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노란 불', LNG선 독과점과 일본의 발목잡기가 변수
6개국 가운데 승인 받은 곳은 오로지 카자흐스탄 뿐
EU등 LNG선 독과점 우려하며 '심층 심사' 돌입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에 대한 관련국의 승인 과정에 '노란 불'이 켜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싱가포르 등 주요 관련국들이 자국 경쟁력 약화, LNG독점 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신중 모드'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양사 합병을 위해서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해 총 6개국(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EU, 카자흐스탄)의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들 6개국 가운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합병은 무산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7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다. 7월 중국, 9월 싱가포르에 각각 기업결합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일본과 9월부터 사전협의를, 유럽연합(EU)과 4월부터 별도의 심사과정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는 카자흐스탄에서만 지난 10월 첫 합병 승인을 받은 상태다.
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경쟁·소비자위원회(CCCS)가 최근 예비 심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약 4개월 뒤 구체적인 심사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일본과는 사전협의 진행 중에 있어 아직 기업결합심사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예비 협의를 거친 뒤 본심사(1차 일반. 2차 심층)에 들어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맞춰 현대중공업은 EU와 지난 4월부터 진행한 예비협의를 거쳐 지난달 12일부터 본심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집행위가 17일(현지시간) 양사의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2차 심층심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1차 일반심사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다. 그로 인해 내년 5월 7일까지 심층심사를 진행하며 양사 합병이 효과적인 경쟁을 상당히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지 고려한다.
국가별로 상이한 기업결합 심사
최대 관건은 세계 시장점유율 63%에 달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독과점 우려
한국과 EU는 심사 기준으로 LNG 독과점 우려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LNG 운반선 점유율이 관건이다. 두 기업의 세계 시장점유율을 합산하면 63%에 달한다. 두 회사 전체 선종을 따진 시장 점유율 21%보다 크게 앞선다. 특히 내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로 LNG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시장에서 LNG 시장점유율 63%는 독과점 우려를 발생시키기에 충분한 수치다.
앞서 한국 공정위는 지난 2016년 SKT가 CJ헬로비전 인수를 시도했을 당시 관련시장 독과점이 우려된다며 기업결합을 불허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LNG 시장점유율 63%에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U 또한 합병 후 LNG 가격 인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주목하고 있다. EU 집행위 측은 앞서 "위원회가 합병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 제한 여부와 소비자에 대한 영향"이라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약화, 가격 가승, 선택권 축소 등 LNG 독과점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주요 심사대상이다.
◆ 조선업 다시 키우는 일본, 한국 조선업에 견제구 가능성
일본은 공정경쟁 훼손 여부를 심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근 일본의 조선회사들이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은 변수로 꼽힌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을 살리기 위해 한국 조선업에 견제구를 던질 것이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일본 최대 조선기업 이마바리조선과 2위 기업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JMU)가 자본업무제휴를 맺었다. 또한, 일본 조선업계 4위 기업 미쓰비시조선이 주력 공장 중 한 곳인 나가사키 고야기 공장을 3위 기업인 오시마조선소에 매각하는 방안을 협의 중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게 조선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거대 인수합병 소식이 반가울 리 없다.
앞서 지난해 일본은 한국 정부의 조선업 지원이 자유 경쟁에 위반된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적이 있다. 해당 안은 여전히 WTO 제소의 전제가 되는 양자협의 단계에 있다. 또한, 일본 조선사들을 대표하는 단체 '일본조선공업회'의 사이토 다모쓰 회장은 지난 7월 22일 한 인터뷰에서 "(한국 조선사들의) 저가수주가 기업간의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고 있다"며 기업결합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었다.
◆ 자국 조선업체 합병 승인한 중국, '자국 경쟁력 약화'를 화두로 내걸어
중국과 싱가포르는 자국 경쟁력 약화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은 한국 조선업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현재 한국과 중국은 세계 조선시장에서 7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양분하고 있다. 그 중 11월까지 누적 수주량 1위에 오른 국가는 한국이다. 한국은 712만CGT(Compensated Gross Tonnag)(36%)로 중국(708만CGT, 35%)을 넘어섰다. 누계 수주액 역시 한국이 164억달러로, 중국(153억 달러)을 앞서며 4개월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은 1위 굳히기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응해 중국이 공정경쟁 훼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산업용 로봇, 중장비, 건설기기 운반 등에 있어서 중국과 동일한 거래량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 두 조선사의 합병을 반대할 가능성은 적다. 중국은 이미 자국 내 1·2위 조선업체 합병 안건을 승인했기에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중국 내 인수합병 업체는 1위 업체 중국선박공업(CSSC)과 중국선박중공업(CSIC)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선박공업그룹과 중국선박중공그룹의 세계 시장점유율(수주량 기준)은 각각 11.5%(2위), 7.5%(3위)이다.
싱가포르도 자국 선주사들의 경쟁력 약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CCCS는 지난달 29일 성명에서 “LNG선뿐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양사의 사업 분야가 겹치기 때문에 합병이 이뤄지면 상선을 주문하는 싱가포르 고객사들 입장에서는 경쟁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자국 선주사들의 피해 가능성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 나올 가능성
조선업계는 기업결합 심사 결과 ‘조건부 승인’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도 인수합병을 활발히 하고 있어 한국의 승인이 필요하기에 끝까지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관측에 의거해 특정 선종 비율 제한 등을 요구하는 조건부 승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은 통합법인 대비 수주 경쟁력이 떨어져 내년 호황 사이클에 올라타도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해당 경쟁 당국의 심사 일정과 프로세스에 맞춰 충실히 설명하고 있으며 모든 심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아울러 향후 대우조선 인수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