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호칭 혁신했던 현대차와 SK그룹, ‘꼰대’ 사라졌나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지난해 주요 대기업들이 기존의 위계적인 기업문화에서 탈피, 수평적이고도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던, 직급 폐지 및 호칭 변화가 해당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기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그 기반에는 '수평적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 대기업 총수들의 판단이었다. 한마디로 '탈꼰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임원 직급의 단순화, 호칭, 직원 평가방식 등을 바꿔 '꼰대문화'에서 벗어나 '창의적 소통문화' 정립을 시도한 대표적 인물이다. 정 부회장과 최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부터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위해 오로지 업무가 아닌 자율복장, 호칭, 직급 등 회사에 전반적으로 깔린 기본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SK그룹과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공적인 자리에서도 편안한 복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 기업에서 직급 및 호칭 변화의 시행 초반에는 임직원들이 호칭을 섞어 쓰면서 일부 혼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약 1년이 지난 요즘에는 형식의 변화를 통해 수평적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직급 및 호칭의 변화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어플인 블라인드에는 "바뀐 호칭에 처음에는 어색해서 잘 사용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점점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그냥 통일해서 ~님 이런거 너무 편함"이라는 글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 현대차, 지난해 직급 단순화 및 호칭 변화 단행/관계자 "과거와 비교해 의사소통 증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현대차는 근무 복장 전면 자율화를 나섰다. 이후 보수적인 기업문화라는 인식이 강했던 현대차그룹은 본격적으로 '꼰대' 문화 탈피를 시도했다.
복장에서부터 변화를 줬다. 현대차는 지난해 3월부터 자율복장을 전면 도입했다. 이는 2017년 초 일부 부서에 넥타이를 매지 않는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을 허용한 지 2년 만에 한 발 더 나아간 조치였다.
현대차는 지난해 4월에는 임원 인사제도를 개편했다. 6단계(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였던 직급을 4단계(상무,전무,부사장,사장)으로 축소했다. 매년 말 하던 정기 임원인사도 없앴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고 우수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의도라고 당시 현대차는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9월 일반 직원 대상으로도 직급 및 호칭 변화를 단행했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일 중심의 자율적 문화를 조성하고, 자기주도 성장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추진하기 위함이다. 일반직 직급을 기존 직위와 연공중심의 6단계를 역할에 따라 4단계로 단순화했다. 이에 따라 5급·4급 사원은 G1, 대리는 G2, 과장은 G3, 차장과 부장은 G4로 통합됐다. 이에 따라 호칭은 G1·G2는 매니저, G3·G4는 책임매니저 단 2단계로 나뉜다.
현대차 관계자는 20일 본지와의 전화연결에서 "지난해부터 직급과 호칭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어색함이 많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회의를 할 때 회의 및 업무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옛날과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과거와 비교해 의사소통이 많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어플에서 익명의 현대차 직원은 "내부적으로는 호칭 바뀌었지만 외부 기업이랑 미팅을 할 때는 아직도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직급의 차이를 두지 않고 공통된 호칭을 부르는 것이 미팅 상대에게 어려운 상황을 야기한다는 설명이다.
■ SK, 최 회장 "임원부터 꼰대가 되지 말아야" 강조 / SK텔레콤 관계자 "90년대생 신입사원의 입사와 시너지 발휘해 수평적 문화 정착"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부터 "임원부터 꼰대가 되지 말고 희생해야 행복한 공동체가 된다"며 '탈꼰대' 문화를 선도했다. 탈꼰대 기업이 빠르게 변화는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을 길러준다는 것이 최 회장의 생각이다.
SK그룹은 유연함은 수평적 조직 문화에서 나온다는 판단 아래 국내 대기업 최초로 임원 직급 대신 직책 중심으로 제도를 바꿨다. 지난해 8월부터 부사장, 전무, 상무 등으로 구분되는 임원 직급을 없앴다. '바이스 프레지던트'로 통일했다. 호칭은 '전무' 대신 '본부장', '담당님' 등 직책으로 불린다.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월부터 선임·책임·수석으로 나뉘어 있던 기술사무직 전 직원의 호칭을 TL(Technical Leader, Talented Leader)로 통일했다. SK텔레콤은 2018년부터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조성을 위해 사내 호칭을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방식으로 통일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연결에서 "호칭의 변화가 확실히 수평적인 기업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을 시작했다. 이 관계자는 "사회 분위기 변화에 맞춰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이러한 호칭과 직급 파괴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90년대생의 신입사원들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문화 형성에 빠르게 속도가 붙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존 사원들 중에는 아직 어색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입사원들은 새로운 호칭과 직급이 당연하기 때문에 의사표현도 자유롭게 하면서 기업문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에서 SK직원으로 추정되는 회원 또한 "(호칭 변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수평적으로 되는듯"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직급 및 호칭 변화로 기대한 수평적 조직문화가 SK그룹 내에서 발휘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계열사 및 부서에 따라 아직은 과거 문화가 남아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SK하이닉스 직원은 블라인드 어플에서 "직급 호칭만 TL로 통일. 하지만 숨겨진 직급체계는 그대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