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사외이사에 여성이 거의 없는 까닭은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주주총회를 통해 교수나 금융업계 출신의 ‘전문가’를 대거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권·법조계 출신의 관료를 선임했던 것과는 달리 불안한 금융시장에서 사업 다변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 판단을 지적·조언하는 본래의 역할이 강조된 것이다.
하지만 전체 임원들 가운데 여성은 여전히 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여성 사외이사의 분야도 리테일에 집중된 터라 여성들에게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19일 주주총회를 열고 호바트 리 엡스타인 전 KTB투자증권 대표와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재선임했다.
한국투자증권은 김태원 구글코리아 상무, 윤대희 연세대 경영대 교수, 김정기 전 KEB하나은행 부행장 등 정영록 사외이사(전 주중 한국대사관 경제공사)를 제외하곤 모두 업계 출신 인사와 금융전문가를 선임했다.
삼성증권·NH투자증권·메리츠증권 등도 금융과 관련된 교수나 금융업계 출신의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과거 증권사들은 금융감독원 관계자, 전직 고위 관료, 법조계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금융당국 재직경험을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서는 내부감사보다는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에 대응하기 위한 선임이라고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올해 1월 29일, 상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사외이사의 임기가 6년을 초과할 수 없게 됐다. 연임을 거듭하며 장기간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며 경영진과의 관계를 중요 시 하던 관습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증권사들은 자산관리(WM), 해외 사업, 투자은행(IB)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사외이사의 역량이 중요해졌다. 과거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던 사외이사 제도가 업무 영역을 벗어나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 판단을 지적·조언하는 본래의 역할이 강조된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금융시장이 불안했고, 상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사외이사 선임이 중요한 이슈가 됐다”며 “과거 고위직 관료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던 것과 달리, 사업 다각화로 인해 다양한 전문가를 선임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 여전한 여성의 ‘유리천장’, 오는 8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개선 요구돼
지난달 증권사들이 사외이사를 대거 선임한 가운데, 여성 사외이사는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달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여성인 이젬마 경희대 국제학과 부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이 교수는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금융위원회 신성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재무·회계 전문가로, 내부에서 이 교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 이외에 현재 여성 사외이사가 있는 증권사는 KB증권·하나금융투자·키움증권·IBK투자증권·SK증권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 1명에 그치거나 아예 여성 사외이사가 없는 증권사도 많다.
오는 8월 5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자산총계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의 경우,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하지 아니하도록’ 명시돼 있다. 2년간의 유예기간을 감안해도 2022년 7월까지는 여성 이사를 한 명이라도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자산 규모가 큰 대기업에만 적용되며 자산총계가 2조원 이상이어도 상장하지 않은 증권사는 법에 해당되지 않는 등 법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성 이사가 확대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여성 인력 풀이 제한돼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며 “증권업종 특성상 리스크를 떠안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한데, 인사권을 지닌 고위층에서 이러한 특성과 여성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