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할 때 위기 생각하고(居安思危). 대비태세 되어 있으면 근심 사라진다(有備則無患)
선승구전(先勝求戰),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 전쟁을 해야
중대장 시절에 연대 보급창고를 수시로 챙겨 중대원에게 우선 보급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왕 도공(悼公)에게는 사마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사마위강은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십시오(居安思危). 그러면 대비를 하게 되며(思則有備), 대비태세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有備則無患)"라고 왕인 도공에게 건의하여 강한 나라로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서경(書經)’과 ‘좌씨전(左氏傳)’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명언으로 회자된다.
또한 손자병법 ‘군형(軍形)’편의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은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에 전쟁을 한다”는 의미이다.
군대에서는 모든 것이 경쟁이다. 항상 승패나 성공 및 실패가 붙어 다닌다. 특히 쌍방 훈련에서는 대부분 판결이 난다. 따라서 승리하기 위해 각 부대는 자체 훈련도 강화하고 장비 손질 정비에도 최선을 다하여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당시 필자의 연대장은 전쟁시를 대비하여 교육훈련 중에 행군과 태권도를 매우 강조했다. 연대장 지침에 의해 매주 50km정도씩 주야행군을 계속했다.
그 결과 우리 중대 뿐만 아니라 전 연대원들의 행군 능력은 어느 타부대와 비교해도 월등히 우수했다. 그러나 강한 행군능력을 보유하는 대신 중대행정보급관의 고민과 애로는 반대로 늘어만 갔다.
많은 행군으로 병사들의 전투화(군화)가 빨리 닳아 구멍난 신발을 신고 행군하니 물도 들어오고 또 군화못도 튀어 나와 중대원들의 발은 상처투성이었다. 그래서 각 중대는 군화 정비공을 임명하여 군화의 바닥도 교체하고 헤져 구멍난 곳을 꿰매어 다시 신을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태권도 교육을 강조함에 따라 전 중대원을 유단자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하려면 보급되는 태권도복과 급수에 따른 색깔별의 띠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중대행정보급관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헌데 필자에게는 소위로 임관하여 한 개 연대에서 5년에 걸쳐 오랫동안 근무했다는 잇점이 있었다. 연대에 근무하는 부사관 및 장교들을 거의 알고 있었다. 특히 연대 군수분야를 담당한 간부들과는 각별히 지낸 탓에 연대 보급창고를 수시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원래 정상적인 보급절차는 대대에서 각 중대를 종합하여 연대에 보고하면 연대에서 각 대대를 고려하여 분배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당시에 열악한 환경의 중대원들을 위해서는 필자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안면을 이용하여 절차 준수를 잠깐 뒤로하고 연대와 직접 상대하였다. 연대창고에 남아있거나 새롭게 보급되는 태권도복이나 군화를 우리 중대가 우선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보급품 수불에 따른 문서 처리는 나중에 정리하였다.
그리고 중대원들의 사격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사격용 표적(E, F)이 필요했다. 사격연습을 많이 하면 표적에 총탄 구멍이 많아져 다시 종이를 잘라 표적구멍을 메우고 사격을 할 정도로 표적이 부족했다. 이 또한 사단에 오랫동안 근무했다는 잇점을 이용했다.
연대 교보재 창고에 표적이 없으면 대대에 5분의 4톤차를 신청하여 사단본부로 갔다. 마침 사단 교육장교가 잘 알고 있는 후배라 사단 교보재 창고에 들려 사격용 표적(E, F)과 목재, 시멘트 등을 확보하여 대대에 일부 제공하고 중대에서 활용했다.
그래도 중대원들에게 넉넉한 보급품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했다. 마침 육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생도들이 사용하고 남은 태권도복도 얻어서 분배도 했다. 고교 축구부에 연락해서 선수들이 사용하다 낡아서 바꿔 신은 축구화도 협조하여 가져와 나눠주니 대원들은 훨훨 날으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에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구해서 중대원들에게 제공한 정성은 곧 상급부대 검열, 측정 및 평가에서 진가가 발휘되었다.
사단 전투지휘검열시 사격 측정은 중대가 대표선수가 되었고, 각종 행군에서도 보수 정비한 군화를 신고 자신감 있게 임할 수 있었다. 태권도 유단자는 제일 많았고, 체육대회에서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중대원들이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다.
평시에 모든 것을 앉아서 기다리면 늦어진다. 쫓아다니면서 중대원들의 보급품과 교보재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확보했고, 그것이 안될 때는 군화 정비소 등을 만들어 보수 및 정비를 했다. 즉 ‘유비무환(有備無患)’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하여 훈련하면서 대비하고 있으니 각종 검열, 평가 및 측정에서 나가 싸우라고 했다. 손자가 강조한 ‘선승구전(先勝求戰)’을 실천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