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선 (375)] 코로나19 확산 속 일본기업들이 직무형 고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
김효진 입력 : 2020.07.28 11:31 ㅣ 수정 : 2020.07.28 11:41
업무능력만 보고 채용하고 승진하는 직무형 고용에 일본기업들 관심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본기업들 사이에서 재택근무나 시차출근처럼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업무방식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직무형 고용이 다시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직무형 고용은 업무내용과 책임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여 성과를 평가하기 쉽도록 만든 고용형태로 재택근무와 같이 직접적인 의사소통과 성과확인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활용이 용이하고 노동생산성 향상과 우수한 인재확보에서도 더욱 유리하다고 평가받는다.
반대로 지금까지 거의 모든 일본기업들은 멤버쉽형 고용을 유지해왔다. 멤버쉽형 고용은 최초 채용단계에서는 개개인별로 구체적인 업무를 규정하지 않다가 입사 후에 회사의 방침에 따라 부서배치 및 전근 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원 한명이 다양한 부서와 업무를 경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잦은 인사이동으로 업무내용과 책임범위가 모호해져 성과평가에 어려움이 있고 개개인의 고유한 능력과 특성이 무시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인력운용도 불가하다. 여기에 업무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장시간노동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치명적인 단점까지 있었다.
최근 일본기업 중에서 기존 멤버쉽형 고용을 탈피하여 직무형 고용으로 전환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곳이 바로 후지쯔(富士通)다.
후지쯔는 사무실 면적을 2022년 말까지 절반으로 줄여 출근을 전제로 하는 근무방식 자체를 바꾸겠다고 이번 달 6일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원격으로도 적절히 직원을 평가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6월부터 자사 과장직 1만 5000여명을 대상으로 직무형 고용형태를 도입했다. 또한 올해 안에 모든 직급과 직종에 대해 직무규정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직무규정서란 구체적인 업무내용과 책임범위, 요구되는 스킬과 자격 등의 항목이 나열된 체크리스트로 직무형 고용을 운영하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구직이라면 구체적인 연구테마와 절차, 목표를 명기하고 이에 벗어나는 업무지시는 직무규정서에 근거하여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게 된다. 회사 역시 직무규정서를 활용하여 각 직급과 직종에 가장 어울리는 인재가 누구인지, 성과를 얼마만큼 달성하였는지 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물론 기업별로 직무규정서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규정을 너무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직원들의 업무유연성과 창의력을 저해할 수 있고 반대로 규정내용이 애매하면 멤버쉽형 고용과의 차이를 제시하기 힘들다.
또한 직무형 고용은 같은 직급과 직종 안에서도 명확한 성과평가로 급여차이를 발생시킨다. 후지쯔의 경우 업무의 난이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타사와 차별화되는 전문성, 내수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도 진출 가능한 다양성의 4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총 9개의 평가등급을 설정하였고 각 등급 간에는 월 5~10만 엔의 급여차액이 존재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후지쯔는 7월부터 관리직급 자체를 공개모집하기 시작했다. 현재 관리직에 앉아있는 직원들은 물론이고 젊은 사원들도 자신이 관리직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면 누구나가 공개모집에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후지쯔는 ‘관리직은 연공서열로 자동으로 앉는 자리가 아닌 자신이 쟁취해야 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물론 일본 내에서 직무형 고용이 주목받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2000년 전후에 경기후퇴를 계기로, 2010년 전후에 글로벌화를 계기로 성과주의가 거론된 적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이 흐지부지 사라진 전례가 있다.
때문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시 한번 불붙은 성과주의 열풍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