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방산 중소기업 우대, 극단적인 ‘파레토 법칙’ 깨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정부는 중소기업 보호 육성을 위해 무기체계 연구개발 단계에서 중소기업자 우선선정 품목을 지정하고, 제안서 평가 시에도 중소기업 참여에 대한 가점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우대 제도들이 효과를 발휘하면 방산 중소기업의 저변이 탄탄해지고 수출 실적도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좀 다른 것 같다.
선진국의 경우 보통 대기업은 성능 우위로, 중소기업은 가격 우위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중소기업이 가용한 품목까지 대기업이 모두 개발 및 생산할 수 있어 중소기업은 수출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그 결과 2018년 수출 실적을 보면, 대기업 및 중견기업이 98.4%인데 비해 중소기업은 고작 1.6%를 차지하고 있다. 극단적인 ‘파레토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우선선정 품목 지정, 혜택 받기 어렵고 완성품은 소외되는 듯
이로 인해 무기체계 연구개발의 우선선정 품목들을 유사 분야별로 묶은 ‘품류’에서 중소기업자 우선선정 품목 지정 비율은 평균 1∼5%에 불과하고, 그 품목조차 완성품이 아닌 부품·소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가격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완성품을 만들어도 우선선정 품목으로 지정되기 어려워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선선정 품목지정 관련 방위사업청 고시 제2019-7호 제6조에 의하면, 중소기업자 우선선정 품목은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또는 시제품 생산 가능성이 있을 때 지정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유사 제품·기술의 개발에 성공한 기술력을 갖추었거나, 연구개발 또는 시제품 생산에 필요한 주요기술, 시설, 인력 등을 갖춘 중소기업자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선선정 품류에 포함되어도 방사청 통합사업관리팀장이 제대로 식별하여 방산일자리과장에게 중소기업자 우선선정 품목으로 지정을 추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소기업이 뛰어난 기술력과 충분한 생산능력을 갖고 있어도 혜택을 받기 어렵다. 이 과정에 완성품은 주로 대기업의 영역으로 여겨져 중소기업은 독자적인 개발을 해도 소외되는 분위기다.
■ 중소기업 가점 부여, 일부 대기업 편법 운용해 우대 효과 별무
또한 방사청 예규 제615호인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 제25조의 4(가·감점 평가)에 따르면, 중소·중견기업 참여시 참여업체 수 1점, 참여규모 1점 등 최고 2점의 가점을 받을 수 있다. 이 중 참여업체 가점 산식은 중소기업을 훨씬 우대하고, 대기업이 주관하는 사업도 중소기업이 많이 참여하면 가점을 부여하고 있어 중소기업이 유리하다.
문제는 중소기업 공급대가(개발비)가 높을수록 가점을 많이 받게 되는 참여규모 가점 산식에서 발생한다. 이 산식에 의하면, 중소기업 공급대가의 합과 중견기업 공급대가의 합(중소기업 합계액의 25% 인정)을 더한 금액을 입찰가격으로 나누어 참여규모 가점이 구해지며, 최고 1점까지 받을 수 있다.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 [별표 11]에서는 40억 사업일 경우 계약당사자가 대기업이면 참여규모 가점이 0.1875이고, 중소기업이면 참여규모 가점이 1점이 되는 예시를 들고 있다. 즉 협력업체가 동일하게 구성될 경우 계약당사자에 따라 0.1875대 1로 가점을 받게 돼 중소기업이 매우 유리한 입장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참여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도 일부 대기업이 편법적으로 운용하고 있어 중소기업 보호 육성이라는 기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5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형 연구개발 사업의 경우,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함께 참여하면서 대기업의 개발비를 중소기업 개발비에 포함시켜 중소기업 가점을 모두 받는 사례가 일반화되고 있다.
■ 대기업 하청업체란 시각 달라져야…업체 간 선택과 집중 필요
이와 같이 현실은 중소기업 우대 제도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꼼수가 작용하고 이것이 용인되는 분위기여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건전한 경쟁을 근본적으로 망가트린다. 이런 문제가 제대로 보완돼야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완성품을 만들어낼 토양이 마련되며, 가격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 제품이 세계 방산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신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중소기업을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중소기업 우대 취지를 제대로 살려 우선선정 품목의 사업 참여를 의무화하고 제안서 평가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중견업체 임원은 “민간기술의 유입과 경쟁을 통해 방위산업 발전을 도모하려는 취지에서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폐지됐는데, 오히려 사업 영역이 사라져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모든 것에 참여하는 기회만 제공했다”면서 “업체 간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아 시장만 혼란스러워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육성 분야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기술 역량과 개발 인프라 등을 평가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우수 중소기업이면 국방기술혁신기업(가칭)으로 지정하고, 제안서 평가에서도 단순히 중소기업 참여 숫자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혁신기업의 참여 비중에 따라 가점을 차등 부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