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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이 지목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취약점, 정부의 ‘사랑부족’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이 안고 있는 새로운 취약점이 드러났다. 정부의 지원 부족이 그것이다. 미국과 중국 정부에 비해서 한국정부는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하지만 한국기업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해지는 구도이다.
기술력 부족으로 경쟁에서 뒤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정부의 ‘사랑 부족’이 원인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정부가 최소한 미중 정부에 상응하는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순리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5일 발표한 보고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 지형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 기업의 매출액 대비 정부 지원금 비중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3~6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매출 100만원 당 미국과 중국은 3만~6만원을 지원하는 데 비해 한국은 1만원 미만을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시장왜곡보고서’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2014∼2018년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 21곳 중 매출 대비 정부 지원금 비중이 높은 상위 5개 중 3개가 SMIC(6.6%), 화황(5%), 칭화유니그룹(4%) 등 중국기업이었다. 정부 보조금 지급이 주된 수단이다. 반도체 기업의 손에 현금을 쥐어주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다소 간접적이다.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비 지원을 정책 수단으로 삼는다. 그 비율이 마이크론 3.8%, 퀄컴3%, 인텔2.2% 등에 달한다. 한국기업은 1% 미만이다. 삼성전자 0.8%, SK하이닉스 0.5% 등에 불과하다.
이 같은 3국 정부의 정책적 차이는 고스란히 시장 점유율에 반영되고 있다는 게 전경련측의 분석이다. 지난 10년 간 세계 반도체 시장 평균 점유율은 미국 49%, 한국 18%, 일본 13%, 유럽 9%, 대만 6%, 중국 4% 등으로 집계됐다. 한국이 글로벌 2위인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인 D램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70%를 상회함에도 불구하고 전체 점유율이 20%를 넘기지 못하는 것은 인텔, 퀄컴 등과 같은 미국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로벌 점유율에서 미국과의 격차는 커지고 중국과의 격차는 줄어든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지난 10년간 45% 이상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중국은 2% 미만에서 지난 해 5%대로 급상승했다. 한국은 2010년 14%에서 2018년 24%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지난 해 19%로 감소했다.
한중간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기술격차는 0.6년에 그쳤다. 중국이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비해 한미간 시스템 부문 기술격차는 2013년 1.9년, 2015년 1.6년, 2017년 1.8년으로 답보상태이다.
전경련은 “중국기업의 부상은 반도체 굴기를 표방하면서 170조원을 지원하는 등 ' 등 중앙 정부 차원의 막대한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라면서 “중국의 보조금으로 반도체시장 지형이 변화한 가운데 최근 미중 반도체 패권전쟁이 심화되면서 반도체 굴기에 대응하는 미국의 지원규모도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TSMC 공장 유치에 이어 의회에서 반도체 연구를 포함해 첨단산업 지출을 1000억 달러(120조원) 이상 확대하는 「Endless Froniter Act」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설명이다.
반도체 매출 대비 정부 지원 비중은 OECD관점에서 보면, ‘시장왜곡 지수’에 해당된다. 전경련이 종합한 OECD자료 명칭 자체가 ‘시장왜곡 보고서’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국가주의’ 노선을 걷고 상황에서는 ‘기업사랑 지수’라고 보는 게 현실에 더 가깝다.
전경련 관계자는 “세계무역기구(WTO) 등 자유주의 경제를 주장하는 국제기구는 원칙적으로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전형적인 시장왜곡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한국정부도 미국처럼 R&D지원이나 세액공제 등과 같은 정책 수단을 강화해야 한국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겪고 있는 상대적 불이익을 줄 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공정한 시장(level playing field)내 경쟁을 중요시하는 미국조차도 최고 고부가가치산업인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 놀랍다”면서 “기업 홀로 선방해온 반도체 세계시장 입지 수성을 위해서 우리도 R&D, 세제혜택 지원 등의 정책적 뒷받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정부가 반도체 기업 지원 강화책을 당장 마련하지 않는다면, 미중 반도체 기업과 한국 반도체 기업의 격차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그 요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미중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OECD의 시장왜곡 논리는 이제 설자리가 없다. 코로나19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새로운 전쟁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안 이슈’를 빌미로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했고, 이에 맞서 시 주석은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 주석은 보조금을 확대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과감한 세액공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만 글로벌 시장 룰에 맞춰서 싸우라고 요구한다면 어리석은 선택이다.
둘째, 반도체 시장은 급성장할 수밖에 없고, 그 속도가 빠를수록 시장 서열이 뒤바뀔 확률은 높아진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전염병의 확산이 비대면산업을 빠르게 키워갈수록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업이 판세를 뒤흔들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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