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삼성전자 이재용 파기환송심 방청기, 재판부 ‘치료적 준법감시제도’ 양형 반영 선언
[현장]삼성전자 이재용 파기환송심 방청기
재판부, 미국식 '치료적 준법감시제도'를 이 부회장 양형에 반영키로
[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의 파기환송심 네 번째 공판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다.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김세종 송영승 부장판사)는 이날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운영이 실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완조치를 취하고, 이를 토대로 미국식 '치료적 준법감시제도'를 이 부회장에 대한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특검 측은 삼성의 준법감시위를 양형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당초 입장을 번복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기자는 재판 방청권을 받기 위해 이날 아침 6시 30분부터 서울고법 서관 2층 4번 법정출입구 현관 앞에 줄을 섰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방청 대기열에는 많은 이들의 소지품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자산국외도피혐의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은 약 1시간 40여 분만에 마무리됐다. 재판은 증인채택, 증거신청 등과 관련해 박영수특검팀과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 측이 번갈아 가면서 입장을 표명하며 진행됐다.
공판시작 전, 정면을 응시하던 이 부회장은 특검이 법정에 들어서자 특검 측과 목례를 나눴다. 오후 2시 5분 재판장이 법정에 들어서자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재판장을 향해 목례하고, 이 부회장도 재판장을 향해 고개 숙여 목례했다. 동판에는 이 부회장 외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도 함께 출석했다.
손경식 CJ 회장 증인 신청 철회
변호인 측 김화진 서을대 교수, 코닝사의 웬델 웍스 회장 증인 철회
재판부, 특검 측 전성인 홍익대 교수 및 김용철 변호사 등 증인채택 보류
이날 공판은 증인채택, 증거신청 등 관련해 양측 의견 청취로 진행됐다. 지난 공판 때 양측이 증인으로 신청한 손경식 CJ회장은 재판 출석 예정이었으나, 일본 출장으로 불출석 사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경제계 원로로서 대통령과 기업의 관계를 증언하기에 최적이라 생각했지만, 사유서를 보면 CJ그룹의 재정 지원 등에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는 것 같다”라며 “증인 신청을 철회한다”라고 밝혔다. 대신 변호인 측은 손 회장 관련 증언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기로 했다.
특검 측은 “증인 출석 기일에 못 나온다고 하니 재소환해 조사하겠다”라며 “재판장님께서 다시 한번 소환해주신다면 증언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양형 증인으로 처음 신청된 점 등을 감안해 증인 손경식에 대한 증인채택 결정은 취소한다”라고 밝혔다.
변호인 측은 손 회장 신청 철회와 더불어 김화진 서울대 법대 교수, 미국 코닝사의 웬델 웍스 회장에 대한 증인 신청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특검은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용철 변호사를 증인으로 채택 요구를 고수했다.
변호인 측은 김 교수와 웬델 웍스 증인 신청 철회 이유에 대해 “특검은 김화진 교수의 반대 증인으로 전성인 교수를 신청했다. 그런데 김화진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 이론에 대한 저서도 있고, 국내 학술지에 여러 편의 저널을 쓴 전문가이다. 전문가가 학문적으로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승계 작업을 어떻게 보는지를 보기 위해 증인으로 신청한 것이다. 반면, 전성인 교수는 학술지에 지배구조 관련 글을 쓰거나, 저널에 글을 써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삼성 때리기’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유명해졌다”라면서 “오염된 증인이 전문가 증인의 반대 격으로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웬델 웍스 회장 관련해 변호인 측은 “이재용 피고인의 경영인으로서의 능력, 성품과 행동에 대해 직접 접촉해 양형 증인으로 말해줄 자격이 있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삼성을 떠난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어 “김용철 변호사는 사업 활동 면에서 이재용 피고인과 접점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이 사건의 접점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특검은 “승계 작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며 “변호인 측은 ‘김화진 교수는 공정한 전문가이고, 전성인 교수는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데 특검에서는 그 반대이다. 양쪽 교수를 전문가 증인으로 심문하자는 것은, 승계 작업을 바라보는 긍정적, 부정적 시각을 재판부가 다 들어본 뒤에 이를 판단하는 것이 충실한 양형 심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증인을 심문하면 김화진, 전성인 교수를 둘 다 하는 게 맞다”라며 “두 사람 증인채택 여부는 보류하겠다”라고 밝혔다.
