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외화예금↑…외화유동성을 확보로 코로나 방파제 될 수도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최근 환율 변동성이 크지 않고 달러투자 수익률이 크지 않음에도 시중은행 달러예금이 늘어나자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분산투자가 각광을 받으면서 고객이 달러예금을 안전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키려는 수요가 늘고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은 저비용으로 외화유동성을 확보해 외화조달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됐다.
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달 거주자 외화예금은 809억2000만달러로 한 달 전보다 3.5%(27억4000만달러) 증가했다. 지난 2월부터 증가세를 이어가며 2018년 3월(813억3000만달러) 이후 2년 3개월 만에 다시 800억달러로 올라섰다.
이에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합산액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에도 달러투자가 안정적인 자산분산의 방편으로 지속활용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외화예금보다 외화현찰로 증권사를 통해 해외주식 거래를 하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은행권의 잠재 달러예금이 유출될 것으로 보인다.
■ 3월 환율변동성↑, 환차익 노리는 투자수요↑ /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3월 달러예금 잔액 18.1% 증가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5월 말 기준 달러예금 잔액은 449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2월 말부터 3개월만에 원화 기준 10조원 가까이 달러 예금액이 늘어났다.
특히 코로나 타격이 본격화된 2월 말에서 3월 말 18.1%(6억6090만달러)가 늘어나면서 올 들어 가장 큰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대비 24.7%(85억6120만달러) 늘어난 수치다.
3월은 올해 중 가장 큰 환율 변동성을 보이기도 했다. 환율이 가장 크게 하락한 지난 3월 6일 1185원/달러에서 3월 20일 1280원/달러로 고점을 찍었다. 10일 이후에는 다시 1212원/달러로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시중은행 관계자 A씨는 “환율 변동성이 심하면 수출기업의 경우 환전수요가 생기기 때문에 교체할 자금이 필요해진다”며, “조금 더 고점에 매도하기 위해 달러예금으로 묶어두려는 기업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3월에 환율이 평균 40~50원 가량 변동이 지속돼서 투자자들이 달러투자로 3~4% 수익률을 낼수 있었다”며 이 시기 달러투자 등이 늘어난 배경을 밝혔다. 환차익을 보려는 소위 환테크 수요가 높았다는 것이다.
환테크는 환율을 활용하는 제테크 방법으로, 환율의 변동방향에 따라 외환을 매입·매도해 수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280원/달러일때 10만 달러를 사들여 1212원/달러로 환율이 떨어졌을 때 팔면 680만원의 환차익을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해외 유학생 송금 등, 달러화가 주기적으로 필요한 개인고객과 유학 자금마련으로 원화 강세(환율 하락)일 때 달러를 확보하려는 실수요로 인해 달러예금은 꾸준히 증가했다.
■ 4~6월 환율변동성↓에도 달러예금 늘어나 /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6월 달러예금 잔액 4.0% 증가
달러예금 증가세는 환율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4~6월에도 이어졌다.
4월 한달 간 환율 고점은 4월 3일 1237원/달러, 저점은 4월 13일 1212원/달러였다. 5월은 5월 26일에 고점 1242원/달러, 5월 11일 저점 1217원/달러 수준이었다. 평균 20원보다 작은 변동폭을 기록했다.
6월 들어서는 변동폭이 소폭 증가했으나 3월 대비 낮은 수준이었다. 고점은 6월 12일 1293원/달러, 저점은 6월 1일 1238원/달러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원 달러 환율 변동성이 3월보다 낮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 B씨는 “코로나 사태가 급증하거나 재확산되지 않는 이상 원/달러 환율은 안정적인 범위에서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5대 시중은행 달러예금은 꾸준히 증가했다. 4월 말 330억5000만달러를 기록해 전 월대비 1.9%(8억2800만달러) 증가했다. 5월 말엔 449억9000만 달러로 전월대비 2.1%(9400만달러) 증가했다.
6월 말 기준 달러 예금은 4.0%(18억1200만달러) 증가한 470억100만달러를 기록했다. 3월 이후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
■ 몰빵투자→달러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위험분산 / 은행, 저비용으로 외화유동성 관리…급한 외화조달로 인한 손실 방지
업계에서는 최근 달러예금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이유를 자산투자에 대한 관점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이와 관련해 A씨는 “3월만 하더라도 단기로 묶어놓는 달러 예금금리가 있었다”며, “금리가 조금 높았기 때문에 좋은 투자처였지만 요새는 환율이 하향안정화됐기 때문에 금리 측면에서는 메리트가 덜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는 달러로 투자이익 확대를 노린다기보다 분산투자를 위해 채권·달러·예금으로 안전자산을 구성하고, 위험자산은 주식·펀드 등으로 분산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이 추세”라고 밝혔다. 과거 한 곳에 집중투자하는 소위 ‘몰빵투자’보다 자산을 분산운용하려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은행 입장에서는 달러 보유액이 늘어나 외화조달의 어려움이 거의 없다. 은행은 외화수요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기업 고객이 달러를 많이 맡기면 자금활용 여력이 커진다.
A씨는 “달러예금 잔액 증가는 외화유동성 관리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며, “고객의 외화달러 매도세가 강화되면 잔액이 줄어들고 달러 조달비용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외화유동성이 부족하면 만기가 돌아오는 외화채권·부채 등을 상환할 때 급하게 고금리로 달러를 조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B씨 역시 “한·미 통화스와프,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Liquidity coverage ratio) 인하 등으로 정부가 선제적으로 정책을 마련했고, 개인·기업이 달러투자 등을 확대해왔기 때문에 저비용으로 외화유동성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주식 거래 급증이 은행의 달러예금 증가로 이어지진 않을 전망이다. 최근 해외주식 거래 메커니즘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증권사들이 외환업무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에 은행의 외화예금을 통해 해외주식을 결제하는 게 관례였지만, 최근 외화현찰로 직접 결제하는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에도 은행권의 외화예금은 증가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A씨는 “환율 변동성이 컸을 때보다는 달러투자 수익률이 낮겠지만, 안정성을 어느정도 담보하는 투자 기조가 이어지면서 달러투자 역시 장기적으로 유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