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커버드본드 속속 발행…새 자금조달 창구로 자리매김?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최근 코로나 여파로 대출 취급액이 늘어나자, 시중은행들이 원화 커버드본드(covered bond) 발행을 재개하면서 은행자금조달의 주요 원천인 예수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커버드본드는 주로 부동산담보대출에서 비롯되는 현금흐름을 담보로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만기 5년 이상의 장기채권을 뜻한다.
금융업계에서는 원화 커버드본드를 시중은행들이 신예대율(총 자금잔고 대비 대출금잔고 비중)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정해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전체 예수금의 1% 한도까지만 원화 커버드본드 발행액을 예금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화 커버드본드가 새로운 장기자금 조달 창구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선 공급 측면에서의 발행 유인·편의성 제고, 예수금 인정 한도 확대 등이 뒷받침돼야 할 전망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4월 말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이 전년 동기대비 5.4% 증가했다고 12일 잠정 발표했다. 이는 작년 증가율(4.8%)과 비교했을 때도 늘어난 수치다. 이중에서도 특히 은행권은 9.2% 증가해 가계대출이 지속·증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신예대율 규제에 따르면, 은행 대출금이 예수금의 100%를 넘으면 안된다. 특히 이번 규제는 가계대출 가중치를 15% 올리고 기업대출 가중치를 15% 낮추기 때문에 가계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리는 예대율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은행들은 정부가 신예대율 규제 적용을 한시적으로 미뤘음에도 커버드본드 발행을 통해 선제적으로 예수금 마련에 나설 전망이다.
■ 우리은행 2000억원 발행, 하나·SC제일·신협 등 발행예정…KB국민, 외화 커버드본드 시장으로
국내 시중은행들이 원화 커버드본드를 본격적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초 가계부채 안정화의 방편으로 시중은행들에 커버드본드 활성화 유인책을 펼쳤다. 시중은행들이 장기 대출자금에 커버드본드를 조달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해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단기 변동금리에서 장기 고정금리로 전환시켜 가계부채 리스크를 경감시키고자 한 것이다.
즉 은행의 커버드본드 발행비용 분담금을 면제하고, 예대율 산정 시 원화 커버드본드 발행잔액의 최대 1%를 예수금으로 인정하도록 허용하는 등의 혜택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SC제일·신한·우리은행 등이 총 3조7200억원 규모의 원화 커버드본드를 발행했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총 7번 조달에 나서 1조6200억원의 커버드본드를 찍어냈다. SC제일은행은 총 8000억원, 우리은행 3000억원, 신한은행은 2000억원 규모를 발행했다.
올해의 경우 지난 12일 우리은행이 2000억원 규모의 5년물을 발행했다. 지난해 발행한 연 1.69%보다 낮은 1.44%로 발행됐는데도 발행 규모를 넘어서는 2500억~3000억원 사이의 수요가 몰렸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발행 당시 은행채 발행 운영물 중 커버드본드 5년물이 시장에서 희소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향후 경기 불확실성으로 시장금리가 하락이 예상되자 안전자산 수요 증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일 SC제일은행도 올해 원화 커버드본드를 5000억원 한도 내에서 발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협은행 역시 오는 6월 금융감독원에 원화 커버드본드 등록신청서를 제출하고 3000억원 내의 커버드본드 발행을 잠정계획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올해 최대 2조원 규모 원화 커버드본드 발행을 목표로 했지만 발행 시기를 조정할 방침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전년 대비 예수금이 늘어 자금잉여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당국의 금융 규제 유연화 방안 시행으로 발행 시기를 재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외화 커버드본드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은행도 있다. KB국민은행은 외화 커버드본드를 총 6억유로 상당(6688억원)의 한도 내에서 여러 번 발행할 수 있도록 커버드본드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국민은행의 경우 2009년 외화 커버드본드를 발행해본 경험이 있어 프로그램 등 관련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다”며 해외 커버드본드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외화 커버드본드 시장은 이미 외국은행들의 장기자금조달 수단으로 자리잡은만큼 안정적이며, 다양한 외국기관들이 참여해 자금조달 측면에서도 국내 시장보다 낫다.
또한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원화 커버드본드를 예대율 1% CAP 한도에 가깝게 발행했기 때문에 이를 추가 발행할 유인도 없다.
따라서 원화 커버드본드 발행은 우리·하나·신한은행 등 아직 예수금 1% 한도를 채우지 않은 은행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 커버드본드, 장기조달자금 창구 되려면 발행 유인·편의성 높여야
은행들이 원화 커버드본드를 발행하는 주된 이유는 장기조달자금 창구의 다변화보다 신예대율 관리를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커버드본드가 후순위채이기 때문에 선순위채에 비해 낮은 금리로 장기조달이 가능하다보니 금리 리스크 관리를 통해 예대율을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B씨 역시 “작년 은행들이 신예대율 적용을 앞두고 예신예대율 완화 수단으로 커버드본드를 발행했다”며, “원화 커버드본드가 새로운 장기자금조달 창구로 자리잡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원화의 금리 메리트가 없을뿐 아니라 발행잔액이 예수금 1% 이상 넘어가면 예수금으로 인정이 안 된다.
또한 커버드본드는 투자자에게 이중상환청구권(dual recourse) 제공하는 등 은행채 발행보다 조달비용이 높다. 이중상환청구권은 투자자가 발행기관(은행)에 대해 1차 청구권을 갖게 하며, 추가적으로 제공된 담보자산에 대한 우선적 청구권까지 보장해준다.
B씨는 “원화 커버드본드는 보통 5년물이 가장 많고 7~10년물은 만기가 길어 투자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발행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만기의 은행채에 비해 금리까지 낮은데 만기도 길어지면 투자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은행 입장에서는 커버드본드를 은행채보다 우선해 발행할 유인이 없다.
업계는 향후 커버드본드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공급 측면에서 발행 유인 및 편의성 등을 제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A씨는 “커버드본드 발행 확대를 위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계산시 커버드본드를 높은 등급(레벨1)으로 인정받게 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커버드본드 발행시 은행의 유동성 비율이 좋아지도록 한다면 발행이 좀더 원활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C씨 역시 “커버드본드의 경우 현행 일반 선순위채권과 비교했을 때 발행 절차 및 사후 관리가 복잡하다”며, “발행 제반 절차 축소 또는 정형화를 통해 지방 은행도 발행할 수 있는 행정적·제도적 요인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행잔액의 예수금 인정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D씨는 “커버드본드의 예수금 인정 한도를 기존 1%보다 확대하는 등 금융당국 차원에서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