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패러다임 전환]① 파운드리에 100조 쏘는 삼성전자, ‘비메모리 성장성’ 정조준

오세은 기자 입력 : 2019.10.16 07:08 ㅣ 수정 : 2019.10.16 11:43

[이재용의 패러다임 전환]① 파운드리에 100조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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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4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열린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133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4차산업혁명시대의 ‘비즈니스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기존의 제조업 기반을 고도화시키는 한편 인공지능(AI), 플랫폼비즈니스(Platformbusiness), 모빌리티(Mobility), 시스템반도체 등으로 전선을 급격하게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선점함으로써 글로벌 공룡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기업 특유의 ‘강력한 총수체제’는 이 같은 대전환을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주요 그룹 총수별로 ①패러다임 전환의 현주소, ②해당 기업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③전환 성공을 위한 과제 등 4개 항목을 분석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하고 정부의 정책적 과제를 제시한다. <편집자 주>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자인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정조준

 

이재용 부회장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 원 투자"

 

생산인프라 60조 원 및 R&D 40조 원 등 파운드리에 100조원 투자

 

[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통신·이미지 센서같은 칩 그리고 이들 반도체를 제조하는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위탁생산 전문업체) 산업을 지칭한다. 삼성전자는 이 중에서 특히 파운드리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인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의 최강자로 변신하려는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 시장의 수급 상황에 기반한 전략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성장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의 수요는 안정적이다. 더욱이 내년부터 5세대 이동통신(5G)이 본격화됨에 따라 AP, 이미지센서, CPU 등을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수요가 점차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4월 세계 첫 7나노미터(㎚·1㎚는 1억분의 1m) 극자외선(EUV) 제품 출하식에서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1위를 포함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확실한 1등을 하겠다”라며 파운드리 육성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15일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시스템 반도체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2030년까지 국내 연구개발(R&D) 분야에 73조 원, 생산 인프라에 60조 원을 투자한다”면서 “인프라 부분은 파운드리 시설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R&D 분야 73조 원은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포함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73조원 중 40조 원 정도가 파운드리 R&D 투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향후 10여년 동안 파운드리에만 100조 원 안팎의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정보를 처리하는 칩이다. 이 칩 종류에는 2만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시스템 반도체에 해당되는 대표적 칩은 CPU다. 파운드리가 시스템 반도체산업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CPU, AP 등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반도체 관련 기업은 팹리스(Fabless, 설계전문기업)와 파운드리로 나뉜다. 반도체 설계만을 담당하는 곳이 팹리스다. 따라서 파운드리의 고객사는 팹리스가 되는 것이다.

 

삼성이 파운드리에 집중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도래로 반도체 수요가 PC, 모바일에서 자동차, 로봇, 에너지, 바이오 등 전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정보를 저장하는 칩뿐만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칩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종합반도체기업(IDM)의 설비만으로는 주문자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더욱이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가 반도체 설계와 생산, 두 가지에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CPU분야에서 부동의 1위인 인텔은 IDM이지만 상당물량을 대만 기업인 TSMC를 통해 위탁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로 군림해왔다.

 

▲ [표=뉴스투데이 오세은]

이재용 부회장의 파운드리 ‘선전포고’, 5G시대의 ‘성장성’에 주목한 전략

 

글로벌 시장서 시스템 반도체 비중 70%…한국 시장점유율 3.4% 불과

 

삼성전자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2년만에 ‘2위’로 수직 상승

 

파운드리의 고객사인 IDM이나 팹립스는 거래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파운드리 시장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한 전략이다.

 

1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부활하는 주요인에 5G 역할이 상당할 것으로 봤다. 내년부터 5G가 본격 도입됨에 따라 반도체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더욱이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반도체 비중은 70%에 달한다. 삼성이 역점을 두는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2018년 기준 3019억 달러(약 355조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조사업체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비메모리 시장점유율은 미국(63%), 유럽(13%), 일본(11%), 중국(4%) 순으로 조사됐으며, 한국은 3.4% 수준에 그쳤다. 미국이 압도적인 것은 팹리스 기업(설계전문)이 다른 국가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반도체 사업 자체가 제품을 개발해 생산하기까지 적어도 3~5년, 길게는 10년이 걸리는 비즈니스”라며 “TSMC가 업력이 앞선 만큼 파운드리 시장에서 그들이 보유한 고객 네트워크가 국내와 비교해 많을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이 등장했다고 해서 TSMC 고객들이 국내 업체로 이탈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처음 시작한 건 지난 2005년이다. 본격적인 사업은 지난 2017년 메모리 사업부(DS) 부문 시스템직접회로(LSI) 사업부 내 파운드리 팀을 별도 사업부로 승격하면서다. 세계 파운드리 업체 1위인 대만 TSMC가 설립된 1987년과 비교하면 30년 정도 늦은 시작이었다.

