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삼성의 ‘80년 무노조 원칙’ 파기는 ‘위기 속의 현명함’
삼성의 ‘80년 무노조 원칙’ 파기는 ‘위기 속의 현명함’
(뉴스투데이=권하영 기자)
8000명 규모의 본사 직접고용, 문재인 가이드라인을 넘어선 ‘파격’
80년 무노조 원칙의 폐기, ‘노조와해’ 논란 속 ‘여론모면용’ 지적도
위기 앞에서 ‘최악’ 아닌 ‘현명함’을 선택했다면 정당한 평가 받아야
‘진정성’ 보여주는 계기 삼는다면 이재용의 ‘뉴삼성’ 가시화될 듯
재계 1위 삼성의 ‘노사상생’ 선언…다른 기업에도 중요한 메시지 될 것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다. 최근 삼성은 이 슬로건에 걸맞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 17일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는 8000명의 협력업체 직원을 모두 직접고용하고 이들의 노조 활동도 보장하기로 했다. 창사 이래 80년을 이어온 무노조 방침을 뒤집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책까지 내놓은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와해’ 논란으로 곤경에 처한 와중의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위기 모면용’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둔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도 들린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이 부회장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해서 ‘가치 있는 행동’을 폄하하는 것은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위기 속의 선택은 ‘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성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 앞에서 ‘현명함’을 선택했다면 그 가치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삼성의 결정도 마찬가지이다. 위기 속에서 나온 ‘현명함’이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이 의미 있는 이유는 삼성그룹이 재계에서 갖는 위상 때문이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의 행보는 사실상 다른 대기업에도 일종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이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재계의 척도가 된다’는 말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도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이번 조치는 기업과 사회 전반에서 노사 상생의 분위기를 끌어내는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고용하기로 한 협력사 직원 수는 8000명에 이른다. 연간 매출 6조 원이 넘는 전자계열사 삼성SDI의 직원 수도 1만 명이 채 안 되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숫자다. 실제로도 단일 기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정규직화다.
직접고용의 ‘방식’도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대기업 중에서도 협력사 직원들을 직접고용한 사례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본사가 직접 채용하기보다는 주로 자회사를 따로 설립해 우회적으로 고용한 경우가 많았다. 엄밀히 말해 직접고용보다는 ‘완곡한 버전의 간접고용’에 가까웠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는 ‘완전 직접고용’을 택했다. 본사가 직접 나서 협력사 직원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당연히 연봉이나 처우도 기존 직원들과 동등하게 할 것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완전 직접고용은 어려운 문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 정부조차 그랬다. 공공부문에서 최초로 직접고용 이슈를 들고 나온 인천국제공항도 사실은 상당수 비정규직 직원들을 자회사 형태로 고용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삼성의 이러한 파격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담론의 층위를 한 단계 높였다고도 볼 수 있다.
삼성의 이번 변화가 어떤 배경에서 나왔든지 간에 우리나라 노사문화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그동안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와 어용노조 문화 등을 묵인해 왔던 우리 사회의 자성을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삼성 또한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짜 노사상생의 길을 걷는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뉴 삼성’도 충분히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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