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진 기자 입력 : 2020.08.09 07:40 ㅣ 수정 : 2020.11.21 15:17
“기존 캐디 이외에 취준생과 고용위기 항공사 직원도 대안직업 가능”
4차산업혁명시대에 기존 직업에 종사하는 인간은 ‘상실 위기’에 봉착해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의 미래산업 종사자들이 ‘신주류’가 되고, 산업화시대의 직업들은 소멸된다는 예측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미래 주류직업의 실체와 인재상은 무엇일까. 뉴스투데이는 신주류 직업 종사자들을 만나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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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패러다임 전환은 작은 움직임에서 출발합니다. 골프장 캐디의 정규직화, 이 작은 움직임이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나비효과가 될 것입니다.”
아무런 신분 보장을 받을 수 없는 ‘개인사업자’인 골프장 캐디를 정규직으로 만든다는 혁신적 발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아이캐디의 김부경 대표(57)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뉴스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최근 특수고용직(특고직) 고용보험 의무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골프장 캐디의 처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아이캐디’가 국내 골프산업의 한 축이 된다면, 특고직 고용보험 의무화는 캐디들에게 의미가 없어진다. 캐디는 4대 보험을 적용받는 전문직업인으로 채용한다는 게 아이캐디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캐디는 골프 산업에 종사하는 직군 중 하나임에도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18홀 혹은 36홀에 달하는 개별 골프장의 홀별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서로 다른 고객들의 골프채를 정확하게 구별해서 전달하는 등 상당한 숙련과 전문성을 요구받는 게 캐디의 직무이다.
더욱이 까다로운 고객들의 심리를 파악해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수준도 대단히 높다. 전문적인 직업으로 인정받는 게 순리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발상이 아이캐디 사업의 단초가 됐다.
‘아이캐디’는 올해 첫 출범했다. 물론 비즈니스 모델은 캐디의 정규직화·전문직화를 선도하는 ‘캐디 아웃소싱 업체’이다. 단순히 골프장에 인력을 파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업무범위와 처우 등 일하는 방식까지 사전에 협의해 캐디의 고용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표정과 어조로 정규직화를 비즈니스 모델로 착안하게 된 배경, 사회경제적 효과, 수익모델, 향후 비전 등에 대해 설명했다.
■ 골프장 재산세 환급 사업으로 골프산업 첫발 / 캐디의 근무환경 및 양성교육의 한계 보고 ‘아웃소싱 사업’ 착안
김 대표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다. 현대전자연구소의 통신 부문 개발 팀장으로 일하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인력과 업무를 배분하고 아이디어를 통합(merge)하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다.
이후 ‘한국경영전략’ 정창훈 대표와 함께 기업 컨설팅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골프장 재산세 환급 사업을 하면서 골프산업에 첫 발을 내딛었다.
김 대표는 캐디 아웃소싱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골프장 실사를 하면서 캐디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직접 접하게 됐다”며, “분명 캐디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인데도 관리되지 않고 대우받지 못하는 걸 보면서 이들과 함께 잘 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수백개의 골프장을 고객으로 삼아서 영업과 마케팅을 하면서 또 다른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얻어 실천에 옮긴 것이다.
김 대표는 캐디 수급 문제에 주목했다. 현재 국내에서 4만 명이 넘는 캐디들이 활동하고 있음에도 골프장에는 캐디가 끊임없이 부족하다. 중도에 일을 그만두고 이직하는 캐디가 많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그 원인을 캐디 양성업체의 한계에서 찾았다. 그는 “캐디 양성소에서 통상적으로 교육비·식비·기숙사비 등 한달에 160~200만원을 받으면서 캐디 이론·실무 교육을 제공한다”며, “문제는 이들 업체가 캐디들을 골프장에 취업시켜주지만 이후 지속적인 관리를 못 한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양성소에서 받은 교육은 실전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 한다. 캐디가 일하게 되는 골프장의 홀 구조·특징 등이 제각각이다. 골프장에 취업하면 새로 파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캐디의 업무 역시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고객 스타일에 따라서 골프채를 다 외워야 하며 거리를 측정하고 로스트 볼을 찾아줘야 한다. 여기다 미숙한 업무 능력에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으로부터 인신 공격이라도 당하게 되면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더 편한 선택지가 된다.
