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 현대오일뱅크 어닝 서프라이즈의 '비밀'은?,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의 선견지명 위력

이원갑 입력 : 2020.08.03 07:31 ㅣ 수정 : 2020.08.03 07:31

권오갑 사장시절 달성한 정제설비 고도화율 1위, 강달호 사장이 '팀워크'이뤄/CEO의 통찰력이 지닌 위기극복 능력 입증/자회사 선전에 힘입어 현대중공업도 흑자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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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국내 정유업계가 치명타를 입고 있는 가운데 현대오일뱅크가 올해 2분기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면서 그 ‘비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른 정유사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오일뱅크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은 가격이 낮은 초중질유를 사용함으로써 정제마진을 높인 데 있다.

 

그렇다면 왜 현대오일뱅크만 초중질유 비중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일까. 초중질유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고도화설비’ 비율이 다른 정유사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정유시스템은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이 현대오일뱅크 대표시절에 추진했고 당시 대산공장 생산부문장 등을 지냈던 강달호 대표가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다. 권 회장과 강 대표의 ‘팀워크’가 현대오일뱅크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오른쪽)과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 모습 [사진=현대오일뱅크, 그래픽=뉴스투데이 이원갑]
 

이와 관련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남미산으로 대표되는 중질원유는 단순정제설비 투입 시 중유 성분 생산 비중이 더 높은데 고도화율이 높게 되면 가격이 싼 중질원유 투입을 늘리더라도 양호한 수준의 경질제품(휘발유, 등유, 경유) 생산 수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라며 “현대오일뱅크는 단순정제설비와 고도화설비처리용량 간 비율을 뜻하는 고도화율이 40.6%로 업계 최고”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한석유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기준 정제설비 고도화율은 현대오일뱅크가 40.6%로 1위, GS칼텍스가 34.3%로 2위를 차지했다. 23.9%의 SK이노베이션과 22%의 에쓰오일이 뒤를 따르고 있다. 특히 정기보수기간 중 일일 2만 배럴 규모의 탈황설비 증설작업을 통해 초중질원유 추가 투입이 가능했다는 게 현대오일뱅크 측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의 정제설비 고도화 작업이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에 의해 이루어졌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면서 “강 사장의 취임 이전부터 쭉 진행돼 오던 작업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1년 권오갑 당시 현대오일뱅크 사장(현 현대중공업그룹 회장) 시절에 충남 대산공장에 2차 고도화 설비를 준공해 정제설비 고도화율을 당시 업계 1위 수준인 30.8%로 끌어올렸던 바 있다. 

 

권오갑 회장이 시동을 걸었던 정제설비 고도화율 높이기 전략이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정유업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오일뱅크의 흑자전환은 최고경영자(CEO)의 통찰력이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가 ‘많이 남기는 장사’를 하게 된 비결인 원재료는 멕시코 등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주로 수입되는 ‘초중질원유’이다. 그 비중이 33%로 타사보다 5~6배 높아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초중질원유의 가격대는 배럴당 5달러로 지난 30일(현지시간) 기준 배럴당 43.14달러인 중동산 두바이유의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변동폭이 큰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 가격에 의해 연동되기 때문에 경질유에 비해 얼마나 많은 원가를 절약할 수 있는지는 매번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중질유에 ‘황’과 같은 불순물이 많이 녹아 있어 정제 시 수요가 계속 줄고 있는 중유(벙커C유)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주로 선박 연료로 쓰이는 중유로부터 휘발유, 항공유, 경유 등 상대적으로 비싼 석유제품을 뽑아내려면 ‘탈황설비’와 같이 불순물을 솎아낼 수 있는 고도화 정제 설비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쪽이 현대오일뱅크다.

 

3분기 실적 개선도 전망됐다. 불황 속 흑자를 이끈 열쇠인 초중질원유와 이 원유를 ‘돈이 되는 선’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력에 대해 관심이 모이고 있다.

 

더욱이 권오갑 회장의 현대중공업지주도 2분기 매출 4조58억원, 영업이익 1043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여기에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호조도 상당부분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정유업계 4위 기업인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달 30일 2020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연결기준 매출 2조5517억원, 영업이익 13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수요가 줄고 유가 폭락의 영향이 계속되면서 매출은 전년 대비 52.03%, 영업이익은 91.45% 각각 감소한 결과다. 이는 경쟁사들보다 매출 감소폭은 더 크지만 이익률은 더 높은 수치다.

 

반면 마찬가지의 악재를 겪은 업계 ‘형님’들은 현대오일뱅크와 달리 모두 2분기에 적자를 낸 것으로 보인다. 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영업손실은 4397억원, 업계 3위 에쓰오일(S-OIL)은 1643억원으로 잠정 발표됐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 감소폭은 각각 44.7%, 44.8%를 기록했다. 기업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GS칼텍스 역시 2분기에 적자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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