준 전투였다.

 

결국 6ㆍ25남침전쟁 발발 당일 오후 옥계에 상륙을 기도하는 북한군을 교란, 지연시키며 아군 8사단이 철수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그 뒤 YMS509(가평)정은 유엔 해군함대와 연합작전에 참가하여 서해안 봉쇄 작전에 많은 공을 세웠다. 

 

▲ 1947년 조선해안경비대 시절에 가평정과 동형함들 앞에서 기념 촬영한 대원들과 우측 ‘백두산함(PC-701)’ 모습 [사진자료=국방부]
 

눈물 어린 애국의 국민 성금으로 무기 장착한 최초 전투함 ‘백두산함(PC-701)’

 

한편 6.25남침전쟁 직전까지 우리 정부는 영해를 지킬 단 1척의 전투함도 갖지 못했다. 정부 수립 이후 빈약한 국가 재정 때문에 함포가 장착된 군함을 구입할 수 없게 되자 해군은 자체적으로 전투함 구입 자금을 모금했다.

 

대한해협해전 당시 해군소위(해사2기)로 백두산함 갑판사관이었고 이후 백두산함 함장을 역임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현 최재형 감사원장의 부친)의 회고록 ‘6·25 바다의 전우들’에 따르면 장병들이 월급에서 5~10%를 갹출했고, 당시 해군참모총장 손원일과 정긍모 제독의 부인들을 포함한 군인가족들도 삯바느질과 수제품 가공으로 852만 원을 모았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 돈을 전달하며 군함 구입을 청원하자 이 대통령이 4만5000달러를 보태 구입을 추진했다. 이어 곧 많은 국민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주머니를 열고 보리쌀까지 팔아 100원, 200원씩 보태며 애국의 뜻을 함께 했다.

 

백두산함은 미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건조한 군함으로 1946년 퇴역해 무장을 해제한 뒤 뉴욕의 해양대 실습선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 해군은 1949년 10월, 450톤급 백두산함을 1만8000달러에 사들였다.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은 하와이에서 3인치 함포를 장착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괌에서는 포탄을 100발만 살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6·25전쟁 두 달 전인 1950년 4월 10일 경남 진해에 입항하며 우리 바다에 띄울 수 있었다. 비록 미국이 2차 대전 때 쓰던 중고 함정이었지만 우리 국민의 성금을 모아 무기를 장착한 눈물 어린 애국의 결정판이었다. (중편계속)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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