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방추위, 고객 대표자 참석 못하고 대리인이 주인처럼 권한 행세
군이 필요한 무기체계의 효율적 도입 저해할 소지 있어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방위사업법 제9조에는 방위사업의 추진을 위한 주요정책과 재원의 운용 등을 심의·조정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 소속하에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를 두고 장관이 위원장을, 방위사업청장(이하 방사청장)이 부위원장을 맡도록 규정돼 있다.
합참 및 각 군을 대표하는 방추위 위원은 장성급 장교 중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라고 명시돼 현재는 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육·해·공군 참모차장이 위원으로 편성돼 있다. 즉 무기체계를 구매하는 고객의 대표자인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은 방추위에서 제외된 상태여서 국방장관이 주재하는 타 회의체와 비교시 구성과 성격이 모호하다.
육·해·공군 참모총장은 장병들의 피복과 급식 같은 사소한 것은 직접 결정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자신들이 사용할 무기체계를 구매하는 의사결정 과정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고객인 그들을 대신하여 대리인 역할을 담당하는 방사청장이 오히려 구매를 결정하는 주인 행세를 하는 모양새다. 왜 그럴까?
이와 같은 형태로 방추위 위원이 구성된 이유는 방위사업법의 입법 과정에 있다. 당시 방추위를 구성하면서 방추위에 군 수뇌부가 참여하는 안이 제기되자, 방추위가 방사청을 갖고 흔들려고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결국 논의 과정에서 방사청장이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기구를 만들었고, 위원장만 상징적으로 장관을 집어넣은 것이란 얘기다.
방위사업 분야에 정통한 한 예비역 장성은 “방위사업법에 차관급인 방사청장을 방추위 부위원장으로 명시하니 군의 성격상 상급자인 합참의장과 참모총장들이 방추위 위원에 포함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서 “그래서 모두 빠지고 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각 군 참모차장이 위원으로 들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방추위는 심의·조정 기관, 방사청이 결정 권한과 책임 갖고 있어
실권 가진 방사청 팀장과 본부장은 책임 회피 분위기 만연
방추위가 의결 기관이 아니고 심의·조정 기관인 것도 큰 문제다. 현행 방위사업법에 따르면, 방추위에서 원만히 합의가 이루어졌더라도 최종 결정은 방사청장의 권한이다. 결국 방사청장이 동의하지 않으면 방추위의 심의·조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는 방추위 부위원장인 방사청장이 심의·조정을 주도하고 있어 지금까지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방사청장 또한 권한은 갖고 있지만 마음대로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사업 규모별로 팀장과 본부장 등에게 결정권이 위임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팀장 및 본부장 차원에서 거의 모든 결정권이 행사되며, 이에 대한 책임도 뒤따른다. 결국 이들이 언제든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적극적인 사업 추진보다는 책임지지 않는데 주력하게 된다.
이와 같이 대리인 역할을 하는 방사청은 주인 행세를 하면서도 군이 필요한 무기체계를 적기에 획득하여 제공할 의무에는 소홀하다. 참모총장들은 전력화가 시급한데 권한이 없어 방사청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들은 군과 원활한 소통이 부족하고 필요한 결정을 제 때 하지 않아 사업이 지연되는 등 문제가 발생함에도 책임만 피하려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이 주인일 경우 어떻게 할까? 만일 각 군이 진짜 주인이란 인식이 있어서 자기가 필요한 제품을 요구하고 돈을 지불한다면 대리인 역할을 하는 방사청에게 지금처럼 전권을 주고 그들이 어떻게 하든지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권리를 주장하면서 요구한 제품이 원하는 시기에 오게 만들 것인가?
군 수뇌부가 결정하고 책임도 감당하는 의사결정 시스템 도입해야
이와 관련, 지난해 4월 전력분야 정책과 다양한 방위사업 현안에 대해 관련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리적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한 ‘방위사업협의회’가 출범했다. 국방부 차관과 방사청장이 공동 주관하는 이 회의체는 위원 구성이 방추위와 거의 같은데, 법적 조직체가 아니어서 역할은 아직 불분명한 상태이다.
왕정홍 청장은 “협의회가 국방기관 간 협업을 향상시켜 무기체계의 적기 전력화와 방위산업 발전에 역할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 방산 전문가는 “계획과 예산을 다루는 국방부와 집행을 담당하는 방사청 그리고 소요를 결정하는 합참이 함께 협의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면서 “합참이 보다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다수 방산 전문가들은 “군 수뇌부가 직접 결정하고 책임도 감당해야 하는데, 현재는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해 책임도 없다”고 말했다. 높은 사람은 책임질 일도 없이 지위를 누리기만 하면 되는 구조다. 이 분야에 정통한 복수의 전문가들은 “방추위가 군 수뇌부가 참여하는 국방부 차원의 최고 의결기관으로 거듭나야 방위사업의 책임성이 강화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