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공익에 투자하는 ESG채권 발행에 발 벗고 나선 까닭은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최근 은행·카드사 등 금융권에서 공익 제고를 목적으로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채권을 적극 발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금융권은 코로나 여파로 금융회사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 기조에 따르는 한편,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특수목적 자금조달의 방편으로 ESG채권을 발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금융권은 향후에도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받고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저소득층 등에 사회적채권(Social Bond)·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을 통해 자금을 공급할 방침이다.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은행과 카드사 등 민간 금융회사는 코로나 지원을 목적으로 약 1조6600억원 규모의 ESG채권을 발행했다. 대부분이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취약계층에 금융지원을 해주는 사회적채권이다.
이외에도 ESG채권에는 친환경 사업·투자 자금용도로 쓰이는 녹색채권(Green Bond)과 사회적채권·녹색채권의 성격을 결합한 지속가능채권도 있다.
국내 ESG채권 시장은 지난해 기준 30조원 규모로 아직 성장단계에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2013년 정책금융기관으로는 최초로 5억달러(약 6000만원) 규모의 글로벌 녹색채권을 발행했고, 2018년 산업은행이 3000억원 규모의 원화 녹색채권을 처음 발행했다.
하지만 업계는 ESG채권 발행이 글로벌 트렌드가 된 만큼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관련 시장이 확대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신한·KB국민·산은, 1조4600억원…신한·KB국민카드, 2000억원 규모 ESG채권 발행
은행권은 금융업계에서 가장 활발히 ESG채권 발행을 선도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업계에서 가장 먼저 ESG채권을 도입했다”며, “업종 특성상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 이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지난 3월 금융업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피해 금융지원을 위한 외화 ESG채권 발행에 나섰다. 자금 용도를 ‘코로나19 피해 관련 기업 지원 및 확산 방지 활동 지원’으로 특정했다.
발행 규모는 5000만달러(약 600억원)이며 만기는 3년, 금리는 3개월 리보금리에 0.60%포인트(p)를 가산한 수준이다. 금번 ESG 채권 발행은 원화·외화 그린본드와 외화 지속가능발전목표 채권에 이어 네 번째다.
KB국민은행 역시 지난 4월 사회적 사업 등을 포함한 코로나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4000억원 규모(만기 1년)의 ESG채권을 발행했다. 발행금리는 1.15%로 은행채 금리보다 낮은 편이다. 발행 당시 AAA은행채 평균금리는 1.22% 수준이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코로나 금융지원 정책에 따라 ESG부문 중에서도 사회적 책임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 지원 등에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책금융기관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5월 1조원 규모의 사회적채권을 발행했다. 이중 8000억원(만기 2년)은 1.09%, 2000억원(만기 5년)은 1.39% 금리로 발행했다. 산업은행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고용안정에 기여하는 기업 등에 지원할 계획이다.
카드사들 역시 ESG채권을 속속 발행 중이다. 신한카드는 지난 5월 1000억원 규모의 사회적채권을 발행했다. 3년만기 500억원과 5년만기 500억원 등을 평균 1.51%대 금리로 결정됐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빅데이터 등 디지털 채널을 활용해 코로나 확진자·소상공인 등 취약고객층에게 결제대금 청구를 유예하는 등 조달자금을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B국민카드 역시 지난 9일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가맹점에 대한 금융지원을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사회적채권을 발행했다. 3년 1개월 만기 채권 600억원은 연 1.492%로, 4년 만기 400억원는 연 1.615%로 각각 금리가 결정됐다.
■ ESG채권, 비용↓·안정적인 특수목적 자금조달…금융회사 이미지 제고 효과
ESG채권은 자금조달의 비용절감·안정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 1분기 들어 증안펀드·채안펀드 등 은행권 대출지원 확대로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나고 있다”며, “ESG채권을 발행해 금융지원 목적으로 대출을 제공한다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SG채권을 발행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발행비용이 낮고, 투자자입장에서도 해당 채권이 안전자산이라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앞선 관계자는 “ESG채권은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기관의 수요가 높은 편”이라며, “투자기관이 많아질수록 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우량자산인 은행채 수요층에 ESG에 특화된 수요가 더해져 발행이 원활하다는 설명이다.
카드사 관계자 역시 “공익을 위한 특수목적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자금조달을 늘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ESG채권이 지정용도에 맞게 사용됐는지 등을 살피는 사후관리 절차도 내부적으로 마련돼 있다. ESG채권을 발행하면 사용처, 효과 등의 내용을 담은 투자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업계는 ESG채권 발행이 금융회사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요즘 금융부문에 공익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라며 “ESG채권 발행을 통해 회사의 사회공헌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금융회사의 ESG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ESG평가는 한국거래소 산하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매년 시행하며 기업지배구조·사회책임·환경경영 등 지속가능경영 수준을 점검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ESG채권 발행도 ESG활동 평가항목의 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에 좋은 기업평가를 받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크기 때문에 금융권의 자금공급에 대한 수요와 요구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ESG채권이 특수목적 자금조달 창구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는만큼 국내 ESG시장 역시 고도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ESG채권 발행규모도 클뿐 아니라 ESG 특화 투자기관도 많다”며,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ESG채권을 통한 자금조달이 이어지면서 국내 시장도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