 

2016년 말 삼성전자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9%(4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에 19.1%의 점유율로 2년만에 시장의 2인자로 치고 올랐다.

▲ [표=뉴스투데이 오세은]

▶강점◀ ①=‘총수’ 이재용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대규모 초기 투자 단행

 

극자외선(EUV) 방식 노광장비 10대만 구입해도 2조 원 들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첫째 강점은 ‘총수’인 이 부회장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 전략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과 장기 고객사가 확보돼야 한다. 원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비 도입이 필수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구체적으로 반도체는 복잡한 회로를 최대한 미세하게 그리는 게 핵심이다. 그래야지만 단위당 생산성이 높아져 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파운드리 1위인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는 7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공정 기반으로 칩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미세공정 단위를 좁힐수록 회로를 미세하게 그릴 수 있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는 14나노 공정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7나노미터 이하의 공정을 위해서는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노광장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7나노미터 이하 공정에서는 불화아르곤(ArF) 광원을 이용하려면 추가 공정 단계가 늘어나 생산성이 떨어진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극자외선(EUV) 방식 노광장비를 이용하면 7나노미터 이하로 더 세밀한 회로를 새길 수 있다. 이 장비는 대당 2000억 원 안팎으로 알려져, 10대만 구입해도 2조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삼성전자는 7나노미터 공정부터는 이 장비 도입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실제 삼성은 작년 2월 화성 캠퍼스에서 6조7000억 원을 투입해 EUV 생산 공장을 착공했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UV 노광장비 투입비만 1조5000억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투자는 물론 이재용 부회장의 전폭적 지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투자에 힘입어 삼성은 지난 5월 미국 산타클라라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에서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 제품을 2021년에 양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강점◀ ②=메모리 분야 IDM으로 구축한 노하우, 파운드리 신시장 개척에서 ‘비밀병기’로 작동

 

둘째 강점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종합반도체(IDM) 기업으로 성장해온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 생산 능력, 영업 및 마케팅 능력을 갖고 있다.

 

CPU 1위인 인텔이나 AP 1위인 퀄컴사 등은 모두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고객사들이다. 이기업들이 5G시장의 확대로 시스템 반도체 공급을 확대하려고 할 경우, 새로운 파운드리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인맥과 마케팅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약점▶①=치열한 시장구조, 1위 TSMC 맹추격하고 5위 SMIC 견제해야

 

삼성전자의 약점은 우선 ‘시장 구조’에 있다. 강력한 1등인 대만기업과 5등인 중국기업의 맹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1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1위는 TSMC(대만, 49.2%), 2위 삼성전자(18.0%), 3위 글로벌파운드리(미국, 8.7%), 4위 UMC(대만, 7.5%), 5위 SMIC(중국, 5.1%) 등이다.

 

삼성은 3~5위 업체와 큰 격차를 내고 있지만 TSMC만을 맹추격해선 안 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SMIC가 무서운 기세로 삼성을 뒤쫓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SMIC는 최근 14나노 반도체 공정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했다. 이 기술은 4년 전에 이미 삼성전자가 상용화한 기술이지만, 여전히 14나노 공정을 고객사에게 활용하고 있는 만큼 SMIC 14나노 공정 성공으로 인한 시장 진입은 삼성에게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약점▶ ②=EUV공정의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수급 불안정성

 

한일경제갈등 종료 이전까지 ‘손톱 밑의 가시’

 

둘째 약점은 EUV 공정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의 수급 불안정성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총리가 지난 7월 1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가지의 수출규제 강화정책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는 7월 4일부터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해왔다. 이후 일본측이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 허가 건수는 3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경제갈등이 완전히 해소되거나 완전한 국산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포토레지스트 공급 문제는 ‘손톱 밑의 가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 정부 정책적 과제=TSMC와 SMIC에 대한 대만 및 중국 정부 지원 ‘벤치마킹’해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문에서 당초 계획대로 최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다각도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전유물인 ‘야경국가론’은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미국, 중국 등과 같은 슈퍼 강대국들은 자국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시장경쟁의 규칙을 언제든지 무력화하고 있다.

 

TSMC는 대만 정부와 미국 금융자본을 ‘든든한 배후’로 두고 있는 기업이다.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지분 6.68%를, JP모건체이스와 뱅가드 등 미국 투자은행과 같은 외국인 자본이 지분 77%를 각각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 창 TSMC 회장은 대만 가오슝과 미국에 3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을 위한 공장 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 대만 과학기술부에 미국 내 부지확보를 위한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태로 알려졌다. 대만이 아닌 미국에 부지를 설립하려는 이유는, 환경평가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SMIC도 중국 정부의 투자지원을 받아 최근 100억 달러(12조 원)를 들여 새 반도체 위탁생산공장을 설립했다.

 

이처럼 대만 TSMC와 중국 SMIC는 각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을 지원할 방침이라면 TSMC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게 시장의 지적이다. 파운드리 시장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패권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삼성전자에게도 ‘원군’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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