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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기업은행장의 딜레마

② 정부의 '직무급제' 드라이브와 노조 반대 절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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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림
입력 : 2020.02.02 07:16 ㅣ 수정 : 2020.02.02 07:16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딜레마]② '직무급제' 도입

▲ 지난 29일 오전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앞줄 가운데)이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에서 열린 제26대 은행장 취임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낙하산 인사’ 주장을 펴던 노조와 극적인 합의를 하면서 지난달 29일 취임식을 갖고 업무에 돌입했으나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희망퇴직’ 조기 해결과 ‘직무급제 도입’ 반대라는 노조 요구사항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희망퇴직은 하고 직무급제는 하지 말자는 게 핵심이다. 이는 기업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은행권 전체가 안고 있는 과제이다. <편집자 주>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27일 만에 첫 출근

 

정부의 '직무급제' 도입 드라이브 조짐, 기업은행 노조 사전차단 시도

 

직무별로 월급 차등화하면 비용 절감, 청년채용 확대 기대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IBK기업은행 노조가 윤종원 행장의 출근반대 투쟁을 펼치면서까지 왜 직무급제 도입을 골자로 한 임금체계 개편의 포기를 요구조건으로 내걸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제시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현행 호봉제가 고령자의 임금부담을 높임으로써 청년층 채용의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한 마디로 입사연도가 같아도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과 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 간에 임금차이를 두자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공공기관도 노조의 반대로 인해 도입에 성공한 곳이 없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의 요구는 이 같은 흐름을 사전차단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현재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직원들의 임금 체제에 있어서 여전히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는 상태이다. 일부분에 한해 목표인센티브제나 집단성과급제가 적용되고 있다. 일부 금융권에서 임원직에 한해 직무급제를 시행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성과에 따른 성과연봉제가 시행되고 있을 뿐이었다.

 

언뜻 보기엔 성과연봉제와 직무급제는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 성과연봉제는 성격에 따라 적극적 성과연봉제와 소극적 성과연봉제로 나뉜다. 우리나라 시중은행에서 적용 중인 방식은 소극적 성과연봉제로, 기본급에는 매년 정해진 인상률이 공통 적용되며 성과급에 한해서는 직무 및 업무성과별로 차등 지급된다.

 

현재 언급되고 있는 직무급제란 업무의 성격·난이도·책임 강도 등에 따라 급여를 달리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는 성과뿐만 아니라 직무 자체의 중요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직무급제 하에서는 신입사원이라도 높은 직무를 맡으면 근속 연수나 직급에 관계없이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즉, 낮은 직무를 맡으면 개인의 역량 승진이나 연봉 인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중은행 평균 연봉 1억원 육박

'고비용 구조' 해소 위한 국민은행 직무급제 도입 시도는 불발


금융산업노조, "직무급제는 현대판 신분제" 비판

금융업에서는 직무급제 도입에 대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경영계는 호봉제를 두고 저성장·고령화·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인건비 부담과 청년일자리 부족의 악순환을 유지시키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직무급제의 도입을 통해 노동의 생산성·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사업보고서 기준 6개의 시중은행의 1인당 급여액의 평균은 1억원에 육박한다. 높은 인건비는 기업 운영에 있어서 비효율성을 초래하는데 실제로 4대 은행의 항아리형 인력 구조는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꼽혀왔다.

 

금융업계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기본급은 직무급제를 적용하고,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유지하는 방식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에도 국민은행 등 인건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큰 시중은행들은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직무급제를 검토했었으나, 노사 간의 의견차가 커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못했다.

 

▲ 지난1월 3일 오전 노동조합에 의해 출근을 저지당한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의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노동계에서는 대부분 직무급제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직무급제를 시행할 시 직무가치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산정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직무 가치의 산정은 노사 간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직무급제 도입에 반발하고 있다. 또한, 직무급제의 도입으로 임금 상실분이 상대적으로 커질 대기업 및 공공기관 노조는 반대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의 성명문에 따르면 "기만적 직무급제 도입 시도 중단하고 진짜 문제를 해결하라"고 밝히며 직무급제를 '현대판 신분제'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허 위원장은 "단가 후려치기, 물량 밀어내기 등 이윤을 착취하고 손해를 떠넘기는 대기업-하청업체 산업환경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환상일 뿐"이라고 말하며 직무급제 도입 반대 의견을 확고히 밝혔다.

 

경사노위, 2월 18일 임금체계 개편안 등 제시 예상

 

공공기관과 시중은행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될 듯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금융산업위원회는 다음 달 18일 활동을 마무리하고 주요 내용과 관련된 합의문과 권고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산업위는 △임금체계 개편 △금융권 일자리 확대 △노동 환경 개선 등에 대해 논의를 해왔다. 이 중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어, 합의문에 '임금체계 개편' 문구가 담길지 여부에 대해 노사가 모두 주목하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가 윤 행장 출근조건으로 직무급제 도입 포기를 내건 것도 이러한 흐름을 의식한 태도로 보인다. 경사노위가 임금체계 개편을 화두로 던질 경우에도 직무급제는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제시한 직무급제의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금융 및 공공기관 등 8개 업종 기업에 한해 임금체계 개편 도입 시 필요한 컨설팅 및 직무평가 도구와 같은 인프라 개발 비용을 세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임금체계에 대해 강제로 할 수 없고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끝을 흐리고 있다. 직무급제는 시중은행 노사 간의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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