정준영 부장판사, “삼바 분식회계, 증거인멸 등은 증거채택 안 해”
특검, “양형 심문이 핵심인 이 사건에서 재판부의 결정 납득할 수 없어”
이날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의 기록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특검이 신청한 증거 중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증거인멸 등 다른 사건의 증거들은 채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르면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개별 현안을 특정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각각의 현안과 대가관계를 입증할 필요가 없으므로 추가 증거조사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했다. 이어 “승계작업의 일환인 구체적 현안을 각각 따지는 재판이 아니므로 다른 사건의 판결문을 참조할 수는 있으나, 그 재판의 증거까지 채택해 심리할 필요는 없다”라고 밝혔다.
이에 특검은 즉각 “충실한 양형 심문이 핵심인 이 사건에서 재판부의 결정은 납득 할 수 없다”면서 “기각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취지에서 이의 신청을 제기한다”고 했다.
이어 특검은 “유무죄가 사실상 확정된 상태에서 양형 심리만 진행되는데 이의 신청마저 기각되면 상고 이후로 판단, 다툴 수도 없다”라면서 “이 재판이 불공평하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서면으로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 여부를 고지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서 특검은 파기환송심에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사건 등의 일부 기록을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했다.
공판 절차 지연과 관련해 특검은 “2017년 2월 28일 특검이 수사를 시작해 다음달이면 이 사건의 수사가 만 3년이 된다”면서 “이 중 1년 6개월은 대법원에 있었다.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서 전원합의체에서 여러 차례 전원합의일을 열었다. 따라서 재판은 1년 6개월이 채 되지 않았고, 본격적인 양형 심리는 오늘(17일)이 처음”이라면서 “공판 절차가 지연된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변호인 측, 삼성 준법위 20분간 소개
이날 변호인 측은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위)를 약 20분간 소개했다.
변호인 측은 “준법위는 다섯 가지 주요한 권한을 갖게 된다”면서 “그 주요 권한에는 대외후원금 모니터링, 일감 몰아주기, 사회 편취 등 내부거래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기타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 권한을 부여해 기업 공개 등 위원회가 회사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검토 결과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이에 대한 의견도 제시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회사 모든 임직원은 최고경영진과 관련해 신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고자 비밀보호를 했으며, 마지막으로 위원회는 자료 제출 요구뿐 아니라, 관련 시정 조치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특검 “준법위 하나로 양형 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에 대해 특검은 “대통령과 최고 재벌총수 간의 사건에 준법위가 어떤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삼성과 거대 조직이 없는 미국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극히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오너의 변심으로 언제든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지난해 10월 25일, 첫 공판기일에서 재벌체제 준법감시제도는 재판 진행과 결과에 무관하다고 재판부는 말했다. 그러나 삼성 준법위가 마련되고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현 시점에서 이미 양형 심리로 진행되고 있다”며 “제대로 양형심리를 하자는 것이 특검의 입장이다”라고 했다.
