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0.06.30 16:55 ㅣ 수정 : 2020.07.01 09:54
절충교역 미적용 시 글로벌 공급망 포함 기회 상실하고 해외업체 이익만 높여줘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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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018년 6월 방위사업청은 ‘절충교역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1982년 도입된 절충교역 제도를 방산육성·방산수출·일자리창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편할 것임을 밝혔다. 핵심 내용은 절충교역의 명칭을 산업협력으로 변경하고, 사전가치축적 제도를 도입하며, 절충교역 무상 원칙을 폐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절충교역이란 국외로부터 무기 또는 장비 등을 구매할 때 국외의 계약상대방으로부터 관련 지식 또는 기술 등을 이전 받거나 국외로 국산무기·장비 또는 부품 등을 수출하는 등 일정한 반대급부를 제공 받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교역이다. 무기거래 과정에서 존재하는 독특한 무역 형태로 현재 130여 개 국가가 이런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 감사원 감사의 후폭풍으로 절충교역 조건부 적용 논리 도입
우리나라는 2017년 초 F-35A 도입을 추진하면서 록히드마틴이 절충교역으로 약속했던 기술이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당시 방사청은 9개월 동안 감사원의 고강도 감사를 받았고, 2018년 1월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를 혁신하라는 감사 결과를 통보 받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협의과정과 토론을 거쳐 내놓은 산물이 ‘절충교역 혁신방안’이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절충교역 무상 원칙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고, 이로 인해 방사청 내에서는 폐기하자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런 분위기는 곧 절충교역 의무 적용을 흔드는 논리로 작용했다. 결국 무상 원칙은 폐기하고 비용 대비 효과분석에 근거해 절충교역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의무 적용이 조건부 적용으로 바뀐 셈이었다.
명칭 변경과 사전가치축적제도 적용은 계속 거론되던 개선 방향이었지만, 의무 적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새로운 제안이었다. 비용 대비 효과분석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분석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이를 제지하기 어려웠다. 결국 방위사업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고, 절충교역 지침(방사청 예규) 개정으로 가능한 사전가치축적 제도는 시행 중이다.
지난해 8월 방사청은 절충교역 정의에 공동개발·생산, 합작투자 등을 추가해 ‘산업협력’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절충교역 추진을 의무화하지 않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방위사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 개정 법률안은 지난 5월 29일 20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적으로 폐기됐다.
■ 개정안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듯…정부가 적용 포기할 근거 만들어
이 개정 법률안은 20대 국회에서 단지 다른 법안들과 함께 통과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폐기된 것이지 법안 내용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방사청은 21대 국회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다시 개정 법률안을 제출할 것으로 판단되며, 여당이 전권을 가진 이번 국회에서는 절차만 밟으면 쉽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의 내용 중 하나인 명칭 변경은 전 세계적으로 절충교역을 산업협력으로 바꿔 나가고 있는 추세여서 바람직하다. 국제절충교역협회인 GOCA(Global Offset and Countertrade Association)도 최근 GICA(Global Industrial Cooperation Association)로 명칭을 공식 변경하면서 조건부 절충교역에서 상생적 산업협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절충교역 의무 적용을 조건부 적용으로 바꾼 조항이다. 기존 법규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 이상의 단위사업에 대하여는 절충교역을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단위사업에 대해서는 산업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라고 명시해 상황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방사청 절충교역 심의위원을 역임한 심상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장은 “우리가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외업체가 그만큼 가격을 내릴지는 의문”이라며 “원가를 검증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단지 상대의 선의에만 의존하게 돼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방산업체가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갈 기회를 만드는 좋은 수단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만일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무기 거래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반대급부를 정부가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국민이 응당 누려야할 권리이자 국익에 해당하는 사항이고, 잘만 활용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유용한 제도임에도 방사청이 추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게 만드는 법제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 비용 대비 효과분석 신뢰성 낮아…사전가치축적제도 활성화해야
절충교역 관련 연구과제를 다수 수행한 유형곤 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해외 업체의 제안내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용 대비 효과분석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설사 선행연구 수행기관이 분석 결과를 산출했더라도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오히려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는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검증이 어려운 비용 대비 효과분석은 사전가치축적제도가 자리를 잡으면 의미가 없어진다”면서 “사전가치축적제도 활성화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 해외업체가 이에 적극 나서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책적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절충교역이 종료된 이후 창출된 성과를 일정기간 추적 조사하는 활동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절충교역 분야에 근무했던 공무원 및 예비역 장교들도 “대다수 국가가 절충교역을 적용하고 적용비율도 점차 높이는 상황에서 우리만 적용하지 않을 경우 계약금액이 절감될지는 불분명하며, 해외업체의 이익만 높여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방위사업법에 반영된 절충교역 추진을 원칙으로 하는 조항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방위사업청 절충교역과는 경험을 가진 실무자들이 대부분 떠나서 산업육성 관점에서 절충교역 제도를 이끌어 가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전해진다. 현 시점에서 해당 부서가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산업협력 추진을 원칙으로 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담기도록 재검토되어 방산육성·방산수출·일자리창출에 진정으로 기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