김 대표는 “중도하차하는 캐디 비율이 거의 50~70%다”면서, “양성소에서 온 캐디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서 캐디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에도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 3개 골프장과 MOU체결·취준생에게도 신직업으로 제시 / 고용위기 항공사 측과도 접촉 / 티칭프로급의 전문 캐디 양성 추진
캐디의 정규직화 및 전문직화가 이 같은 복잡한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아이캐디가 캐디들이 개별 골프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를 상담하고 대안을 마련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나아가 “캐디의 정규직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캐디라는 직업에 대한 낮은 수준의 사회적 인식을 제고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캐디들은 현재 99%가 소득세를 내고 있지 않은데,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납세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게 될 뿐 아니라 4대보험·퇴직금·안정된 급여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3개의 골프장과 양해각서(MOU)를 체결, 소속 캐디들을 고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이캐디는 기존 캐디는 물론 실직 위기에 있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층에도 이를 어필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캐디는 평균연봉이 4000만원을 넘는다”면서 ”전문성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충분히 전문화 한다면 고소득 직종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항공사 인사팀과도 컨택 중”이라며, “항공업계에서 대거 발생할 수 있는 실직 청년들에게도 캐디의 정규직 타이틀이 크게 다가올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한 아이캐디는 ‘스포츠어드바이저’ 캐디 양성을 통해 캐디의 전문직화를 도모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실력에 비해 타수를 줄이지 못하는 골퍼들에게 스포츠어드바이저 캐디가 프로 골퍼들이 조언해주는 것처럼 원포인트 지도를 제공할 방침”이라며, “골퍼 입장에서도 티칭프로를 고용하는 것보다 좀 더 차별화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현재도 외국어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지명 캐디 등이 있지만 그 보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전문 캐디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 캐디피는 고스란히 ‘보전’하고 4대보험 등 제공 / “정규직화된 캐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
아이캐디 사업의 가장 큰 설득력은 캐디피에 손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캐디가 한달에 4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면, 거기서 수수료를 떼는 등의 이윤을 취하지 않는다. 캐디들이 가장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골프장 고객으로부터 받는 캐디피를 고스란히 ‘월급’으로 보전받고, 추가로 4대 보험과 다양한 문제 해결 등과 같은 보너스를 받게 된다면, 아이캐디의 고용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근로기준법에 준하여 일주일 40시간, 탄력적으로 52시간의 범위 내에서 기본급이 산정된다. 기본급은 22게임(250만~260만원)을 기준으로 나간다. 캐디가 35게임을 뛴다면 나머지 13게임은 기본급이 아닌 인센티브로 나오는 구조다.
따라서 캐디의 능력과 역량에 따라 35~40게임까지 뛸 수 있으면 연봉 5000만원까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근무 일수도 유연하다. 비수기 때 근무 일수가 적으면 유급휴가를 쓰는 등 자유롭다. 성수기 때 더 일했으면 월급도 가불처럼 땡겨받을 수 있다.
김 대표는 “기존 골프장 캐디뿐만 아니라 취업준비생, 고용위기에 처한 직군의 종사자 등이 새로운 대안적 직업으로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캐디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게 목표”라면서 “IT기술의 혁신 없이도 4차산업혁명시대의 패러다임 전환은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아이캐디는 정규직 캐디 내에서도 조장 캐디, 캐디 마스터 등 직급 체계를 정립해 캐디들의 지속적인 관리를 지원할 방침이다.
김 대표는 “현재 캐디들은 소속감이나 공동체의식이 없지만 향후 아이캐디 출신 캐디들이 많아진다면 서로 도우면서 정착을 돕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캐디들의 노동 3법을 보장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가는 등의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 대표는 “캐디 300명 당 1인의 대표자급 위원을 선출해서 경영회의에 함께 참여할 예정”이라며,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 필드의 생각을 듣고 경영내용을 투명하게 필드에 내려보낼 수 있는 선순환 소통 창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고용보험·고용창출 지원금 등 정부지원과 금융권·앱 광고 제휴 등을 통한 수익 창출
아이캐디는 캐디피에 수수료를 떼지 않는 대신 다양한 정부지원 및 영업채널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고용보험 제공을 통해 관련 비용을 정부에서 50% 지원 받고, 고용창출 지원금을 받는 등으로 비용을 충당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금융권과의 제휴도 가시화 되고 있다. 농협카드와 우리카드에 아이캐디 제휴카드를 만들어 캐디들이 일정 금액을 해당 카드로 결제하도록 하는 구조다. 아이캐디는 카드 발급 수수료를 받게 된다.
캐디 예약제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여러 기업들의 광고 제휴도 받을 예정이다.
김 대표는 “현재 캐디들은 공식적인 이력이나 근무경력 없이 활동하고 있다”며, “캐디들의 경력·이력·장점 등의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앱을 통해 고객의 선택권을 다양화하고 광고 수익을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향후 경쟁업체의 등장 여부와 관련해 “자유 경쟁사회에서 경쟁자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캐디 아웃소싱 사업은 아이캐디가 선도했지만 우리보다 더 나은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게 되면 골프산업 전체가 발전할 수 있고, 그것이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