이어 “이 사건의 죄명 4개 중 3개는 뇌물공여와 업무상 횡령 등인데, 준법위가 여기에 어느 양형 사유에 해당하는지 보고 다른 사유도 충실히 심리해야 한다”면서 “재벌혁신 없는 준법위는 봐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항간에는 준법위가 재판부의 언급에 따른 것으로 이재용 피고인의 명분 쌓기로 보여진다”며 “양형 심리든 ‘회복적 사회 일환’이든 공정하고 투명하게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검의 의견이 끝난 뒤 재판부는 5분 간 휴정, 오후 3시 23분에 속개됐다. 휴정 동안 이 부회장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재판부, “‘치료적 준법감시제도’ 미국 사례 530개” 거론
삼성 준법감시위, 양형 반영 위한 객관성 근거로 제시한 듯
재판 속개 뒤 재판부는 “기업 범죄 재판에서 ‘치료적 준법감시제도’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라며 “미국 연방법원은 2002~2016년 530개 기업에 대해 ‘치료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을 명령했다”라고 밝혔다.
치료적 사법은 법원이 개별 사건의 유·무죄 판단을 내리고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결 자체가 문제에 대한 치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무게를 둔 판결이다. 재판부가 이날 공판에서 ‘치료적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함으로써 향후 양형에 주요한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 연방법원이 최근 14년 동안 530개 판례를 통해 치료적 사법판결을 시행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삼성 준법감시위 설치 및 운영을 이 부회장의 양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조치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재판부, 치료적 사법위해 삼성준법감시위의 ‘실효적’ 운영 위한 추가 제안
강원일 전 헌법재판관 등 3명의 전문심리위원이 ‘양형’ 칼자루 쥐어?
재판부는 이 같은 치료적 사법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준법감시위가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그리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추가 요구도 내놓았다.
재판부는 “준법위는 실효적으로 운영되어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라며 “피고인과 삼성그룹은 오늘 준법위를 포함한 실효적 준법위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제 3자 전문가를 전문심리 위원회로 지정해 삼성 준법위를 포함한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점검한다”라고도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특검과 이재용 변호인 측은 강일원(61) 전 헌법재판관을 심리 위원으로 고려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이번 달 말까지 알려달라고 했다. 이때 방청석에 있던 한 남성이 재판장을 향해 손을 들면서 “재판장님 의견이 있습니다”라고 외쳤지만, 재판 관리인으로부터 나중에 말씀하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손을 내렸다.
정준영 재판장은 강 전 재판관 외에 특검에서 추천한 1명, 삼성 측에서 추천한 1명 등 총 3명으로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해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를 평가할 방침이다. 이 평가를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이 부회장의 양형에 강 전 재판관 등 3명의 전문심리위원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는 분석도 흘러나왔다.
특검 “재벌혁신 없는 준법위, 보여주기 위한 명분에 불과”
재판부의 결정에 특검은 “심리위원회 하나만으로 준법위 감시제도를 논의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준법위는 봐주기 명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때 방청석에 있던 또 다른 남성이 “맞습니다”라고 특검 입장에 동의하는 듯한 말을 했다.
재판부의 심리 위원회 구성에 변호인 측은 별다른 의견이 없다고 했다.
특검 “삼성 준법위를 양형 사유로 보는 이유 설명해달라”
특검은 “재판장님은 삼성 준법위를 양형 사유로 보고 있다. 그것을 분명히 해달라”고 했다. 이어 “첫 공판에서는 준법위가 재판 진행과 결과에 관계없다고 했는데 그 부분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별 현안이 양형 사유가 아니라고 하면서 준법위 도입은 양형 사유다. 도대체 양형 대상 어디에 준법위가 해당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면서 “재벌체제 혁신 없는 준법위를 특검은 반대한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특검은 “전문 심리위원 도입에도 반대하고, 이 부분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라고 밝혔다. 이때 방청석에서 “맞습니다”라는 말이 재차 나왔다.
재판부는 “공판 준비기일로 내달 14일로 정한다”면서 “이날 전문 심리위원회 구성 마무리 등과 관련해 쌍방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공판 준비기일은 피고인이 출석 의무를 갖지 않아, 이 부회장이 출석할지 주목된다. 이날 재판은 주요 증인 없이 1시간 40여 분만에 마무리됐으며, 재판 직후 일부 시민들이 법원을 나서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달려들면서 경호원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편,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사법부의 이재용 실형 면제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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