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ELS 총량규제' 검토에 증권사들 ‘백투백 헤지’ 들고 나온 까닭은
자기자본 100% 이하로 총발행액 규제 가능성 높아…업계, “개별 증권사 자체 헤지 비중 감안하지 않아 과도”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해외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마진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ELS 발행 총량규제를 검토 중인 가운데 증권사들과 당국이 어떤 합의점을 찾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금융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이 ELS 발행에 대한 리스크를 절반으로 줄이는 ‘백투백 헤지’ 방식 등을 건의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백투백 헤지는 ELS 기초자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외국 금융회사 등과 함께 분담하는 방안이다. 개별 증권사들은 직접투자 방식의 자체 헤지(위험 회피) 규모가 다른데 발행 총량을 자기자본 100%이하로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이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1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ELS 총량규제에 대해 논의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ELS 발행 총량규제는 증권사 관계자들과 상시 하는 간담회에서 나온 안건 중 하나”라며, “아직 의견수렴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유로스톡스(EU Stoxx) 50 지수·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등 해외지수가 급락하자, ELS 자체 헤지 비중이 높은 대형사를 중심으로 하루 수조원씩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자체 헤지는 발행 증권사가 직접 채권·예금·주식·장내외 파생상품 등을 매매하면서 리스크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이 추가 증거금으로 외화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어음(CP·Commercial Paper)·환매조건부채권(RP·repurchase agreement) 등을 대거 매도하자, 원화시장에 마비가 온 것은 물론 외환시장도 흔들렸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ELS 발행 총량을 규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다만 증권사 등의 의견수렴을 통해 업계의 상황을 반영한 현실적인 안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 ELS 발행액, 3월→5월 48.3%↓…금융당국, ELS 마진콜 사태 재발 막아야
마진콜 사태에 채권시장이 요동친 결과, 지난 3월 채권 거래대금은 745조5532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1월 605조3057억원보다 23.2%(140조2475억원)증가한 수치다.
4월 거래대금은 611조9785억원으로 채권안정화펀드 등 금융시장 안정화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시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증권사들 역시 ELS 발행액을 줄이기 시작했다. 지난 14일을 기준으로 한달 간의 전체 ELS 발행액은 총 2조11억원으로, 3월 한달 동안 발행됐던 3조8674억원보다 거의 절반 수준(48.3%)으로 떨어졌다.
특히 ELS 발행규모가 큰 대형사들 중심으로 발행액이 급감했다. 가장 큰 감소율을 보인 곳은 하나금융투자로 4조1715억원에서 1조2797억원으로 69.3% 떨어졌다. 신한금융투자 역시 4조1715억원에서 69% 감소한 1조3248억원을 기록했다.
중소형사 중에서 ELS 발행액이 큰 신영·대신증권 역시 조절에 나섰다. 신영증권은 1조4446억원에서 54.2% 감소한 6613억원을 발행했다. 대신증권은 그보다 더 발행을 줄이면서 ELS 발행 상위 10개사에서 제외됐다.
전체적으로 발행액이 줄긴 했지만 금융당국은 향후 ELS 마진콜 사태 재발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시장이 안정될 기미를 보이자 은행·증권사 등이 ELS 관련 상품 판매를 늘리려는 것도 한몫했다.
실제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코로나19 대응 기업 지원을 위한 금융권 간담회’에서 “경제 및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데도 고위험·고수익 금융상품 판매가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금융시장이 초기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고객을 고위험 상품으로 인도해선 곤란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 증권사, “규제 필요성 공감하지만 총량규제 과도해”…‘백투백 헤지’로 의견 모여
업계에서는 ELS 발행 규제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개별 증권사의 자체 헤지 비중을 감안하지 않고 총량을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업계 관계자 A씨는 “총량규제를 한다면 일괄적으로 ELS 발행액을 자기자본 100% 이하로 줄이는 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며, “상당수 대형사들은 이미 발행액이 자기자본 100%를 초과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초과분 판매를 중단한다면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ELS 상품 자체의 안정성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총량규제는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B씨는 “평균적으로 ELS 운용 자금 중 5% 정도를 선물·옵션 등과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채권투자에 레버리지를 10배 이상 두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증권사들이 ELS 영업손실을 경험하면서 상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운용 과정 역시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는 등 충분한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에도 특정 해외지수 기초 ELS 발행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관련 발행 총량을 규제한 바 있다. 2015년 홍콩 HSCEI가 급락하면서 HSCEI에 기초한 ELS의 헤지과정에서 증권사들이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관련 ELS를 발행한 모든 증권사들은 매월 발행액을 보고하고 초과분은 발행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받았다. 주로 ELS 발행 규모가 컸던 대형사들이 이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특정 종목 관련이 아니라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총량에 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당시 해외지수 중 가장 큰 낙폭을 보였던 유로스톡스50 지수 등을 기초로 하는 ELS만 규제하는 것은 무의미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ELS 자체 헤지를 자기자본의 일정 수준 이하(100~150%)로 유지하되, 자체 헤지 자산의 일부분을 달러화 채권으로 보유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B씨는 “달러화 채권을 보유하면 외화 추가 증거금을 사전에 비축해 둘 수 있겠지만 금융당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진 않다”고 설명했다. 발행총량을 자기자본 이하로 규제함으로써 리스크를 상당 수준 줄이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다른 대안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증권사 리스크를 50% 수준으로 줄이는 백투백 헤지로 의견이 모이고 있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즉 외국 금융회사 등과 장외파생거래를 맺어 기초자산 가격변동 리스크를 분담하는 안이다.
물론 리스크를 분담하는만큼 수익도 나누기 때문에 자체 헤지를 할 때보다 수익이 낮아진다. 통상적으로 ELS 수익은 발행량의 1~2% 정도로 산정되는데 백투백 헤지를 한다면 이를 나눠갖게 된다.
ELS가 증권사의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업계는 수익분배가 총량규제보다 낫다는 입장이다.
한편 금융당국의 규제안에 따라 증권사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총량규제가 도입되면 ELS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대형사보다 자체 헤지 비중이 낮은 중소형 증권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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